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수다 @ 뉴욕 New York City
친구를 만나러 커피숍에 갔습니다. 얼마 전 다녀온 여행은 어땠냐 물어봅니다.
그리고 신나게 여행 가서 느낀 점과 관광했던 것을 이야기하며 떠들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뜬금없는 아무 이야기로 넘어가는 우리들의 수다.. 코비드 팬더믹 동안, 전에 항상 떠나던 여행이 그리웠고, 커피 브레익이 부쩍 필요했던 그때... 친구와 침 튀기며 이야기하던 비말 토크가 그리웠어요..
유럽과 아시아의 국가들에 비해 역사가 짧은 미국. 그래서 그들은 역사적인 장소와 건물들을 보호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고고학적인 유물부터 절과 불상, 서적들, 도자기, 왕의 무덤과 왕관, 물품들까지, 많은 우리 유산에 대해서 저는 아주 자랑습니다. 유럽 또한 전통성 가득한데, 미국은 그런것이 없는 신생국가이므로 최대한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역사적인 장소 (Historic landmark)는 건물 자체를 리모델링하는것 조차 제재를 많이 하며 관리하는 편입니다. 뉴욕같은 경우는 문화 보호를 떠나 사실 쉽게 빌딩을 허물고 고치는것이 편한 지역도 아닌거 같아요. 빼곡히 들어차 있는 건물을 밀고 다시 짓기에는 도시가 너무 좁고, 바쁩니다. 그래서인지 뉴욕의 빌딩들은 미국 역사와 함께 한 오래된 건물들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오피스가 들어와 있으며, 사람들에게 본인의 임무를 수행중인거 같습니다. 그래서 재미있습니다. 마치 건물 박물관에 온것 처럼.
워싱턴 스퀘어 공원과 아치( Washington Square Park Arch and Park)
플랫 아이언 빌딩을 구경하고 남쪽으로 더 내려오면, 워싱턴 스퀘어 공원과 아치( Washington Square Park Arch and Park)가 나온다. 죠지 워싱텅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공원 이름을 짓고, 취임 100주년을 맞아 아치를 지었다고 한다. 그곳은 뉴욕대학교 (NYU) 빌딩이 곳곳에 있는 곳으로 뉴욕대의 캠퍼스는 아니지만 캠퍼스 같은 곳이다. 그 외 다른 대학들도 근처에 있으므로 대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부터 이스트 빌리지까지 여러 작은 레스토랑과 호프집, 커피샵등이 많이 있고, 특히 주말이면 항상 붐빈다. 꽃이 날리는 봄이나, 쌀쌀한 바람과 낙엽이 날리는 가을, 추운 겨울 코트에 파묻혀 걸어다녀도 낭만적인, 그런곳이다. 이 그리니치 빌리지 근처에 오래도록 유명한 곳으로는 블루노트 재즈 클럽(Blue Note Jzz Club) 이다. 1981년에 오픈한 재즈바 블루노트는 많은 유명 재즈 뮤지션이 거쳐간 곳으로 아직도 여전히 라이브 뮤직을 연주하는 곳이다.
https://www.bluenotejazz.com/nyc/
영어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다면 한블럭 옆에 Comedy Cellar라는 곳도 가 볼만 하다. 그곳은 아직은 무명의 코미디언들이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작은 공간의 코미디 클럽이다. 위층에 올리브 트리 (Olive Tree)란 호프집과 같은 화장실을 썻는데, 코미디하는 시간에 화장실을 살금살금 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김없이 코미디언의 타겟이 된다. 그래서 그 타겟에게 농담을 하며 챙피를 준다. (네,, 저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농담이 어떤이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가끔은 외모로 장난을 쳐 인종차별인가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미국 스탠딩 코미디를 이해한다면 그닥 불쾌하지 않다. 또한 마지막엔 정중하게 한마디 사과하며 다정한 눈짓으로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라고 매너있게 마무리하는 코미디언. 한번쯤 관객들의 모든 시선을 받고 챙피를 당하면서 코미디의 소재가 되어 보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여하튼, 단지 그 많은 시선들이 쑥스러워, 위층에서 맥주를 마시던 우리들은 최대한 참다 참다가 결국 화장실을 가던 추억이 있던 곳이었다. 단, 이곳은 유명 코미디언의 스탠딩 코미디는 하지 않는 대학가 코미디 까페 레벨이라고 말하고 싶다.
블리커 스트릿(Bleeker St.)
바로 한블럭 아래로 블리커 스트릿이 있다.(Bleeker St.) 그 길 코너에는 전설적인 카페인 피가로 (Le Figaro Cafe) 카페가 있었다. 지금은 동명의 멋진 레스토랑으로 변해있지만, 그 전에는 달달한 맛난 커피와 케익을 팔던 카페였다. 유명한 이유는 그 까페에서 오 헨리가 <마지막 입새>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에 그 카페에서 뉴욕 이탈리안 갱스터들의 총격전 관련 전설등도 전해내려오던 흥미로운 카페였다. 왕년에는 알파치노나 당대 그런 유명 배우들도 다녀가고 그랬던 핫플이었던 거 같다. 이 지역이 그리니치 빌리지인데, 그곳은 작가들이 많이 살았다는 만큼, 운치 있는 거리가 여기저기 있다.
소호(SOHO)
젊은 열기와 낭만적인 운치가 엉켜있는 블리커 스트릿에서 더 남쪽으로 몇블럭 내려오면 소호(SOHO, South of Houston Street)다. 하우스튼 스트릿(Houston St, 휴스턴으로 발음하지 않는것이 특징이다)을 중간에 두고 위는 노호(NOHO) 아래는 소호(SOHO)로 부른다.
오래전에 소호에 오면 *Dean and DeLuca를 들러 소소한 간식거리나 꽃을 사고, 커피 한잔을 사서
창가 테이블에 앉아 유리창 밖을 내다보면 참 좋았다. 미대생이었던 나는 사람을 보는것을 좋아했는데, 그곳에 앉아 지나다니는 소호 사람들 구경만 해도 시간이 금새 갔다. 그 찻길 건너편에 서있는 붉은 빌딩 앞도 사람들이 여전히 본인의 길을 가느라 바삐 지나다녔다. 1층엔 상점도 있어 사람들이 드나들었지만, 그 누구도 무심코라도 눈을 들어 올려다 보지 않았던 그 아름다운 빌딩은 소호 대표적인 주철 건물, 리틀 싱어 빌딩이었다.
리틀싱어빌딩 (Little Singer Building)
1904년에 지어진 아르누보 양식의 빌딩으로, 주철과 테라코타 디테일로 지어졌고 붉은색과 초록의 컬러 또한 다른 빌딩에 비해 화려하다. 브로드웨이와 프린스스트릿 (Prince St.) 코너에 위치해 있는 이 빌딩은 재봉틀 브랜드 싱어(Singer)가 사무실과 창고로 사용했던 곳이라 한다.
소호는 1900년대 건설업자들이 주철(cast iron)로 만들어진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스테인리스 철강이 건축 주재료로 사용해짐에 따라 주철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주철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 건축양식으로 더 이상 빌딩을 짓지 않게 되었고, 그 건물의 보존을 위해 소호는 역사 유적지 (Historic landmark)가 되었다. 미국에서 히스토릭 랜드마크가 되면 사실 건물주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고칠 수 없는, 대신 그래서 그 동네가 원모습으로 잘 유지되어 있다. 특히 그린 스트릿 (Green St.)은 바닥이 아스팔트가 아닌 원래의 자갈길이 있고 주철건물 여러채가 이어져 있어 오리지널 소호를 느낄 수 잇는 거리이다.
2차 대전후 상인들이 떠나고 소호내 건물들은 방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 지역을 '지옥의 100 에이커 (Hell's Hundred Acres)' 라는 닉네임으로 부를만큼 노후했었다고 한다. 1960-70년대에 돈없는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버려진 빈 공간에서 작품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높은 천정에 큰 유리창으로 밝은 빛이 들어오는 넓은 공간의 로프트는 예술가들이 작업하기 딱 좋았다. 그렇게 수많은 예술가와 작은 갤러리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그 예술가들이 지역을 번성하게 하므로, 뉴욕시는 무단으로 들어와 있어도 작품활동을 하는 예술가라면 로프트 법으로 그들의 거주권을 보호해줬다고 한다. 앤디워홀이나 바스키야트 같은 현대 유명 아티스트들도 그곳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그렇게 예술가들에 의해 활기를 찾은 소호에는 점점 명품 브랜드 샵과 고급 백화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소호는 90년대부터 상업지역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옷과 악세서리 같은 패션 브랜드 샵 뿐만이 아닌 독특하고 패셔너블한 디자인 편집샵, 모마(MoMA) 디자인 샵도 생겼고, 그래서 소호에서 구입한 물건이라 하면 스타일리쉬한 물건이 많았다. 트랜디하면서도 특이한 인테리어를 갖춘 레스토랑이나 바(Bar)도 늘어났다. 예를 들면, 남녀공용 화장실을 만들었는데 일부러 그 벽과 문을 통유리로 만들었다. 변기칸으로 들어가면 밖에서 훤히 다 보였던 것이다. 정보 일도 없이 들어갔다면 많이 당황 할 상황. 그런데 문을 잠그면 유리가 뿌얘지면서 불투명으로 바뀌는 특이한 화장실을 갖춘 레스토랑도 있었다. 당시 그런 기능은 별로 없었던 때라 처음 오픈했을때는 입소문이 나면서 레스토랑도 유명해졌다. 친구들이 화장실 사용을 권해서 갔는데, 문을 잠근 후 불투명해진 유리도 불안해서, 계속 통유리문과 벽을 노려보며 볼일을 해야했던 일화가 생각난다. 물론 지금은 더 독특하고 기발한 인테리어를 갖춘 곳도 많을 거 같다.
반면 많은 예술가들과 갤러리들은 소호를 떠나게 되고, 아직도 몇몇 아티스트들은, 노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소호와 트라이베카(Tribeca, 소호와 붙어있는 지역)에 스튜디오를 지키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항상 예술과 문화가 번성하여 사람들이 모여들면, 그 지역에 상업가게들이 앞다투어 들어오고, 그 지역이 비싸지고, 가난한 순수 예술가들은 또 다른 변두리 지역을 찾아 떠나야만 하는거 같음에 씁쓸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오늘의 스토리 로드맵
*참고로 딘 앤 델루카(Dean and Deluca) 소호점은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