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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verly Story Apr 07. 2024

밸리포지 Valley Forge 2

(필라델피아) 비행기와 조지워싱턴- 미국 초등 수학여행 이야기

그래도 비행기는 뜬다

(지난글에서 계속)


3.

5학년 아이의 (부모 없이 떠난) 첫 인생여행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비행기는 LAX 공항에서 새벽 6시 정시에 출발하였고, 그 시간 다행히 비는 잠잠해졌지만 비행기의 흔들림은 심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어떤 아이는 무서워서 울었단다. 그런데 5학년 딸아이는 그 흔들림이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재미있었다는데.

롤러코스터? Are you sure? 아무래도 파일럿 아저씨를 많이 신임했나..? 아무 생각이 없었나..? 뭐지?

여하튼, 다행히 울지 않고 즐거웠다는 말에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라면 어땠을까..

초등 5학년일 때 부모님 없이 혼자 친구들과 집중호우 속에서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갔다면 무슨 느낌이었을까.

울었을까,, 아니면 마냥 재미있었을까..

아마 내 성격에 나도 재미있어했을 듯하다. 11살 5학년이었다면 말이다.


처음 부모와 떨어지는 일반적인 5학년이라면,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문득문득 눈물이 핑 도는 경험마저 없었기에 엄마의 그리움을 잘 모를 거다. 외진 곳, 낯설음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과 같은 불편한 감정을 상상도 못 한 채 그저 즐겁게 떠났을지 모른다. 비행기의 흔들림마저 본인만의 10년 인생 경험치로 연상시킨 롤러코스터를 상상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불편한 감정을 익히 잘 알고 있고, 공포영화나 재난 영화와 같은 어두운 상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어른은 그런 출발이 반갑지는 않다.  


20대 초중반 여름방학, 뉴욕 JFK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였다.

그날도 비가 거세게 몰아치는 날이었고, 천둥번개 동반한 태풍 치는 날이었다. 아무래도 동부는 여기 엘에이 지역보다 그렇게 거센 비바람이 요동치는 날이 더 많다. 하필 그날이 그런 날씨였지만 비행기는 그대로 떴다. 불안했다.


대학생이던 나는 이상기류 속 엔진에 불이나고 동체가 떨어져 나간 비행기를 상상할 수 있었다. 1초 2초 3초.. 테러로 비행기가 터진다면 이륙 후 3초 안에 터진다고 어디서 들었던 거 같다. 사실 그보다 더한 상황도 상상할 수 있는 나이였고, 얼마 전 일어났던 영화 같은 911 테러도 비행기와 관련된 실제 비극이었던지라 많이 긴장되었다. 비행기는 위, 아래로 기류를 타며 내 몸을 들었다 놨다 들썩였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안전벨트 착용 램프는 계속 띵띵 소리를 내며 켜졌다. 불안함에 창문을 열어보았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제우스 신이 실존하는 줄 알았다. 마치 화난 그가 구름 속에서 번개창을 마구 휘두르고 있는 게 아닌지. 나의 눈높이, 창문밖 저기에서 (과학책에 등장하던 사진처럼) 가는 번개 줄기들이 강렬하게 번쩍거리며 구름 아래 저 밑 세상으로 내리 꽂히고 있었다.

난 기상학자나 물리학자가 아닌 미대생. 그 광경이 신비로웠지만 , 그 빛이 이 쪽으로 꽂힐까 차마 더 이상 볼 수 없어 얼른 창문을 닫고 눈을 질끈 감았다. 옆사람에게 이런 상황을 전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저 양손잡이를 꾹 눌러 잡고 눈을 감은채 흔들리는 비행기 속에서 오늘이 어쩌면 내가 죽는 날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비행 경험 이후, 몇 년 동안 비행 이착륙 시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재난영화 같았던 911 테러와 화재 등 큰 일들을 겪은 후라 아마 불안공포가 더 오래갔을지도 모른다. 이착륙 시 무슨 일이 생길 거 같은 불안에 떨었지만 이런 공포를 무시하기 위해 비행시 자리에 앉자마자 일찌감치 영화를 틀어 귀는 이어폰으로 막고, 눈은 모니터를 뚫을 기세로 노려보며 집중하였다. 기도문을 외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나아졌지만, 내 여행 경험에 빗대어 딸이 행복한 첫 여행에서 그런 불안감을 갖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휴대폰 비상 알람이 그리 울려대던 그날, 비행기가 뜨는 게 못마땅하였다.  


그러나 내 아이와 대부분의 학생들은 예상과 달리 즐겁게 비행 여행을 했다. 씩씩해서가 아니다. 죽음과 보이지 않는 공포, 추락, 재난 같은 단어의 의미를 알만큼 경험치가 충분치 않으므로 오히려 불안하지 않았던 거다.


부모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한 불안감 속에서도 그것을 아이에게 내비치지 않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비슷한 부정적인 경험을 해도 아이는 본인 인생 방식으로 해석하여, 같은 상황도 긍정적인 경험치로 쌓아가며 그들만의 스토리와 추억, 감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집중호우 Flash flood 속에서 출발해 5시간 비행을 했던 100여명의 학생들. 사진출처: beverly story



조지 워싱턴


4.

이번 여행의 인도자는 부모가 아니다. 학교 선생님과 현지 전문 가이드들이다.

아니 어쩌면 조지 워싱턴이라 해야겠다.


역사 현장을 보러 가는 여행.

조지워싱턴    사진출처: Beverly Story

우리나라의 역사는 근 12년 이상을 배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곰과 호랑이의 설화, 단군신화를 처음 들었던 게 언제인가.. 다 건너뛰어, 가까운 조선만 해도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웠고, 그 후 고종까지 500년 동안 잘 이어져 내려왔다. 태조 이성계의 곁에는 정도전 등의 일등공신들이 있었다.


나라가 기반을 세울 때는 왕과 같은 리더가 있고, 곁에 공신들이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요 몇 년 핫한 뮤지컬‘ 해밀턴’도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야기로 미국 건국을 이룬 공신중 한 명이다.

그 외 벤자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등이 공신들이고, 그 리더가 (모두가 알다시피) 조지 워싱턴.


아이들은 미독립전쟁에서 대륙 군 총사령관이던 그를 만나기 위해 밸리포지로 갔다.  

독립전쟁을 치르고 1776년에 미국이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건국을 했으니, 미국은 불과 248년 차다.

그런 미국의 탄생을 배우기 위해 100여 명의 어린이들은 그곳으로 향했던 거다.  미국 독립전쟁의 랜드마크인 밸리포지로 말이다.


미국 역사 교육 과정이 재미있다.

연극배우 (혹은 가이드)가 조지 워싱턴 복장을 하고 나와 본인 소개를 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지 워싱턴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전쟁에서 공을 세웠던 한 병사로 분한 다른 남자가 나와, 자원한 아이들과 함께 그 시절 장면들을 연극해 본다. 타이밍에 맞춰 소형 대포도 쏘는 경험을 하였다.  


혹한 긴 겨울을 보내기 위해 병사들은 직접 나무를 잘라, 못도 없이, 통나무를 끼워 맞춘 오두막집을 지었다. 추위를 겨우 막으며, 배고픔과 질병, 부상으로 고통을 받던 병사가 웅크리고 누웠던 벽장처럼 만들어진 간이 이층 침대에 아이들도 누워 보았다. 아이들의 키가 침대길이에 꽉 차고, 어깨폭도 대충 맞을 만큼 어른이 눕기엔 작고 딱딱한 간이침대였다.


197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미국) 독립기념관 Independece Hall에 가서 자유의 종 Liberty bell에 대해 배웠고, 대륙회의를 했던 장소를 관람하였다. 조지 워싱턴과 그 공신들이 조각상으로 제작되어 있는데 아이들은 그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기념 촬영을 하였다. 250여 년 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함께 셀카를 찍으며 시간을 가졌다.

 

또한 그 지역의 주요한 곳도 돌아보았다.

필라델피아에서 유명한 랜드마크인 필라델피아 미술관 록키 계단에 뛰어 올라가 단체로 주먹을 쥐고 그룹사진도 찍어보았다. 몇몇 외 대부분 아이들은 록키가 누군지 사실 모른다. 선생님이 뛰라고 하니 열심히 계단을 뛰어올라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촬영에 임했던 것일 뿐.

유명한 치즈 스테이크 샌드위치 가게에서 친구들과 점심도 먹었다. 길거리에 주저앉아 가이드의 이야기도 듣고, 박물관을 돌며 견학일지를 썼다.

영화 '록키'의 촬영지  사진출처: Beverly Story


이번은 아미시 마을을 들어갈 수 없었으나 비슷한 다른 곳으로 가서 친구들과 함께 당시 민속 장난감으로 놀아보고, 물통지게도 들어보았으며 초와 같은 물건들도 손수 만들었다.


마지막 저녁 만찬은 또 다른 학교 전통이 있다.

의상코드는 미국 국기 컬러인 빨강, 파랑, 흰색으로 입고, 소녀들이 한명씩 식당으로 걸어오면 소년이 팔짱을끼고 테이블까지 그녀를 에스코트 하는 전통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입장하여 남녀 댄스를 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독립전쟁이 아닌 남녀전쟁이 날 것이다. 한창 남녀 간 관심 있을 나이지만, 조금만 친해도 친구들이 사귄다고 놀리기에 겉으로 보기엔 남녀 아이들이 쌩하다. 딸은 입장 시 빛의 속도로 걸었던 관계로 제대로 된 사진조차 남지 않았다. 왜 다들 오버하니~ 귀엽게.

마지막 일정은 만찬 후 교회로 가서 결의를 다진 그때의 그들처럼 선언문에 사인을 하였다.


새벽에 일어나 저녁을 먹고 일찍 곯아 떨어지는 빡빡한 일정들. 돌아오는 날 비행 전 오전시간에 또 다른 박물관을 방문하며 시간을 알뜰히 쪼개에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공항 앞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가이드 할아버지는 일일이 토닥여 주었다.


몇백 장의 사진으로 그 기록이 남았다.

샤프론으로 따라간 부모들이 찍어주었거나, 아이들 본인이 가져간 카메라도 많은 기록들을 담아왔다.

그렇게 아이들은 시청각 교육에 더해 직접 그곳을 경험하고 만지며 역사를 배웠다.  

아이들에게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미국의 모든 학교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처럼 역사공부를 겸한 수학여행을 밸리포지로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초등학교 역사교육 방식이 재미있다.

지인의 자녀가 다니는 산타모니카 한 초등 학교의 역사교육 방법은 아이들이 각 주요 인물 역할을 맡아 연극을 하며 역사를 배우는 거였다.

담임 선생님들이 그 업무까지 하기 버겁기에 전문으로 하는 교외 기관에서 진행하는 학교내 프로그램인데, 얼마나 재미있는 역사 공부인가!

연극과 함께하는 미국 산타모니카 한 초등학교 역사교육  사진출처: Beverly Story


어릴 때 내가 받았던 역사공부를 떠올려 보았다.

외울 내용이 많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250년 생 국가에 비해 긴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살아온 역사가 자랑스럽다.


그러고 보면 초등시절에 갔던 경주 수학여행이 재미있었다. 불국사, 석가탑, 첨성대, 신비롭게 느껴졌던 석굴암과 왕이 잔을 띄워 마시며 놀았다던 포석정. 왕릉과 신라의 아름답고 섬세한 왕관과 장식품들.

당시 (지금의 내 5학년 딸처럼) 내 개인 카메라가 없었기에 남아있는 자료는 없다. 한국집 어딘가 뒤지면 단체사진 정도가 나올지도. 하지만 그 수학여행이 기억 속에 크게 남아있다.

잠은 어디서 잤는지,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곁에 어떤 친구가 있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신라 문화와 경주에 대한 흥미는 그때 생겼던 거 같다. 더불어 역사에 대한 재미도 말이다.  그 곳에 살던 성덕여왕은 미국내 위인전에도 자주 등장해서 무척 반갑고 뿌듯하다.


초등시절 아이들은 많은 것을 흡수한다. 그래서 많은 경험에 노출시키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 시절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간 내 나라 역사 공부를 하는 수학여행이 얼마나 뜻깊은지 모른다.   


집에서 비행기로 5-6시간 걸리는 그곳.

그곳과 집 사이 시차는 3시간.  

새벽에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 빡빡했던 단체 활동들.

홀로 친구들과 멀리 여행을 다녀온 5학년은 훌쩍 커서 온 듯했다.

미국 역사뿐만 아니라 아이의 인생사에도 큰 기록을 남겼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귀하고 즐거웠던 첫 여행을 말이다.  


여행 후 5일 동안 작성해 왔던 견학일지를 정리하여 제출하는 과제를 끝으로 아이들의 즐거운 첫 여정은 마무리를 지었다.

따뜻한 캘리에서 자라온 이 아이들은 혹한 동부 추위를 겪으며 누구 하나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잘 다녀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둘째와 함께 welcome back home 이라 적은 플랫카드를 만들어 집앞에서 흔들고, 폭죽을 터뜨려 주었다. 꾀죄죄한채로 냄새도 큼큼하게 나는거 같지만 건강하게 다녀온 모습이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식탁에 둘러앉아 달콤한 아아스크림을 먹으며 조잘조잘 들뜬 목소리로 여행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 대견해 아가.

엄만 니가 돌아오는 날 잠을 설칠만큼 보고싶었단다.  코 끝이 찡해졌다.


독립기념관, 미국 건국 위인들의 동상들을 보며 아이들은 자세도 따라해보고 셀카도 찍었다/ '자유의  종'  / 병사와 함께 공부하는 역사  사진출처: Beverly Story
여행 마지막날 만찬. 학교전통으로 레드, 블루, 와잇컬러를 입고 저녁 식사후 교회로 가서 독립선언문에 싸인한다.   사진철처: Beverly story
대륙회의를 했던 독립기념관 Independence Hall /  조지워싱턴이 지냈던 집 / 직접 장총을 쏘며 아이들에게 설명하던 병사  사진출처: Beverly story
그 시절 방식으로 물을 길러보고, 놀이들도 즐겼다. 한국과 비슷한 모습이 재밌다.  / 필라델피아의 유명 음식인 치즈스테이크로 점심을  사진출처: Beverl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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