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입니다.
드라마퀸 추천: 별 다섯, NO kids
감독/각본 : 하병훈
원작: 이원식, 꿀찬 작가의 네이버 웹툰 <이제 곧 죽습니다>, 66화
스트리밍 플랫폼: 티빙(한국), 미국 (아마존 프라임) 8편
* 감상/리뷰 중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지만, 아직 시청하시지 않은 분들을 위해 줄거리는 올리지 않겠습니다.
최이재와 죽음, 둘의 게임. 이재에게 화가 난 죽음이 그에게 12번의 죽음(웹툰에서는 13번의 죽음)을 겪어야 하는 벌을 내린다. 이재가 12번의 죽음을 겪으며 드러나는 사연들과 그들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드라마다.
웹툰원작 영화 ’ 신과 함께‘에 이은 죽음과 관련된 참신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선 웹툰 원작의 제목은 '이제, 곧 죽습니다.'이고, 드라마 제목은 '이재, 곧 죽습니다.'이다.
이제와 이재의 차이. 'ㅔ'와 'ㅐ'로 한 획 차이지만 각각 시간과 인물을 칭하는 단어로 뜻이 다르게 와닿는다.
그래서 각본 때 제목을 미묘하게 바꾼 부분이 흥미롭다.
벌을 받아야 할 이재(서인국)의 죄는 죽음(박소담)이 1편에서 이야기한다.
‘내가 너를 찾아가기 전, 먼저 나를 찾아온 죄’ ( 드라마)
‘죽음은 그저 내 고통을 끝내 줄 하찮은 도구일 뿐이다…’라는 유서말에 죽음이 화가 났다.
‘죽음’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 죽음의 무게를 우습게 본 죄로 그 무게와 고통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 벌을 내린다(웹툰)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기에 오죽하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겠느냐만은, 최근 미국이든 한국이든 간간이 자살 소식이 들어온다. 안타까운 건 한인 학생들이 있다는 거다. 자살은 뉴스에서 크게 보도되지 않는다. 특히 학생이라면 또래 자살 소식은 큰 충격이다. 또한 모방 자살로 번질 수도 있다.
한국에서 불과 얼마 전에도 생각지 못한 배우가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휩쓸렸고, 결국 그는 아내와 자녀를 둔 채 죽음을 택했던 슬픈 사건이 있었다. 이미지가 좋은 호감형 배우였는데,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연이어 생겼다. 그런 대중에게 사랑받던 스타 연예인의 자살 소식은 조금 더 위험해 보인다. 미디어에 노출이 안 될 수도 없기에, 가족과 지인들 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팬들과 그를 모르던 이들 조차도 그의 사망 뉴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모든 자살은 갑작스레 일어나고 남은이들에게는 충격을 남긴다.
고교 시절에 학교 괴담 속 야밤에 학교를 떠돌고 있는 자살한 선배 귀신 이야기, 혹은 다른 학교에서 성적 비관 자살했던 학생 소식을 들었을 때, 전혀 알지 못하는 상대들임에도 크게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고등학생들의 자살 소식은 쉬쉬거림에도 불구하고 매년 들리는 듯하다.
작년에 엘에이 명문고에서는 딸의 자살에 이어, 그녀의 아버지가 큰 도로에서 뛰어내렸던 바람에 쉬쉬하던 자녀의 자살까지도 뉴스에 공개된 적이 있어 크게 안타까웠다. 그 학교는 친구를 잃은 후 이미 며칠 휴교를 내렸고, 다른 학생들이 트라우마를 갖지 않도록 집에서 안정을 취하게 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후 그 친구 아버지 뉴스에 학교는 더 발칵 뒤집어진 거다. 이유가 학교와 상관없는 일이라 해도 남은 학생들은 영향을 받고, 또 모방자살은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사실 그 한국 여학생과 아버지 이전에 다른 자살 사건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모 고등학교에서는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던 한국 남학생을 선생님 한분이 그를 발견하고 막아섰던 다행한 일도 있었다.
모방자살이 이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조용히 넘어가며, 사춘기 청소년들의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던 부모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을 다 막지 못함은 사실이다.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는 '신'이 아닌 '죽음' 자체를 의인화시켜 그가 주인공의 한명으로서 극을 이끌어가며 작가의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와 죽음과의 만남.
'나'를 생각하자. 내가 그렇게 떠나버린 후 사랑하는 남은이들의 상실과 고통은 얼마일지.
단지, 자살하면 지옥 간다..라는 협박 같은 메시지도 아니고, 자살할 용기로 더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보편적인 위로 메시지도 아니다. 메시지를 돌려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단순한 권선징악도 아니다. 결국 신파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다.
참신한 스토리 구성과 젊은 독자(시청자) 층들이 좋아할 자극등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으면서도, 이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수식어 없이 심플하게 이야기한다.
특히, 어리고 젊지만 공부와 취업등으로 혹 삶이 힘들어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 독자(시청자)가 있다면, 삶과 죽음, 남은이의 슬픔에 대해 한번쯤 생각을 하게 만들 듯하다. 젊은 그들의 감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좋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 사고를 불러 일으키는 감동받은 작품 같다.
최근에는 엔터테인먼트 목적으로 만들어진 재미있고 자극적인 작품들이 많다.
이 작품이 연재되었던 네이버 웹툰은 주로 10-30대를 겨냥한 스토리들이 대부분이다. 지하철에서 통근 중 혹은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틈틈이 웹툰을 보는 그들의 손가락을 멈추고 눈을 잡아끌어야 하기에 자극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재한 통쾌, 스릴, 판타지등의 다양한 스토리들이 나오는 이유도 그들이 독자층이기 때문이다. 깊은 메시지 전달의 기능보다 현사회에 젊은층이 좋아하는 주제와 소재들을 다룬 재미있는 웹툰들이 대부분 인기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그 안에 철학이나 메시지를 둔 작품들도 있지만, 일단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재들과 그림체에 더 집중이 되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튀어야 하기에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보고 난 후 스토리나 메시지보다 자극적인 장면들이 더 뇌리에 꼽혔던 경우가 많았다.
또한 웹툰은 성격상 틈틈이 한편씩 보는 관계로, 작가의 심오한 사상이나 철학을 주절주절 이야기할 공간은 아니다.
10-30대 남녀들은 신파, 라떼이야기, 막장 가족, 가족애등의 이야기에 관심이 저조하다. 대신 그들의 생활과 관련된 학원물, 취업 및 직장 관련, 스트레스를 풀 사이다, 잠시 현실에서 떠난듯한 판타지와 환생등의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네이버 웹툰에는 회빙환(회귀물, 빙의물, 환생물) 작품들이 인기 많다.
그런 엔터테인먼트 역할이 더 강한 웹툰을 기반으로 만든 드라마임을 이해하며 보면 좋다.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만 찾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드라마도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라 여기며 그냥 보았다. 다크판타지 장르의 팝콘뮤비(내가 좋아한다) 정도로 여기며 1편을 시작하였고, 볼수록 스토리에 빨려 들어가 결국 밤새 정주행을 해버렸다.
어쩌면 기대치를 낮추고 시청한 탓에 의외로 더 감동 받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그동안 잔혹했던 여정에 대한 반전 스토리에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았다.
여성들에 비해 공감능력이 약한 남성들. 그리고 서로 사랑하지만 어려운 엄마와 아들의 관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서 죽지 마세요' 수준이 아닌, 남은이의 상처를 백프로 공감할 수 밖에 없도록 그래서 이재가 깨달을 수 밖에 없도록 장치를 해 두었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보여줬는데, 스스로 죽지마라잉!" 하고 마치 감독/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보시면 압니다)
또한 네이버 웹툰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영역이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없어서는 안 될 신파의 경계선을 살짝 건드려 주는 센스에 감탄하였다. 그로 인해 눈물콧물 줄줄 흘리진 않았지만, 그가 본인보다 더 살리고자 했던 상상치 못했던 마지막 캐릭터의 30년 인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어쩌면 눈물을 짜내는 신파보다 더 강렬한 아림이 아닐까 싶다.
자살과 죽음, 과한 액션과 살인장면 등 다른 여느 누아르, 스릴러 작품들처럼 자극적인 장면이 계속 이어졌지만, 반전의 상황으로 인해 마지막에는 그 자극적이고 광적였던 장면들은 다 잊게 된다.
그리고 '나'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든다.
최근 들어 '죽음', '나의 존재'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최고인 듯.
스토리텔링, 작가가 주는 메시지, 액션, CG, 배우들의 연기, 미술, 조명등 그 모든 것이 수준 높게 제작되어 완성도가 높다.
드라마는 일종의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12번 죽음 간의 캐릭터 관계들이 잘 연결되어 있다.
장르는 다크판타지를 기본으로 학원물, 액션, 느와르, 스릴러, 복수, 사회고발 등 모든 게 콜라주 작품처럼 잘 구성되어 있지만, 막 섞어놓은 짬뽕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스토리텔링이 예리하게 잘 이어져가면서 그 재미를 유도하였다. 가끔 웃음 포인트도 있다.
벌을 받는 중이라 죽기 위해 다시 환생하지만, 현실에 있는 사람들에겐 마치 그가 목숨이 몇 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 덤비는 그가 가끔은 사이다를 뻥뻥 터뜨린다. 시원하고 매서운 싸대기 장면들도 사이다중 하나이다.
두 주인공, 최이재는 배우 서인국, 죽음은 배우 박소담, 두 배우의 열연으로 에피소드는 이어간다.
만찢녀 배우 고윤정과 엄마역할의 중견 연기파 배우 김미경님. 그리고 각 죽음에서 등장하는 12 배우들의 개성 있는 역과 그 연기력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대체 누가 캐스팅을 했는지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다.
이도현, 김강훈 (청소년이 된 모습에 놀랐다. 어쩜 이리 컸니 ), 최시원, 성훈, 장승조, 이재욱, 김재욱, 오정세 등의 배우들이 각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인생들을 연기한다.
웹툰 속 캐릭터와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각본 과정에서 수정이 들어갔다.
특히 주인공 이재의 캐릭터가 달라졌다. 웹툰 초반에 이재의 캐릭터는 호감형이 아니다. 드라마처럼 주식이 아닌 인생 한방 노린 코인으로 가진돈을 날렸다. 드라마 속 이재처럼 열심히 알바를 하며 살지도 않는 찌질한 편에 속하는 백수이다.
웹툰 속 여친은 헤어진 지 3개월 만에 결혼하여 그 존재감이 크지 않다.
각본 중에 웹툰 속 여자소설가 이지수를 이재의 여친으로 만들었고, 그 드라마 속 여친인 이지수는 최이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뒷바라지하고 그의 미래를 진심으로 염려하였다. 이 부분은 많은 팬들이 신의 한 수라고 언급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각본과정에서 최이재와 이지수의 캐릭터가 호감형으로 바뀌면서 드라마에 흡입력을 더했다.
웹툰에서 이재가 환생한 인물들은 오른쪽 눈밑에 점이 하나 찍혀 있어서 최이재 전후의 다름을 표현하였는데, 드라마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배우 서인국님의 눈밑 점이 웹툰 주인공과 닮은 모습이 흥미롭다.
(사심토크: 눈밑 점을 찍고 돌아와서 복수를 하던 <아내의 유혹>이라는 막장드라마 여주인공이 떠오른다.)
또한 웹툰에 '죽음'은 실버헤어, 까무잡잡한 피부에 캐주얼 차림을 한 젊은 여성이다. 드라마에서는 검은 머리와 복장으로 죽음의 위엄과 파워를 보여준다. 더불어 전통적인 죽음의 상징 컬러인 블랙으로 그녀 공간도 꾸며져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박태우 역의 배우 김지훈.
최근들어 머리를 기르고, 탄탄한 근육질 모습으로 악역을 소화하고 있는 배우.
항상 단정한 머리 스타일에 선한 역할을 하던 꽃미남 배우였는데, 그때와 완전 다른 이미지 변신을 한 거 같다. <나 혼자 산다>에서 스트레치와 운동하던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줬었는데, 그런 모습들이 전혀 연상되지 않을 만큼 사이코패스 역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미 그전에 영화 <발레리나>를 보며 김지훈 배우의 변신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다양한 빌런중에서도 이런 빌런 없다.
박태우(김지훈)와 정규철(김재욱), 이 두 캐릭터는 최고이다. 두 사람이 한국 빌런의 새로운 역사를 쓴 듯하다. 착한 미남배우 이미지였던 배우 김지훈의 섹시한 미남 사패로의 변신이 놀라웠다면, 오랜만에 보는 배우 김재욱은 모델출신 배우답게 훤칠한 키에 여전히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화면 구석 멀리 깜빡이는 불빛을 배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김재욱의 첫 등장부터 그 존재감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두 배우의 대립 연기는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켰고, 드라만 전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심토크: 두 배우 어쩜 저리 나이가 들수록 더 멋있어졌는지.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 내공까지 겹쳐 두 사람의 열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다양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경우도 있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후 아주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세상 고통스럽게 죽기도 하고, 삶의 시간이 다해 평온하게 죽어가기도 한다. 모든 인연은 연결되어 있고,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며 그 인연들은 결국 돌고 돈다. 그래서 최종회를 다 보고 나면 실제 인생 이야기들 같아서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살다보면 죽고싶을 때가 있다.
각 죽음에 관련된 주제들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소재들이다.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들, 취업란에 허덕이다 앞이 망막해 보이는 취준생들, 평생을 바쳐 일했던 회사에서 퇴직을 당한 중년들 등...
어둡고 철학적이며 숨긴 메시지가 가득해서 마치 숨은 그림찾기 하듯 보는 어느 독립영화나, 비평가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는 작품들보다, 대놓고 이야기하는 메시지가 (죽음을 한번쯤 떠올리는 그들에게) 크게 한방 먹인다.
드라마 시청 후 죽음이 주는 마지막 총알.
그 마지막 한방은 시청자들에게 향한 건 아닌지.
그 한방으로 오늘 생을 마감하고 싶어 했던 그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을 듯한 작품이다.
'나'의 본질을 생각해 보자. 죽음도 어차피 먼저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특히 요즘 10-30대들에게 더욱 강렬할지도.
평범한 일상으로 여겼던 여친과 손잡고 걷던 시간이 삶에서 얼만큼 소중했던 시간인지 최이재는 한참 후에나 깨닫는다. '미안해'란 말은 이미 늦었다.
드라마를 마치면 작가의 메시지가 와 닿는다.
"당신은 이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입니다." 깔끔하다.
이게 힘든 그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메시지이다.
드라마속 죽음(박소담)은 과연 최이재에게 벌만 주었을까요…?
- 최대한 줄거리나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데, 내용 설명하기 힘드네요.^^
- 비평, 리뷰글에 개인적인 주장이 들어가면 안 되지만, 드라마퀸 줌마의 리뷰인지라 사심 가득 배우 이야기나, 개인적인 의견/주장도 그대로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