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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기다림의 끝




 일상을 마비시킨 생리통 덕분에 백수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연말 저녁, 남편과 따뜻한 온수매트 위에 올라앉아 무료하게 TV채널을 돌리던 때였다. EBS채널에서 유명한 의사와 그 의사가 다루는 질병에 대해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방영 중이었다. 화면 왼쪽 상단의 프로그램명 아래 조그맣게 적힌 ‘골반통’이라는 단어를 보고 남편이 쉼 없이 누르던 리모컨을 멈추며 물었다.


- 골반통이라는 건 생리통이랑 다른 건가?


 네가 모르는 건 나도 모르지. 갈 곳 없는 채널 탓에 우연히 눌러앉아 보게 된 그 프로그램에는 놀랍게도 나와 똑같은 증상의 환자가 나왔다. 생리통으로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이며 응급실에 실려 가는 것도 다반사였다. 보아하니 자궁이나 난소 등의 하나 이상의 문제로 통증을 느끼는 것을 골반통이라 칭하는 것 같았다. 내막증 진단을 받고 호르몬 치료를 받는 환자, 선근증으로 적출술을 받는 환자 등의 사례를 숨죽이고 보고나서 남편과 나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서로 마주봤다. 아마 배경 효과음이 깔렸다면 ‘뚜둥’ 정도의 충격적인 소리가 나오지 않았을까.


 부랴부랴 남편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프로그램에 나온 의사 선생님을 검색했고, 바로 그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예약센터 운영시간이 아니어서 번호를 남겨놓을 수 있었고, 다음날 병원으로부터 다시 걸려온 전화로 그 의사 선생님 진료를 예약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진료 날짜까지는 무려 두 달 정도가 남아 있었다. 무려 두 달! 역시 명의라 알려진 선생님은 다르구나 했다.


 첫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두 번의 생리가 있었다. 한 번은 새벽에 응급실에 가야했고, 한 번은 이런 통증이 있을 때마다 늘 찾던 병원에 드러누워 진통제가 포함된 수액을 맞아야 했다. 그래도 왠지 모를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진료만 받고 나면 내가 그동안 찾지 못했던 해결책이 나올 것만 같았다. 네게 필요한 건 진통제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 하면서 어마어마한 빛과 함께 선물을 줄 것만 같았다.






 두 달을 기다려 마주한 진료실 앞은 도떼기시장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대기실이 꽉 차 통로를 걷기가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다른 선생님들의 진료실 앞 환자 밀도에 비하면 여기는 인기 가수 공연장 같은 분위기였다. 한 번씩 문 밖으로 나와 다음 환자를 안내해주고, 진료 받은 환자에게 앞으로의 스케줄을 설명해주는 간호사의 눈이 멀리서 봐도 티가 날 정도로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앉아 대기하는 동안 진료실 안에서 가끔씩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는데, 질초음파에서 비명을 지를 정도의 고통을 느껴보지 못했던 나는 내심 나 같은 환자가 오기에는 여기는 정말 중증의 환자들만 받는 곳이 아닐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의문과 걱정을 번갈아 하며 들락거리는 환자들만 지켜보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TV속의 명의는 현실 세계에서 너무나 바빠 보였다. 책상 가득한 문서들과 나뒹구는 빈 일회용 커피 잔들. 옆에 앉은 간호사 역시 누적된 피로로 아까의 간호사만큼 눈이 빨갰다. 어수선한 틈에 자세한 문진이 이어졌고 선생님은 증상으로 미루어 보아 예상되는 원인들을 하나하나 읊어주셨다. 일단 내진을 좀 해보고 초음파 검사도 받고 가라고 하셨다. 초음파는 알겠는데 내진은 대체 뭐지? 물어볼까 하기가 무섭게 또 다른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바로 옆 커튼 뒤로 이동했다. 


 질초음파를 받을 때와 똑같은 의자에 시키는 대로 앉을 때만해도 몰랐는데, 의사 선생님의 손이 쑥 들어오는 순간 떠올랐다. 아, 내진! 아기 낳기 전에 최고 고통이라던 바로 그것!


 갑자기 긴장과 함께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아래를 볼 수 없었지만 느낌으로는 손으로 자궁을 이리 밀고 저리 밀고 하는 것 같았다. 


- 지금 이 쪽이 아프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고 부들부들 떨리는 소리로 겨우 ‘네’ 한 마디 정도를 할 수 있었다. 드문드문 밖에서 들었던 비명소리는 아마도 이것 때문이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어찌나 아팠던지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고 이마에서 땀이 쏟아졌다. 말하자면 생리통의 정점인 상태를 계속 유지시키는 것 같달까. 고작 몇 분 정도의 내진이었을 텐데 며칠치의 고통을 다 느끼고 나서야 진료의자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악 소리 한 번 내지 않은 스스로가 꽤나 대견했는데,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그 점은 칭찬해주지 않았다. 


 그날 초음파실에서 따로 받은 초음파 검사를 종합한 결과는 다음 주 진료 때 들을 수 있었고, 대단한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기에는 너무나 경증 환자가 아닐까 염려했던 게 무색하게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 정확한 상태를 알기 위해 MRI와 CT검사를 해야 했지만 수술은 꼭 필요한 상태라는 게 확실했다. 다만 가장 빠르게 잡아 준 수술날짜가 6개월 뒤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 동안에는 면역치료를 하고, 정밀 검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어른들의 얘기 속에 늘 등장하는 ‘그 교수님 만나려면 1년 기다려야 해’ 하는 상황이 내게도 찾아왔다. 6개월 동안 몇 번의 통증을 더 견뎌내야 할지 가만히 헤아려 보았다. 죽을 것 같아 나뒹구는 날은 다 합쳐도 한 달은 되지 않을 것이다. 면역치료도 이어질 테니 운 좋으면 그 사이에 통증이 조금 줄어들지도 모른다. 몇 년을 참아왔는데 몇 개월 더 참는 것은 물론 가능하겠지. 


 기다림을 위한 마음 다스리기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나마 버텨낼 수 있었던 건 기약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달력에 표시된 날짜가 있었고, 그 날 이후로는 어쩌면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 그래서 비교적 잘 버텨냈다. 면역치료로도 통증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을 잘 흘려보냈다. 이제 와 말이지만 나는 충분히 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단련했다고 생각했었다. 기약이 없는 기다림에 대해서는 해당 사항이 없는 줄 알았으니까. 피하고 싶은 일은 언젠가 꼭 마주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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