스테이크, 파스타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와인 마리아쥬의 세계로!
와인 하면 왠지 이탈리안이나 스테이크와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는 사골이라도 평생 사골국만 계속 우려먹을 수 없듯, 와인에 언제나 이탈리안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때 생각나는 게 접근성 좋은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 분식이다.
추운 겨울이면 유난히 뜨근한 어묵 국물이 생각난다. 따끈한 오뎅 국물에 조금 올라간 파와 튀김 가루를 듬뿍 얹어 먹으면 바로 몸도 마음도 따듯해지는 것만 같다. 어묵은 생선살을 으깨어 밀가루 등과 반죽해 익힌 것으로 상큼하고 가벼운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해산물로 만든 것이다 보니 살짝 비린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때 소비뇽 블랑이나 쉐닝 블랑 같은 푸르르고 향긋한 계열의 와인이 어묵의 비린 맛을 감싸주면서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뜨끈한 오뎅탕 국물 한 숟갈에 상큼한 계열의 차가운 와인 한잔은 겨울철 매일 먹고 싶은 조합이다. 참고로 오크통 숙성이 된 화이트 와인이나, 단맛이 강한 스위트 와인 계열은 자칫 잘못하면 비린맛을 더 가중시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떡볶이와는 잘 만들어진 드라이한 리슬링이 최고의 페어링이라고 생각한다. 고추의 살짝 알싸한 맛을 박하 향 같은 상쾌한 산도와 과일맛 석 유향 등이 감싸주기 때문이다. 단, 너무 매운 떡볶이는 피하는 게 좋다. 고추의 매운맛이 미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섬세한 와인과 함께 즐기기엔 무리가 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와인을 마실 때만큼은 피하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떡볶이도 너무 맵지 않은 간장 떡볶이나 짜장 떡볶이 등이랑 마시는 편이다.
라면엔 묵직한 프랑스 부르고뉴 샤르도네가 제격이다. 특히 꼬들꼬들하게 끓인 신라면에 풍미가 충분히 느껴질 만큼 트러플 오일을 넣어서 먹는 걸 좋아하는데, 거의 아무도 이 레시피를 신뢰해주지 않는다는 슬픈 이야기.
황태와 포르치니 버섯도 넣고 끓이면 더욱 좋다. 이상한 조합일 것 같지만 버섯의 풍미를 완전하게 살려주고 깊고 고급스러운 맛을 내어 묵직한 풀바디의 버건디 샤르도네와 최고의 페어링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라면에 시도해봤지만 신라면이 제일 잘 어울리더라는.. 집에서 와인 한잔 하고 싶을 때 가장 많이 먹는 안주이기도 하다. 먹으며 해장되는 안주라고 할 수 있다. 와인은 트로피컬 과실 향이 가득한 캘리포니아 샤르도네보다는 오크, 참깨의 고소한 향, 풍부한 견과류의 풍미가 느껴지는 정통 프랑스 부르고뉴의 샤르도네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순대와 레드와인의 조합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순대는 프랑스나 영국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는데 바로 부댕( Bourdin noir), 블랙푸딩(Black pudding)이 그것이다. 그들도 이것과 레드 와인을 매치해서 마시곤 한다. 전 세계에 비슷한 음식이 있다는 건 참 재밌는 일이다. 나는 피순대와 같은 정통 순대보다는 흔히 접할 수 있는 당면이 들어간 분식점 순대 파이다. 이런 분식집 스타일 순대엔 묵직한 스타일의 레드와인보다 피노누아를 매칭이 더 좋은 것 같다. 순대의 맛 자체가 슴슴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벼운 스타일의 부드럽고 짭짤한 순대엔 프랑스 부르고뉴 피노누아 보다 미제 향기가 나는 캘리포니아 피노누아가 좋은 것 같다. 살짝 달큰한 딸기잼 맛을 내는 과일 풍미가 순대와 단짠 단짠을 이뤄 입안을 가득 채워 복합적인 맛을 낼 때 좋다. 단짠의 조합은 언제나 옳으니까!
튀김류에는 어떤 와인을 매치할지 고민이라면 고소한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이 좋은 것 같다.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쥬에 정해진 공식은 없다. 자주 마셔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궁합을 찾는 게 제일이다. 와인은 잘만 페어링 하면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셔라! 한잔도 안 마신 것처럼!
<싱글즈 1월호에>에 실린 와인 칼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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