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할머니
한산한 교외 지역으로 이사 온 후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가끔 산책을 한다.
태양이 뜨거운 캘리포니아 지역이라 아이들과 편안한 산책을 즐길 시간 맞추기가 까다롭다.
그래서 가까운 데스칸소 가든 (Descanso Garden)이란 곳에 멤버쉽을 끊어서 자주 간다.
그곳은 정원 같은 공원인데, 나무가 많고 그래서 그늘도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각종 식물도 보고, 계절마다 다른 꽃들과 작은 연못들도 있다.
데스칸소 가든에 가면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엄마들도 많고, 혼자 걷기 운동하는 사람, 데이트하는 커플, 산책하는 어르신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항상 한적한 듯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가든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하거나 아이들 간식을 먹인다.
팬더믹 전에는 가든 곳곳에서 화가들이 이젤을 세워두고 풍경화를 그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였다.
그래서 나도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고, 그림을 그리러 갔었다.
에코백에 주섬주섬 물감과 컬러펜슬, 크레용, 물수건등 아이들의 나이에 맞는 재료들을 대충 집어넣고 가면 끝.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엎드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서 그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세 살과 여섯 살 즈음이었다.
그날도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다니고 노닐다가 그림을 그리고 또 노닐고,, 그런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 오늘은 이곳에서 그림 그려볼까?"
일본식 정원 내에 짐을 풀었다.
그늘에 테이블까지 있어서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 딱 좋은 자리였다.
"나무도 보고 연못도 보고, 하늘도 보고, 그리고 싶은 거 그려봐~ 필요한 거 있으면 엄마에게 물어보고"
" 네 엄마~"
아이 둘은 신이 나서 본인들이 원하는 재료들을 꺼내서 마구 그리고,
나는 수채화 물감만 일회용 접시에 풀어주고 잠시 쉬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산들산들... 살짝 더운 듯도 했다.
아이들은 땀이 나도 아랑곳 않고 열심히 끄적여댔다.
조금 뒤 그림을 들여다보니, 한창 캠핑을 가고 싶다며 조르던 여섯 살 아이는 눈앞 풍경을 보며 캠핑장을 그리고 있었다.
세살 난 아이는 혼자만이 아는 캐릭터들을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아직 말을 잘 못하던 시기였는데, 어떤 내용인지 물어보니 조잘조잘 알아듣기 어렵게 설명하다가 엄마 팔을 내놓으라 했다.
그림에 연장선인지 내 팔뚝을 스케치북 삼아 물감으로 마구 선을 그어댔다.
아무래도 내가 세살 딸이 창조한 그녀의 숲 속에 호랑이가 된 거였지 싶다...
"우리 딸,, 어쩜,, 행위미술도 하는 거니?"
그렇게 나 혼자만 알아듣는 농담을 하며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비슷한 거라곤 초록색 물감 밖에 없었지만 아이들은 즐겁게 본인만의 풍경화를 그렸다.
나도 그런 그들이 흐뭇했다.
우리가 있던 정각은 일본식 정원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도 한가한 주중 낮이었지만 여러 명의 방문객들이 지나갔다.
그 사람들은 우리 쪽을 슬쩍 보고 지나가면서 아이들 그림놀이에 미소 지을 뿐,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는데,,
범상치 않은 포스를 가진 두 할머니가 우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왕년에 아이들 교육에 열정 좀 태우셨을 듯한 타이거맘의 기운이 있었다.
한분은 백인이었고, 한분은 중국계 아시안이었다.
"아이고 아가들 그림 그리는구나~ 어디 보자~"
하며 허리 숙여 아이들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백인 할머니는 칭찬 가득해 주셨다.
'어쩜 이리 좋은 캠핑장이 있니, 파이어 캠프에 스모어도 만들어 먹네? 엄마 아빠랑 캠핑 가봤어?' 라며 아이에게 칭찬과 함께 아이의 스토리에 눈높이를 맞추어 물어보셨다.
그리고 아이들과 대화를 하며 소통에 초점이 가 있었다.
반면 중국계 할머니는 아이의 캠핑 그림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한동안 번갈아 보시더니 큰 목소리로 다그치셨다. (원래 목소리가 크신 분이었다)
"얘야 여기 캠프장이 어디 있니? 저기 나무 잘 봐. 잘~ 보고 그대로 따라 그려야지! 이게 무슨 풍경화야. 머리 들고 앞에 봐! 앞을 안 봐서 그래. 저기 큰 나무와 바닥에 바위와...(이하생략)"
아시안 할머니가 추구하는 풍경화는 눈앞에 풍경을 스케치북에 그대로 그린 사실화였던 듯 했다.
또한 본인이 생각한 올바른 방법을 명령조로 아이들에게 알려주셨다.
고개 숙여 본인의 그림에 집중하는 어린 아이에게 풍경화를 그리니까 앞을 보라고 다그치시기에 초반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그 모습이 별로 낯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어른신들을 보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곁에서 내가 끄적이던 그림도 눈 앞에 있던 나무 였다.
상상력 0
갑자기 청개구리처럼 그리던 나무가 그리기 싫어졌다.
중국 할머니의 잔소리 같은 지도 말씀이 길어지려고 할 즈음 백인 할머니가 수습을 하시려고 다른분께 가던 길을 재촉하셨다.
물론 두 분 다 'Have a good day!'란 말과 함께 아이들 덕담과 칭찬을 가득 해주시고 가셨다.
스쳐 지나가는 할머니 두 분이 고작 여섯살 난 아이의 그림을 보고 칭찬과 비평을 하신 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 터졌다.
왜냐하면 두 분이 동서양 교육과 문화의 차이점을 너무나 극명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이었다.
흑과 백처럼 저리 다른 견해를 가진 두 친구분이 함께 대화를 하며 산책을 하고, 보아하니 오래된 친구였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중국계 할머니 같은 어른들 속에서 자라고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백인 할머니의 생각과 비슷한 사고를 가지고 있고, 특히 세살, 여섯살에게는 아이의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동서양에서 교육을 받아보고 생활을 해 본 경험상 둘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아이의 성향과 성격에 따라 두 교육의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억지로 고르라 한다면 서양식 교육이 내 철학에는 좀 더 맞다.
칭찬과 격려 위주로 커가면서 아이들의 자존감도 높아진다. 미국의 공립 초등학교는 아이들 공부 학습이 한국에 비해 많이 뒤쳐진 듯 해보이나 대신 본인의 자아를 찾을 시간이 있고, 음악이든 운동이든 즐길 시간이 있다.
좀 더 주체적으로 클 기회가 주어지는 점도 좋은 거 같다.
반면 칭찬을 너무 과하게 받고 자란 탓에 본인 실제 실력에 비해 근거 없는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도 종종 보았다.
내가 받고 자라온 아시아의 주입식 교육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정도의 실력까지는 정확한 교육을 받고, 훈련을 하면서 적당한 스트레스도 받아보고, 그러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도 생긴다. 어느 지점까지는 주입식으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월등히 잘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주입식 교육은 아이의 창의력을 잘라버리는 단점도 있다.
나 또한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런 담임선생님을 만나 미술에 재미를 잠시 잃었던 적이 있었다.
학급에서 그림을 그리면 몇 개를 뽑아 선생님이 뒷벽면에 전시하셨다.
내 그림은 항상 벽면에 붙어있었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어느날 그림 주제는 '등산'이었다. 어떤 이유인지 내 그림은 선생님께 퇴짜를 받았다.
당시 내가 그렸던 그림은 히말라야에 오르는 산악인들이 눈바람을 맞으며 일렬로 서서 힘들게 걸어 올라가는 상황을 그린 그림이었다.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기억은 없지만, 당시 내게 꽤나 인상적인 산행이었던 거 같다.
당연히 내가 크레용으로 그 절실한 상황을 잘 표현 못했겠지만, 담임선생님은 그림을 두 번 돌려주셨고 나는 다시 그려야 했다. 결국 다른 친구들처럼 눈덮인 산 대신 초록빛 산 두세개를 그리고, 배낭을 메고 산 줄을 타고 산을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과 알록달록한 꽃들, 녹색 나무를 그렸다. 그제야 내 그림은 선생님의 선택을 받고 벽에 붙여졌던 기억이 있다.
반면 초등학교 5학년때 마음대로 상상해서 그려도 되었던 미래 과학 그림 대회에서는 수상을 하였다.
그 후에는 상상해서 마구 그렸던 기억이 딱히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껏 그려댈 수 있는 나이였을 때 내 마음의 눈이 차단되었던 안타까움이 있긴 하다.
고등학교 시절, 이과생인 내게 미술선생님은 미술을 강하게 권유하셨고, 그렇게 생각지 못했던 진로가 시작되었다. 입시 미술 학원에서 하루에 6-7시간씩 석고 데생 훈련(?)을 하였다. 수학정석처럼 데생을 머리로 배웠었다.
그 교육은 어쩌면 받는 입장에서는 편했다. 입에 떠 먹여주는 느낌이랄까.
미국에 와서 모든 것을 부수고 다시 배웠지만, 입시 시절에 주입식으로 배웠던 테크닉과 더불어 당시 익힌 집중력, 인내력이 탄탄한 기본 토대가 되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요즘 한국 교육을 보면 내 아이들을 데려가서 시키고 싶을 만큼 운동이면 운동, 댄스, 악기, 태권도 등 무엇이든 잘 가르치고, 학생들도 잘한다.
또한 한국에서 갓 온 아이는 수학이 이미 3년 앞질러져 있어서 이곳 초등학교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발레나 바이올린도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큰 결과를 미국에서 만들어 내고 있다.
엄격하고 철저하게 배워온 만큼 실력이 자라 있음은 확실하다.
나무 우거진 숲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캠핑장을 상상하여 본인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아이도 있고,
그 숲 속의 나무를 보이는 대로 묘사하여 사진같이 그려내는 아이들도 있다.
같은 나무를 보며 그림은 커녕 다가가서 나무껍질을 만지고 뜯어내어 그 속에 열일하는 개미들을 관찰하는 아이들도 있다.
틀린 답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취학 전 아이들에게는 정해진 답이 없다고 본다.
그런 그들을 성향에 맞게 잘 키워내는 것이 부모와 다른 어른들의 숙제가 아닐까 싶다.
현시대는 누군가가 동서양의 좋은 점을 골라 만든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