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수다 - 학부모가 된 후 사패를 만나다

by Beverlymom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첫 엄마들 모임이 뭔지 모르게 불편했다.


첫학부모 모임.


아이들 유치원에서 처음 만난 엄마들이라도 서로 눈을 마주치고 반갑게 인사하고, 동지애 같은 것을 느끼던 그런 엄마 모임들과 달랐다.


처음엔 나의 영어 부족이라 여겻다.

아기 출산 후 5-6년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지내다보니,

아이들을 대동하지 않은 엄마들만의 모임, 그런 사회생활 적응이 힘든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된 것은, 그 때의 불편함은 나의 언어 능력이 모자랐던 것만도 아니고, 사회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것만도 아니었다.


학부모라는 관계가 그닥 편하지 만은 않았다.

이 불편함은 무엇이지,,

졸려 죽겠는데도 이 가식적으로 나오는 미소는 무엇이지,,

다가오는듯 말듯, 무시하는듯 아닌듯,,


학부모...

함께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던 회사 동료도 아니고,

함께 나의 약점이 드러나든 말든 마음으로 다가가는 나의 친구도 아니고,

함께 기도를 할 교회 형제자매님도 아니다.


함께 해야할 일이 있을 듯 하지만 함께가 아닌 묘한 경쟁 혹은 긴장감이 있는 느낌.


학부모의 관계는 나와 그가 둘이 만나는 관계가 아니다.

두 사람이 아닌 적어도 아이들이 포함된 네명이상의 관계들이 함께 얽혀있는 사이.


이미 다른 지역이나 다른주 친구들로 부터 여럿 드라마를 들었던 터라 내가 좀 더 예민 했을지도 모른다.


처음 킨더 (kindergarten, 한국으로 치면 유치원 레벨이지만 초등 학교내에 있다)를 들어왔을때 모든것이 낯설었다.

더구나 무자비하게 날라오는 수십통의 이메일을 매일 체크하는 것도 피곤했다.

아직 기저귀를 차고 밥달라 물달라 뛰어다니는 둘째를 곁에 두고 이멜을 일일이 체크하기엔 내 집중력은 이미 한계에 다달아 있었다.


당시 엄마 모임에 나가면 어느정도의 정보를 들을 수 있을 줄 알고 참여를 하였다.

그 모임 장소는 동네에 아늑한 어느 와인바였다. 저녁후에 와인바에서의 모임,, 느낌이 괜찮았다.

어색하게 들어갔는데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주로 여느 미국 쇼셜 모임처럼, 먼저 인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싶었으나 대부분이 힐끗 쳐다보고는 어느 누구도 자리를 내어주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오 이 기운 뭥미..'


한국, 뉴욕, 엘에이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회사도 다니면서 여러 모임을 갔었지만,

아무리 낯선 파티나 모임에 가더라도 느껴본 적 없는 그런 싸~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어느 백인 선배맘이 자기곁에 앉으라고 자리를 내어주었다.

까만 아이라인을 세게 그린 살짝 무섭게 생긴 분이었지만, 그 때 그분은 내 눈에 세상 아름다운 천사로 보였었다.


그 모임 이후론 삼삼오오 친한 엄마들과의 와인 모임 말고는 학부모 엄마들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물론 그 후 팬더믹으로 인해 모임 조차 없었지만.


학교 학부모 엄마들은 유치원 엄마들의 육아 동지 모임과는 완전 달랐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나름 전문직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엄마들은 본인 대부분 일에 바쁘고 점쟎은 편이다.


더 분위기 있고 세련되어 보였지만, 쎄 하게 감도는 기운과 쑥덕쑥덕거리는 이야기들,,

나즈막히 쑥덕이는 소리에 뭔말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저리도 쑥덕일까.


(미국 초등 6년차 학부모가 되니, 당시에 그분들이 쑥덕였던 내용들이 무엇일지 대충 알 것 같다.)




한국 엄마 모임


한인 엄마들 모임에는 내 나라 한국과 한국인을 서포트 하는 마음으로 갔다.

역시 자상한 한국 선배맘들은 이런저런 정보도 알려주시면서 조곤조곤 여러가지를 알려주셨다.

또한 아이들 방과 후 학원에서 만났던 할머니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미국 초등학생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였다.


내가 사는 곳은 학군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중고등은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 초등학교는 생각보다 공부를 많이 안 시킨다.

대신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교를 다니고,

학교를 좋아하고 그 곳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배우며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가끔 한국 엄마들 사이에 요상한 소식이 돌기도 하고, 이상한 캐릭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살면서 처음 보는 캐릭터들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규모가 작고, 저학년때는 부모들도 거의 서로 다 안다.


그렇게 학교가 작기에 유독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듯 한 두 엄마들이 튀기 시작하였다.

(물론 외국인까지 뒤지면 더 많은 이상한 부모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 분 중에서도 참으로 보기 드문 캐릭터였고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였다.

내가 초등학생때조차 본 적이 없는 유치한 캐릭터도 있었다.


우리동네 대부분의 한국 엄마들은 그들과 맞닿뜨리지 않고, 나이스 하게 그냥 그들을 피하려고 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오히려 더 휘젓고 다니는 분위기였다.

어느 누구도 제재를 하거나 싸움을 걸지 않기 때문일까.


그런 불편해 보이는 인간관계가 왜 학부모 사이에 있는것일까.

말많은 여자가 많아서 그런것은 결코 아니다.

여러 인종이 많아서도 아니다.

대부분 잘 지내고, 서로 도와가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 요상한 캐릭터들은 아니다.

실례들을 세세히 적을만 한 간단한 일들이 아니라서 그들의 행동을 일일이 적을순 없지만,

결론은 몇 선한 엄마들이 전화기를 붙들고 울면서 나에게 몇시간 하소연했던 사태들이 생겼다.

다른 엄마들을 힘들게 했던 그 한명은 남다른 4차원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려 노력했었는데, 결국 몇 년이 지나서야 숨겨졌던 모습이 드러나며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캐릭터엿다. 하지만 학교에서 계속 마주쳐야했고, 그녀는 항상 친절한 듯 학교를 누비고 다녔다.


처음 겪는 요상한 캐릭터를 의식하던 중에, 유툽에서 정신과의의 동영상을 보았는데 너무나 그 둘과 흡사했다.

그들이 말로만 듣던 사패나 소패의 일종...인듯.

전문가가 아닌 내가 진단서를 끊을 수는 없었지만 확실했다. 물론 심각한 사회 범죄자 수준은 아닐거라 믿고싶다.


한명은 질투와 시기가 많고 세상이 본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걸로 여기며 주변인을 이용하는 안하무인이었고,

한명은 파악이 안되었다. 그 요상한 한명을 파악하려면 아무래도 전문가가 나서야할 것 같다.

몇년을 지켜본 결과 그들은 가장 잘 해주고 챙겨주는 친분있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본인 아이 잘못도 있는것은 모르고 남의, 특히 그녀를 잘 챙겨주던 집 아이를 매번 사소한 문제를 트집잡아 컴플레인하여 교장실로 몇번 호출 시켰다.

그들은 항상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여기서 안 먹히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 그 아이가 성별 국적 상관없이 거짓말과 이간질을 하며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은 어린 아이들끼리도 서로 다 안다) 피해다니니 , 왕따bully라고 학교측에 억지를 썼다. 본인의 딸이 bully 당했다고. 새로 전학온 아이가 잇으면 친한 친구로 만들고 전에 친하던 친구은 단절해버린다. 그런일이 몇년 반복 되다보니 그들의 일은 규모가 작은 학교인지라 점점 드러났다. 내 눈엔 그 모녀는 스스로 왕따를 시키고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역시나 항상 피해자 코스프레고 엄마도 변하지 않아 보인다.


뭐시 중헌디...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는 일은 큰 행운인것을...


미국 학교는 아이들의 경쟁은 커녕 등수도 없고, 특히 초등학교는 평화롭다.

한국에 비해 공부도 전혀 어렵지 않고, 빡세게 시키지도 않으며,

대부분 즐겁게 지내는 이런 평화로운 미국 학교에서 굳이 그렇게 뾰족하게 지내는 이유는 무엇이고 왜 남들을 이용하며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인생에서 여태 본 적이 없는, 드라마에서 본 듯한 캐릭터들을 왜 난 지금 학부모가 되어서 마주치게 될까.

(물론 나도 그들과 특히 아이 관련해서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최대한 피하고 있다. 나 또한 내 아이를 보호해야하는 의무가 있으므로)

한참을 고민해 보았다. 불편한 학부모간 인간 관계에 대해서.


나름 결론으로 내린 생각은, 아마도 학부모 세계는 '필터링'이 되지 않아서인 듯 싶다.


고등학교까지는 내가 운이 좋았거나, 어려서 몰랐거나, 우리 세대가 순수한 편이었거나 혹은 엄격한 학교의 통제 아래여서 그랬던건지,, 어떤 이유에서건 그런 남에게 피해주는 요상한 인물들을 본 적이 없었다.

날라리라는 표현을 쓰는 무리가 있기는 했지만, 일반 학생을 대놓고 괴롭히거나 그러진 않았다. 요즘의 일진과는 상당히 차이가 났다.


대학교나 직장은 한번 필터링이 되어 있다.

그나마 시험을 치르고 인터뷰를 했기에 광인이 걸러졌을 확율이 아주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나보다 오랜 경험을 가진 교수나 임원들이 뽑았다해도 이상한 사람을 가끔 만날 수 있다.

그래도 그나마...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미생'을 읽어보면 그런 대목이 나온다.

'회사가 전쟁터면 회사밖은 지옥이다..'

회사는 필터링이 되었고, 그나마 광인이 있었더라도 룰이라는 것이 있기에 지옥이 아닌 전쟁터이지 않을까 싶다.


어릴때는 설령 남들을 힘들게 하는 요상한 캐릭터를 만났다면 굳이 얽히고 같이 지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서로 본인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각자의 길로 가면 그 뿐이었던 것이다.


학부모.. 여기가 골때린다.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도 아이들의 생일파티나 혹은 플레이 데잇, 엄마들 모임을 위해 억지로 같은 공간에 있어야 했다.

즉 나랑 안 맞다고 안보면 끝... 이 아니란 것이다.

그들이 분위기를 휘젖고 다녀도, 내 자녀와 다른 친구들의 관계들도 있기에 모임에 가야만 한다.


그들은 항상 어디든 끼어있다.

전학을 온 새로운 가족이 있다면 항상 그들이 먼저 다가가 있었다. 마치 도움을 주는 좋은 사람인 마냥.


입시를 두고 경쟁하는 고등학생도 아닌 이제 초등학생들…

겨우 몇년 학부모 삶을 겪으면서 새삼 인터뷰의 중요성과 선배맘들의 내공과 인내를 느끼게 되었다.


학부모들은 그냥 본인 아이들 잘 키우고, 친한 엄마들은 함께 밥먹고 커피 마시며 좋은 이야기만 하고,

뜻이 맞으면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거나 운동을 같이 하며 스트레스 풀고. 이 얼마나 좋은 관계인가.

내 아이,, 남의 아이,, 결국은 어린 아이들.


왜 시기, 질투에 친절하게 잘해주던 사람의 뒤통수를 치면서 이간질까지 할까.

좋은 사람들의 모임에서도 그들의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당한 사람이 있으니깐...

그들에 관련된 대화가 나오면 시간낭비 같지만, 또 들어놓기는 해야한다.


남의 자식은 귀한지 모르는 부모들도 있고,

친구들을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보게 하며,

자기 자식만이 최고로 보이게 하기 위해 거짓과 진실의 중간에서 다른 부모들의 간을 보며 남의 자식에게 피해를 주는 어른이 있긴 하더라.


아이가 같은 학교를 다니면 내가 싫든 좋든 마주쳐야하고,

예의상 인사와 대화를 해야하고,

그러면서 그들의 드라마에 얽히기 싫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약간의 경계를 하며 지내야하는 긴장감과 그로부터의 불편함...


그런 긴장과 불편함들이 학부모 모임의 공기중에 떠돌았던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누가 사패인지 알 수가 없기에,

그런 이들을 만나면 선배맘들은 어떤 구설수들이 생길지 알기에,

첫 학부모 모임에서 함부로 친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름의 경계와 관찰 시기.


아이를 낳는다면 피해 갈 수 없는 학부모 인생.


아이들의 건강, 학업, 인성, 교우관계, 다양한 경험과 운동등 신경 쓸 게 너무나도 많은데,

요상한 캐릭터들까지 보면서 지친 마음을 수다로 풀어보았다.

앞으로 남은 몇년간의 학부모 기간을 현명하게 보내보는 생각을 하며...


<스케치>



‘아무수다’는 정확한 조사를 기본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그저 일상의 한 순간, 혹은 친구들과의 수다의 한 순간에서 뻗어 나온 생각을 적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담은 수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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