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감을 찾는 노력

한조각 한조각

by Beverlymom

자존감을 찾기위한 두번째 노력


그 다음은 손을 풀기 시작했다.

10년동안 아이들에게 공룡그림말고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이 손이 무엇을 그리겠는가.

(공룡 그림으로 두아이에게 영웅대접은 받았...)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임신을 하고 잠시 내 일과 공부를 놓을 당시 육아를 위해 잠시 쉬는거지, 내 분야가 미술쪽이라 은퇴없이 평생 그림을 잘 그릴 줄 알았다.

내가 무지했다.

10년동안 녹슬은 손은 그림을 정말 못 그렸다.

잉크펜 그림은 엉망이고, 연필로도 안되어 막막했다.


와중에 함께 그림 그리던 미술 친구가 무척 그리웠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안타깝지만 대부분 여친들은 아이를 낳고 그림을 놓았고, 한국으로 귀국한 친구들도 있고, 남자들은 대부분 결혼 후 연락을 하지 않을 뿐더러 이 모든 친구들은 일단 가까이 살지 않는다.


자주 연락하던 자동차 인테리어 디자이너 친구 조차도 회사일과 외아들 육아에 바빠 나랑 놀아주기엔 시간이 벅찼다. 거기다가 회사를 이직하면서 1시간 넘는 거리인 얼바인으로 이사를 갔다.


주변에 찾으면 남아있는 미술하는 친구들은 모두 열살이상 연하 어린 싱글 친구들이었다.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데 나랑 놀아주겠냐 말이다)


소스라치게 그리웠다. 내 또래의 미술 친구들이...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동네 미술학원 문을 두드렸다.

초등 전시회를 진행하시는 좋은 원장님이셔서, 딸아이를 보내려 웨이팅 걸어놓은 학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성인반 클래스는 안 하시나요..."


로 말문을 터 미술인이 그립습니다... 자녀 이야기가 아닌 그냥 조건없이 순수하게, 혹은 실없는 대화라도 하던 그런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화실 혹은 학교에서 과제하며 친구와 수다하던 그 때가 그립네요... 주절주절...

지금 생각하니 당시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고 잘 받아주셨던거 같다.

( 역시 내공이 남다르셨다.)


그렇게 문을 두드려, 선생님은 성인 수업 대신 작은 모임을 만들어 주셨다.

원래 그림을 함께 그리던 소모임이셨다는데, 나로 인해 다시 재모임을 가지려 했지만 결국 다른 두분은 아내, 주부, 워킹맘등의 삶에 바빠 모임에 나오시지 못했다.

다른 두분은 못오셨지만, 선생님과 둘이 여러가지 수다도 하고, 이런저런 작은 스케치를 하며 손을 풀었다.

일주일에 한번이었지만 마음에 위로가 되었고, 적어도 집중해서 연필을 끄적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며, 화실에서 나는 냄새가 나를 다시 그 세계로 인도해 주는 듯 했다.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시작해서 잠시 쉬다가,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며 선생님의 모임에 갈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지금은 쉬고 있는 상태이다.




세번째 노력


유툽을 뒤져보았다.

세상과 연결시켜 주는 하나의 끈.


유툽이라는 미디어는 세대를 넘어 좋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제공하는거 같다.


그곳을 들여다 보면 요즘 MZ 세대들은 젊음이 이렇게 지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N잡러라는 말이 생길만큼,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이것저것 해보는 그런 성실하고 건전해 보이는 세대들.

이들은 전반적으로 우리 세대보다 경제적인 면도 알뜰하고, 진지하게 삶을 살아가는 20대들로 보인다.


이 세대는 유들유들해 보이면서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하고, 거기다가 수입까지 만들어내고 있었다.

( 내가 20대때는 친구들이 알바하고 월급 못 받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ㅜㅜ )

그런 그들을 보면서 놀랐다.


물론 나의 세대들은 지금과 다른 테크널러지와 인터넷 환경에 있었고,

아직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일하던 시기라 지금처럼 N잡을 했다가는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그들에게 배우고 있다.

어릴적 내게도 저런 멘토가 있었으면 실수없이 잘 도달했을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테크널러지 발전의 영향뿐만 아니라, 시대가 다른 그 세대에 따른 각각의 인생관과 사상, 철학이 존재하므로 무엇이 옳고 그름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어디든 서로 배울점이 많다는것은 확실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가끔은 헐리웃 영화 관련 디자이너가 뜬구름은 아닌지,,(실로 내가 하고자 했던 그 직종의 자릿수는 적다.)

괜히 패션 브랜드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갔던 것은 아닌지,,

버티면 된다지만, 나처럼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생각만 하며 버티고 있는 꿈이 무슨 의미인지,,

존재감이 사라지면서, 내가 고집하던 꿈들도 하나하나 지워져가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꿈들도 아니었는데 근처에서 포기해야하나 싶었고, 그 일을 지금 하고있는 동기들도 질투가 났다.

다시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세상 크리에이티브한 그곳에 들어가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나이는 아닌지,,

부모란 존재들은 무조건 현실적으로 사는게 맞는 일인지,,


하지만 분명한건 나도 내 아이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했다.


이렇게 혼란스러울때, 유툽은 도움이 되었다.

큰 목소리로 삶에 잔소리 해주는 분도 계셨고,

애틋한 말투로 위로와 교육을 조언해주는 분도 계셨다.


그런데 내 혼란스런 의문들에 '답'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 사람은 MZ 세대의 유투버였다.

화이트보드에 마커로 적어가며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갬성 가득한 20대 유투버.


항상 주춤만 하고 있던 나

그런 주춤거리는 행위 자체도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몇년전 NFT 디지털 아트를 보며 드디어 우리의 세상이 왔구나,, 하면서도 당시 코비드로 인해 갇힌 집안에서매일의 가사일을 하느라 지쳐, 혼자 그 온라인 세상을 공부하다 잠들었다.

결국 더 많은 아티스트팀들이 밀려 들어왔고, 참여할 골든 타이밍을 놓친 경험은 가사일 변명만 늘어논채, 작품은 내지도 못했다며 스스로의 자존감만 깍아먹었다.


세상의 흐름을 빨리 따라가지 못하여 온라인 아티스트 인생은 시작도 못한채 주부생활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 하지만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그 누구보다 중요한 주부역할이므로 그 일이 항상 일순위이긴하다)


여하튼 유튜브는 안방에서 만날수 있는, 자기계발, 트렌디, 교육, 책추천 등등 무궁무진한 세상이었고,

빨리 돌아가는 세상의 흐름도 유튜브에서 느낄 수 있었다.




네번째 노력


책읽기


마음이 어지러워 도피처로 찾은 동굴이 독서였다.


육아책만 널려있던 책상위에 내 오래된 전공서적도 나오고, 다른 여러 주제의 책들도 쌓이기 시작했다.

한번에 몇시간 읽을 처지는 못된다.

차에 책을 가지고 다니며 아이들이 태권도 수업을 듣는 동안 틈틈이 읽거나,

등교시킨 후 커피 마시며 조금씩 읽고 있다.

먹지 않고 쟁겨놓은 간식처럼 아직 읽지 못해 쌓여있기만 한 책도 있다.

쌓여 있는 책만 봐도 좋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진행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다.


나도 그림을 매일 그리며 손을 풀고 싶고, 매일 꾸준히 책을 읽고,

일주일에 두세번 운동도 하고 싶고,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두번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싶지만 쉽지 않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지금도 당장 아이가 열감기 걸려 누워있는데 어찌 내가 정했던 시간에 글을 올리고,

그 곁에서 책이 눈에 들어오냐 말이지.

아이들이 아프고 나면, 그 다음은 내가 아프고, 그렇게 생활 루틴이 깨지면 다시 잡기까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이런게 지친다)


그래도 쌓여있는 책들의 겉표지만 봐도 책읽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느낌이다.

요즘 읽는 책은 비즈니스북스의 'The one thing 원씽' 번역본이다.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 것이 집안일인걸 알게되었고,

쌓여가는 해야할 많은 일들에 질려버린 내게 보슬비같은 책이다.

한마디로 '뭐시 중헌디..' 라고 알려주는 책같다.


지금은 100권 읽기에 도전을 해보려 한다. 기간은 내년까지,,

당장 시작하긴 했지만 명절과 연말이 다가오고 각종 행사까지 많은 지금, 당장 이번 12월까지 과연 몇권의 책을 읽을지 나도 의문이다.

하지만 정해 놓은 그 일년이 좀 더 넘더라도 큰 스트레스 없이 그 도전을 마치면 내 자존감이 좀 더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독서를 하면,

내 속을 채워주고,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래서 더 깊이가 생길지도 모른다.

책으로 부터 위로를 받고,

요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나, 무엇에 관심이 있을까,, 책속의 작가는 유투브와는 또다른 식으로 이야기를 해준다.

실천법과 공략집 같은 답을 제시해 주려고 노력하는 책도 있다.


독서는 내 몸에 건강한 야채 샐러드를 먹고, 매마른 내 속을 촉촉하게 채워주는 느낌이다. .




다섯번째 노력


수업듣기


지난 여름 내가 다니던 미술대학의 넌크레딧 Non- credit수업 (학점이 없는, 일반인도 들을수 있는 수업) 하나를 등록했다. 평소에 듣고 싶었던 그림책 만드는 수업이었다.


코비드의 영향으로 보편화 되어버린 온라인 클래스.

온라인 수업이라 네트웍을 따로 쌓지못해 아쉬웠지만, 몸은 편했다.


비록 나에게 생소한 방법의 온라인 클래스였지만,

오랜만에 교수님과 동료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것만도 좋아서 눈물이 핑 돌았다.

더불어 내 영어실력이 이정도로 떨어졌나 싶은 맘에 눈물이 또 핑 돌았다.


그런 명분 있는 수업을 들어야 집안일들을 제쳐두고라도 집중을 하고 작업을 하게 된다.


다시 아이맥에 포토샵을 깔고 작업을 하는데 아주 많이 어색했다.

그런데 역시 손은 어느정도 기억을 하고 있었고,

펜으로 그리는 그림은 정말 못 그렸는데, 컴퓨터 작업은 손이 기억하고 있었음에 신기했다.

이 실력으로 미국 취업비자를 받고 돈을 벌었는데, 그 정도 숙련이 되어 있었기에 10년의 시간이라도 손과 머리가 기억을 '조금'은 하고 있구나...

그래 머리가 생각만큼 나빠진게 아니야 ,, 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자존감에 +1 포인트 올려줬다.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 과제에 노력했는데, 역시 아이들에게 가는 손길이 덜해지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작업하던 그림책 더미북 마감일과 겹쳤던 아이들 리플렉션 대회.

결국 엄마가 너무 바빠 접수를 못 해주고, 아이들은 학교 대회에 아트작품을 출품하지 못했다. ㅜㅜ

둘째 아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시무룩해 보였다.


아직은 나의 일이나 공부에 풀타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란 생각을 하였다.

내 두 아이가 여전히 엄마 손길이 필요한 어린 학생이므로.


*한국은 문화센터나 학원이 많아서 관심 분야의 수업을 쉽게 접할 수 있을 거 같다.



여섯번째 노력


브런치에 도전하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글은 끄적여왔다.

그 글들은 내 노트나 스케치북 어딘가에 끄적여 있고, 컴퓨터 파일이 된 모습으로 메모리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각종 노트앱에 짧은글들로도 널려있다.

심지어 20대때 적었던 한글 파일들은 너무 오래되어 오픈 할 수도 없단다.

이 모든 글들은 내가 스케치북에 빨리 러프 스케치를 하는것처럼,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가볍게 요점만 적어놓았던 글들이었다. (오픈하지 못하는 파일의 내용이 궁금하다)


책을 내고 싶은 욕심에 몇년전에 브런치를 둘러 보다가, 코비드를 겪으면서 브런치를 들어오지 못하였다.


대신 그 갇혔던 시기에 아주 그리웠던 친구들과의 커피 브레익이 떠올랐고, 내가 좋아하는 그 그리운 친구와의 수다와 여행을 주제로 끄적여 보았다.


예전에 갔었던, 묵혀뒀던 여행 이야기이라 정리가 잘 되는 느낌이었다.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엮어보고 싶은 주제였는데 필력이 약해서인지 뜻대로 잘 써지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마구 써내려갔다.


의도와 달리 재미없는 여행 리포터 같기도 하고 혼자 갸우뚱하며 글을 적었다.

오랜만에 스케치를 했는데 이전처럼 잘 못그리듯이,

오랜만에 글을 써내려 가는 것만도 쉽지 않고 고민도 많았다.

머뭇거리며 브런치에 도전을 하고 다행히 합격 소식을 받았고, 무척 기뻤다.


그 경험은 생각보다 내 자존감 포인트를 많이 올려주었다.


내가 브런치에 도전을 하게 된 이유가 바로 내 자존감을 찾아가는 과정 중 만났던 도전이었다.


쑥스러워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조언이 필요해서 조용히 잡지사 출신 오랜 친구에게 읽어봐 달라고 했다.

그 당시 평가는 없었다. 끙..ㅡㅡ;;


대신 그 친구가 한마디 해줬다.

글을 계속 적고 쌓으란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 조금 알거 같다.

브런치가 있어서 사실 글거리를 생각하고 틈틈이 글을 찾아 읽게된다.

이리저리 쳐박아 두었던 나의 작은 스토리와 생각의 조각들을 주서담게 되었다.

그러다 내 글을 읽어주신 브런치 작가분의 '라이킷' 하나만 켜져도 인정받은 느낌에 그저 눈물날 듯 행복했다.


왜 글을 쓰는지,,는 좀 더 나은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엮어가는 법을 익히고 싶다.


글쓰기를 조언해 주신 글 중에,

만명의 구독자가 있을때보다 차라리 아무도 보지 않을때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하셨다.

그래서 어쩌면 일기장에서 조차 한번도 해보지 않은,

마음을 정리하는 글에 추억도 찾아 버무려보며 공개적으로 써보는 이 경험이 내게는 값지다.


사실 작년 10월 남편의 해고 후 존재감에 관련된 글들을 두서 없이 쓰다가 몇달 글을 쓰지 못했다.

나의 부족함들이 보였고 그래서 관련책들을 읽으며 나를 보충하려 노력하였다.




일곱번째 노력


운동


어딜가도 항상 등장하는 단어인데, 공기와 물, 음식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인거 같다.

몸 근육이 사라지면, 머리와 마음의 근육도 함께 서서히 사라져 간다.


나는 운동에 대한 의지가 강한편이 아니다.

차라리 인정을 하고나면 마음이 편하다.


지금은 살려고 운동을 시작하였다.

나약해진 체력을 살기위해 길러야했고, 달리기도 힘들어 일단 걷기로 시작하였다.


친구와 함께 동네 공원을 걸었다.

조금만 걸어도 계속 헐떡였지만, 점점 걸음 속도를 올리며 한두시간 걷기도 했다.


그리고, 몇 달 전에 근력운동을 다시 시작하였다.

8여 년 전 둘째를 낳고 살도 빠지지 않고 몸도 아주 좋지 않았을 때, 개인 코치님과 일주일에 두어 번 이상 운동을 하면서 식단조절을 하였고, 그때 건강도 찾고 두 달 만에 18파운드(8킬로미터 정도)를 뺏었다.

당시에는 음식조절도 열심히 하고, 건강해야 아기들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었고, 잘 유지도 되었었다.


이사를 가면서 코치님과 더 이상 트레이닝을 할 수 없었고, 그 후 개인적인 일들로 다시 몸이 불었고, 동네에서 걷기나 필라테스를 하며 근근이 건강 유지를 하던 중 코비드 19가 돌면서 모든 것이 중단되었었다.


그 후 주부인 나는 가사, 교육, 육아 등으로 가족들을 서포트하느라 내 몸에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그 새 나도 나이가 들었지만, 팬더믹 동안 체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믿을만한 분에게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내 몸을 나보다 더 잘 단련시켜 주실 전문가인, 이전의 그 코치님을 찾아 멀리까지 내려간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근력운동도 코치님은 매번 자세를 바꿔가며 같은 부위도 지루하지 않게 운동을 하게 해 주신다.


나처럼 궁둥이 부치고 오래 앉아 있거나, 집에 있기 좋아하는 스타일, 독립적으로 운동하는 의지가 박약한 사람들에게는 그룹클래스나 개인레슨이 좋은 것 같다.


근력운동, 걷기, 필라테스, 에어로빅, 수영, 테니스등 각종 스포츠 중 본인이 맞는 것을 선택해서 꾸준히 운동하면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지는 듯하다.


모든 할 일과 잡념들을 비우고 운동에 한두시간 집중하고 나면 머리끝까지 피가 도는 느낌에 정신도 맑아지고, 잠시나마 일상의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





여러 노력 덕분에 자존감이 조금씩 올라,

지하 10층에 있던 내 자존감이 이제는 지하 1층과 지상 사이 정도에 보일듯 말듯하다.


한조각 한조각 모아서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듯,

나 스스로 차곡차곡 포인트를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흩어지고, 번아웃된 내 모습은 사라지고,

자존감도 나의 자아도 다시 형성되어질거라 여겨진다.


앞으로 몇번째 노력에서 어디에 도달해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다만, 계속 글을 쓰다보면 내 심장을 콩닥거려줄 그 무언가를 다시 찾는것에 게을리 하지는 않을 거 같다.

내 심폐소생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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