갬성은 사치
매섭던 겨울바람이 가고 점점 따뜻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벚꽂이 날리고,, 과제하느라 밤까지 야간 작업을 하고 나오면 산뜻한 봄밤 공기가 그냥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가끔 봄축제 기간이면 동년배들이 가득차 있는 예술대 마당. 나도 청춘이었지만 당시는 그 청춘들이 좋고 신기했다. 그랬던 기억 때문인지 30대가 되어도, 남친이 있건말건, 봄바람이 솔솔 불면 별일 없어도 마음이 설레고 마치 좋은일이 생길거 같고 기분이 붕 떴다.
아이를 낳고 육아에 혼을 빼고 정신이 들 무렵부터인지, 언제부터인지 요즘은 가을을 탄다.
캘리포니아에 시원한 바람이 불면 잊혀졌던 기억이나 추억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집중도 잘 안되고 시간이 살짝 느리게 간다. 그래서 기분이 이상하다.
어떤 주체가 없어도 설레고 기대가 되던 갬성 20대와는 달리,
지금은 어떤 주체없이 무언가 그립고 마음이 콩닥콩닥하며 감성적이게 된다.
와중에 한 친구가 음악을 하나 링크해줬다.
테이의 모놀로그.
어릴때 많이 좋아하던 버즈Buzz의 노래인데, 테이가 리메이크한지는 이제 알았다.
테이님과 민경훈님,,
두분 모두 어마한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이고, 같은 노래지만 느낌도 달랐다.
민경훈님은 그 노래를 할때 20살이었고, 지금 테이님은 30대 후반.
느낌이 다를 수 밖에...
난 두 곡 모두 좋아서 에어팟을 끼고 늦은밤까지 계속 들었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링크해줘서 내 가을병을 퍼뜨렸다. 테이님의 노래로 알고로만 있던 친구도 있었고, 나처럼 밤새 들었던 센티한 친구도 있었다.
엄마라는 역할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하는 쪽이다 보니,
엄마가 된 대부분의 친구들은 테이님의 목소리를 깊이 느낄 시간없이 아이들 라이드며 마켓에서 장을 보고, 운동을 하고 학교 봉사하러 다니기 바빳다.
그런 모습들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일만큼 가을병이 깊어졌다.
오늘 아침이 되어보니 비는 내리고, 이미 이틀여 정도 주었는데도 내 속에 소녀는 계속 갬성을 찾아대었고,
그래서 에어팟을 끼고, 커피 한잔을 곁에 두고, 브런치 글을 쓰기 위해 컴터를 켜고, 모든 갬성을 끌어 올렸는데...
ㄲㄸ..
'역시 테이 노래 넘 잘한다'
'와우..대단'
'성대결절올라. 오래 듣고 싶은 보컬인데,, '
'이곡 넘넘 멋지지 않니'
'김치세일한데'
'뮤비 3분 40초부터 대박 멋져..!'
' ㅇㅇ 김치 사러가자'
'얼렁 댕기와'
.
가끔 다섯명, 우리의 대화들은 개그같다. 그래서 재밌다.
음악과 감성 이야기가 나오다 톡방엔 바로 김치세일과 쌀세일의 정보가 떳다. 평소에도 새로 구입해본 음식의 리뷰나 정치 이야기등을 올려주는 알짜배기 현실 조언들도 가득하다.
우리에겐 오래 감성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아이들을 데릴러 갈 하교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퇴근이 아닌 새로운 출근 2차전이 시작되는 시간이 아이들 하교시간.
여하튼 대화중에 주제가 갑자기 바뀌어도 누구 하나 기분 언쨚은 사람 전혀없다. 서로의 삶을 알기에..
기승전생활정보,, 그게 더 중요해진 세계..
마켓으로 가는 친구들과 인사후 단톡을 닫고,
다시 집중해서 글을 쓰려는데,,
띠링..
아이 담임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비가와서 캔슬 될 줄 알았던 학교 달리기 행사는 캔슬이 안 됐다고,,
얼른 발룬티어(이미 봉사신청 해놨음) 띠오라고,,,
와서 코비드 테스트해야하니 좀 더 일찍오라고..
에헤이~
그렇게 피우지 못한 갬성 몽오리를 주렁주렁 달고 아이 학교로 뛰어갔다.
사우스 캘리포니아에서 흔치않은 비오는 가을날임에도,
갬성은 사치인 엄마 라이프...
그래도 하루하루 즐겁습니다 (크..이 짠함)
지금 글을 쓰는 중에도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테이님의 가창력에 심쿵중입니다.
몸은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나름 촉촉이 가을타고 있는 사람입니다.
엄마란 인간도 감성이 있는 사람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