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감을 찾는 노력

나는 심폐소생중

by Beverlymom

엄마로서의 삶도 행복하다.

아이들만 바라보고 가르치고, 세상이 어떤 곳이고, 무엇이 좋은 것이고, 맛난 것이고, 이쁜 풍경이고,,

사람이기에 우리가 이렇게 누릴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그런 것을 가르치며, 그저 뽀송뽀송한 아이의 볼만 쓰다듬어도 세상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마냥 아이들과 뒹굴고 깔깔대며 살 수만은 없다.

아이들도 자라고, 자아가 형성되며, 본인의 인생이 생긴다.


내 아이만 바라보다가 아이의 회사 인터뷰까지 따라가는, 성인이 된 아이를 여전히 유아처럼 바라보는 그런 부모도 바람직하진 않다고 본다.

아이는 커가는데 부모는 자녀를 5살 때 베이비로 여기며 계속 까꿍 거리고 있으면,

(아무리 부모라도) 성인이 된 자녀에겐 사이코패스 뮤비가 될 거다.


실로, 그 비슷한 엄마가 있었다.

나의 남편은 본인 출신 대학의 인터뷰어로 봉사를 하고 있다.

미국이 넓다보니 대학에서 각 도시 지역별로 나누어, 그 지역에 있는 졸업생들을 통해 고3 수험생들을 대면 인터뷰 한다.

어느날, 남편 출신 대학을 지원한 고3학생을 인터뷰하기로 했는데, 만나기로 한 장소에 엄마가 불쑥 먼저 들어왔다.

무턱대고 한국말로, 한국인이니 잘 부탁한다고. 남편 이름이 한국성인 것을 보고 가늠했었나보다.

본인의 자녀를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러 왔다지만, 미국에서 자란 남편은 깜짝 놀랐다. 장애인이 아닌 일반 학생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이야기를 들은 나도 놀랐다.


대부분 독립적인 아이들은 부모가 운전을 해줘도 지하 주차장에서 헤어진다.

버스를 타고 혼자 오는 아이들도 간혹 있다고 했다.

(LA 버스는 학생들에게 안전하지는 않다.)

일단 그런 학생들은 부모가 인터뷰까지 쫓아오는 것을 말린다.


미국에서는 고3 학생들이 그런식으로 부모를 대동하고 나타나면, 우선은 독립적으로 보이지 않게 되고,

그렇게 우쭈쭈 자란 아이가 먼 타주 기숙사에 혼자가서, 어떻게 대학 4년을 견디겠냐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공부만 잘하는 아이들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따라 올라온 그 아이의 크레딧을 엄마가 깎아버린 듯 했다.


본인이 갈 대학이 아닌데,

자녀를 내세워야 할 마땅한 자리에 자신이 먼저 나섰다.

남편이 기다리란 말을 안했다면 학생과 인터뷰 할 오피스까지 따라 들어올 분위기였단다. 회사 곳곳을 훑어보면서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인 엄마는 노파심이라 할 수 있지만,

엄마 본인의 정체성 없이, 아이와 본인의 삶을 합체해서 생각할지 모른다.

혹은 자녀가 본인의 트로피거나.


한국에서는 대학 수업 등록까지 엄마가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심지어 회사에 전화해서 직장상사에게 대신 따지는 엄마도 있다고 들었다.


안타까웠다.


과연 그게 자녀를 위한 일인지, 본인이 자녀를 통해 못다한 제 2의 삶을 살고 있는것은 아닌지.

영원토록 자녀를 지켜줄 수 있을거라 여기는지.

자녀를 그토록 못 믿는건지.

그리고 당신이란 존재는 이 세상에 없는 건지.


아이가 잘 되길 기원하는 마음은 알지만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한다.

인터뷰를 했던 그 학생은 충분히 똑똑한 학생이었다. 엄마가 자식앞에 나서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물론 남편이 그 학생을 떨어뜨린 것은 아니다. 인터뷰어는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포지션이 아니다.)


유아가 혼자 신발을 신겠다고 낑낑대고 있을때, 엄마가 무릎을 꿇고 앉아 그냥 신겨버린다.

아이는 운다. 자기가 할 수 있는데 왜 엄마가 신발을 신겼냐고 악을 부린다.

엄마는 대충 달래고 우는 아이 손을 잡고 끌고 나간다.

그런 실랑이를 몇 번 한후, 언젠가부터 아이는 신발을 신겨달라고 그냥 앉아있는다. 엄마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아이의 신발끈을 묶어준다. 그 아이는 이미 열살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엄마는 말한다.

'힘들어. 우리 애는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해.'

말은 그러지만 내심 만족과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10살된 아이와 본인의 존재를 여태 분리하지 못했음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어떻게 될까,,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길까? 본인이 직접 신고 싶었던 신발인데, 하고 싶었고 ,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자립심이 약해진 아이가 나중에 커서 둥지를 떠나려 할까?

혹은 마음을 숨기고 착한 아이로 지내다가, 둥지를 떠나고 나면 과연 다시 돌아올까?


사실 참고 있던 자녀가 둥지를 떠난 후 다시 돌아가지 않은 사연을 더 많이 들었다.


다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알기에 이해는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다시 나란 존재를 되돌리려는 이유,,


우선 내 아이들에게 존재감이 사라지는 그런 희미한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 존재는 사라지고, 아이의 삶이 본인꺼라고 착각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 자존감이 높고 인생을 자신 있게 살아야 내 아이들도 그것을 보고 자라지 않겠는가.

또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나도 흔들린 정체성을 찾고 다음 단계로 성장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나는 집안에 막내로 자라 책임감 있는 부담을 받아 본 적도 없고, 나를 본보기로 따라 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나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온 편이다.


그런 내게 '엄마'는 참 부담스런 자리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되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책임감이 무거운사람이다.

(물론 아빠의 책임감도 중요하다)


앞으로 긴 인생을 살아야 할 중요한 작은 사람들이, 어린 오리들 마냥 엄마를 쫓아다니며 똑같이 따라한다.

나를 24시간 바라보고 따라하는 눈들이 생겼다는 것은 참 불편하다.

예를 들면, 내가 생각할 때 입술을 내미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마치 거울을 보듯 아이들이 그 표정을 따라하고 있었다. 나중엔 남편도 따라 한다.

(네, 보기 싫어서 차라리 제가 버릇을 고쳤습니다. )


적성에 맞지 않는 끝이 없는 가사일에 질려버린 주부이자,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나란 존재가 누군지도 잊은 채,

매일 밤 허망해하는 내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또한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따라가길 원치 않는다.


엄마인 내가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어야 내 아이들도 그렇게 자란다.


내 자아가 갖춰져야 나도 행복하다.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다.

고로 내가 행복해야 우리 가정도 행복하다. ^^



존재감 찾는 노력, 나부터 찾아보자


나를 찾아내는 오래전 시간들이 마치 전생처럼 어렴풋했다.

나를 떠올리기 위해 옛 친구 몇 명에게 나에 관해 물었다.


'난 어땠니..?'


한국이나 타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라, 오히려 지금의 나보다 오래전 나의 모습을 더 기억해주는 친구들이었다.


사랑스러웠다, 아이돌처럼 귀여웠다, 착했다, 뭐든 항상 열심히 하던 친구였다 등..


좋은 친구들이라 생각했다..

멀리서 텍스트로나마 긍정적이고 좋은 단어들을 들으니 그것이 참이든 거짓이든, 그저 기분 좋아라 하는 말일뿐이더라도 지금의 내게는 하나하나 기운을 주는 소중한 말들이었다.


내 글들을 뒤지고, 오래전에 받았던 편지들도 들춰보고, 옛 사진을 보며 나를 떠올리려 노력했다.

잊었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심장을 찌릿하게 하는 것들.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더라도 아줌마, 아저씨, 유부남, 유부녀,, 참 매력없는 단어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가슴 콩닥콩닥할 때 남녀 모두 샬랄라 이뻐지는 마법에 빠지는 시기인데,

유부녀/남들은 그럴 수 없는 존재.

새로운 연인을 만나 썸을 타면 안되는 존재이므로 ‘이성적으로 매력이 없는 단어’라고 표현한 것일 뿐.

그 단어를 명찰로 찬 후부터는 그런 콩닥도 함께 사라진 듯 했다.


썸과 가슴이 콩닥콩닥..

이것은 단지 사람에 대해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하면 심장이 뛰어야한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남겼던 글, 사진, 편지와 같은 내 자취들을 보면서 심장에 울림이 왔다.

내 가슴을 심쿵하게 만들었던 많은 것들, 이뻐했던 강아지 사진, 사귀지 못했던 풋사랑,

사랑도 상처도 주고 받았던 오래된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 때의 에너지로 심장이 아주 조금 뛰는 것도 같았다.


반면 거울 속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내 모습도 마음도 눈빛도 자신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항상 무언가를 준비하고, 무슨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처럼 달리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며 달리면서 바쁘게 지냈고,

또 그 일을 해내면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렇게 아주 오래된 친구들에게 나를 물어보며 존재감 찾기의 첫발을 시작하였다.

오래전 나의 글들과 편지, 사진을 보며 추억을 소환했고, 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자존감 찾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 존재를 더 이상 잃지 않으려면...

(자존감, 정체성 찾기는 남편의 해고 사건 이전부터 시작은 되었었다.)





자존감 찾기 첫번째


우선은 내 아이들 그림을 가르쳤다.


자식에게 내 전공관련 분야를 가르치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선생님이 되기 힘든 존재이다.

일단 아이들은 엄마의 가르침을 선생님의 말씀처럼 귀담아듣지 않는다.

( 차라리 남의 아이를 가르치는게 더 쉽다.)


어느 땐 호르몬의 영향으로 감정의 기복이 롤러코스터처럼 달리는데, 와중에 항상 이성을 유지하며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내 어린 두 아이를 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또한 항상 어린 둘째가 자꾸 끼어들어 그림에 도움을 청하면서 흐름을 깼다.


혹은 내 아이들이 수업을 잘 따라오더라도 집안에는 나를 찾는 일들이 많았다.

세탁실에선 빨래들이 세탁이 끝났으니 드라이 머신으로 올려라 삑삑 대고, 끝났다고 삑삑 대고,

각종 딜리버리 맨들이나 집 관련된 일하는 분들의 방문,

급히 답변해야 하는 텍스트등 먼저 처리해달라고 하는 집안일들로 아이들과의 수업에 집중하기에는 힘든 환경이었다.

나는 미술 전공이지만 굳이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 어릴 때부터 항상 물감과 미술 용품들을 주변에 깔아 뒀다.

그래서 원하면 마음대로 그리고, 아님 말고.

물론 아이들은 ‘마음대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왔었다. 즉 다른말로 바꾸면, 아이들은 완성작을 마무리한 경험이 없었다.


내가 그림을 가르치면서 아이들과 재미로 대회에 나가보자고 목표를 정했다.

주어진 주제를 받아서, 브레인스토밍을 함께 해주고, 발전시켜 직접 그림을 그리고, 컬러까지 혼자 완성하도록 이끌어 주면서 그 과정을 가르쳐 보았다. 재미있었다.


어린아이의 그림에 내 손을 대지 않고 가르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첫째 아이는 당시 지금보다 어렸지만, 어느정도 감각이 있어서 따라와 주었던거 같다.)


또한 그 전에는 아이들이 완성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의 인내심을 완성까지 끌고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나에겐 일종의 도전이었다.


그리고 미국 NASA 전국 대회와 미국 학부모 협회에서 주관하는 Reflection 대회에 작품들을 보냈다.

수상에 상관없이 주어진 기간에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막상 결과 발표일이 되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조마조마 졸여지는 것은 뭔지..

욕심을 내지 말자..

혹여 아무런 결과가 없다면 노력했던 어린 아이가 많이 실망할까바, 대처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해 첫째 아이는 나사 NASA 네셔널 대회에서 2학년 전국 2등을 했고,

당시 그 1등은 고등학생들을 제끼고 대회 전체 그랑프리가 되었으므로, 사실상 아이가 2학년 1등을 한 느낌이었다.

온라인 시상식에 아이가 어릴때 부터 좋아하던 크레용 시리즈의 일러스트레이터 올리버 제퍼스(Oliver Jeffers)가 나와 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그 도전은 내 아이에게도 아주 좋은 경험이자 추억이 되었다.

또한 아이의 수상이 나의 자존감 포인트를 조금 올려줬다.

아.. 아직은 원하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구나...


더불어 두 아이들이 모두 준비했던 리플렉션(미국 PTA, 전국 학부모 협회에서 매년 주관하는 대회)에 그림, 사진 등으로 수상을 하였다.

특히 첫째의 사진은 학군들 레벨로 올라가서 시상식도 큰 강당에서 했었다.

첫째 아이는 무대에서 쑥스러워했지만, 큰 경험을 하였다.

비록 그 다음 단계인 주(State) 레벨까지는 못 올라 갔지만, 아이들이 무척 자랑스러워 했다.

오랜만에 선생님 역할로, 내 가르침과 함께 준비했던 프로젝트들이 수상을 함으로써 내 마음에 배터리가 조금씩 충전되었다.

그렇게 아주 작은 하나라도 소중히 주워 내 자존감을 위해 연결시켰다.



참고로요,

집안 가사일이 잘 맞고, 그것으로 인해 본인의 자존감이 가득 해지는 분들도 주변에 많아요.

이 글들은 어디까지나 초보 브런치 작가, 베버리토리의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의 이야기입니다.

주부가 매일 하는 끝이 없는 가사일을, 회사일처럼 잘 할려고 노력하다보니 번아웃된 것이지,

절대 주부의 역할을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므로 오해의 소지가 없길...

이전 07화내 존재감이 사라질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