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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다 떼어내면 아플 일도 없나요?




 처음 자궁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깜순이를 떠올렸던 걸 기억한다. 우리 집 최초이자 마지막 강아지였던 깜순이를 데려온 지 1년 쯤 되었을 때, 동물병원 의사는 말했다. 


- 새끼 낳게 하실 거 아니면 중성화 수술은 시켜주시는 게 좋아요. 새끼를 안 낳고 그대로 늙으면 자궁축농증에 걸리기 쉽거든요.


 이웃집에서 데려올 때부터 깜순이는 그 집 어미개의 가장 약한 새끼였다. 가장 작게 태어나 형제들에게 밀려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어미도 방치했다. 타고 나길 작고 약하게 태어난 강아지라 최선을 다해 건강히 키우고 싶었다. 초보 견주였지만 이미 의사의 말과 비슷한 얘기를 어깨너머 들은 적은 있었다. 이른바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세월이 흐른 자궁은 병을 얻는다는 거구나,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걷지 못하면 다리 근육이 약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겠거니 했다. 일찌감치 중성화 수술을 해주는 것이 깜순이에게도 낫겠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딱 한 번 몇 방울의 생리혈을 비춘 것을 끝으로 깜순이는 수술대에 올랐다. 아홉 살 코카스파니엘을 키우던 친구와 이 문제로 약간의 언쟁을 했었다. 친구는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를 병 때문에 멀쩡한 장기를 수술로 떼어낸다는 게 말이 되느냐. 심지어 강아지는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도 없는데 그걸 인간이 임의로 결정해도 되는 거냐며 나를 말렸다. 내 생각은 비교적 확고했다. 가뜩이나 약한 강아지에게 언제든 발생 가능한 질병을 막을 수 있다는 데 수술을 안 할 이유가 무엇이지? 심지어 자궁이며 난소라는 장기는 자식을 낳는 짧은 이벤트만을 위해 평생 존재하는데, 강아지를 여럿 키울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입양 보낼 것도 아니라면 굳이 필요한 신체 기관은 아니지 않나. 


 수술 후 엄마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온 깜순이의 아랫배는 생전 처음 바느질을 배운 어린애가 시침질을 해놓은 듯 얼기설기 검은 실로 대강 오므라져 있었다. 옆으로 겨우 엎드린 채 몸을 달싹이며 지친 숨을 쉬는 고작 내 팔뚝만한 깜순이를 보며 친구 말을 들을 걸 그랬나, 내가 몹쓸 짓을 한 건가 마음이 착잡했다. 


 며칠 만에 깜순이는 원래대로 점프해서 소파에도 올라오고 원하는 게 있으면 빤히 눈을 마주치며 텔레파시를 보내는 수준으로 회복했다. 다만 산책 코스에 동물병원을 지나치게 되면 어디 깜빡한 바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되돌아서 다급하게 진행로를 변경하게 됐다. 확실히 수술이 보통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막증이나 선근증의 가능성에 대해 처음 입을 열었던 의사선생님에게 그런 질문을 했었다. 


- 제가 만약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다면요. 자궁이랑 난소랑 다 떼어내면 이렇게 아플 일이 없는 거예요?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듯이 한참을 웃었다. 


- 누가 그렇게까지 해요. 치료할 수 있으면 치료를 하는 거지. 그렇게 극단적으로 하지 않아요.

- 아니, 왜 그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검사로 유방암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해서 아직 암이 아닌 상태에서 절제술을 받았잖아요. 그런 맥락으로 보면 자궁이나 난소도 없애면 병증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나름 진지했던 내 질문에 선생님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강아지의 자궁이나 난소는 아무렇지 않게 떼어내길 권하면서 사람의 자궁과 난소는 뭐가 다르고 그렇게 귀해 어떻게든 남겨두는 건지 설명을 듣지 못해 나로서는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나중에 책을 통해 자궁내막증이 놀랍게도 자궁이 없는 상태에서도 발견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내막증 세포는 어디에도 옮겨 다닐 수 있으니 발견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발병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자궁이나 난소를 없앤다고 해도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는 건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내 질문을 피하며 웃은 건 그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출산 계획을 스스로 세울 수 있다. 지금은 낳을 마음이 없더라도 나중에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낳고 싶어도 못 낳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니 일단 출산 가능성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열어두어야 하는 것이다. 일부 병원에서 이미 자녀가 있고 더 이상 출산 계획이 없는 여성들에게는 태도를 바꿔 아무렇지 않게 치료보다 자궁 적출 수술을 권하는 걸로 봐서는 수술 자체가 가져올 부작용보다 출산 가능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좀 더 뚜렷해진다. 


 평균적으로 아이를 낳는 나이를 어영부영 지나쳐 내 자궁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은 채로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 병을 만들었을까. 걷지 않아 약해진 다리근육처럼 비실거리기를 자초한 걸까. 그러고도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보다 먼저, 자궁이 없다면 이런 일이 안 생기는지 건방진 의문을 가지고 있는 걸까.






 깜순이는 그로부터 9년을 더 살고 예견치 못한 쿠싱 증후군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한참을 힘겹게 앓다 우리와 작별했다. 친구의 코카스파니엘은 그 뒤로 3년을 더 살고 고된 암투병을 하다 떠났다. 다시 반려견을 맞이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고민을 좀 하게 될 것 같다. 중성화 수술이 옳은지에 대해 결론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하고 단호한 방법은 아무것도 없으며, 한 가지 병의 가능성을 줄인다고 해서 죽음이 다가오는 속도를 반드시 늦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강아지와 의견을 나눌 방법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깜순아, 너는 어땠어? 너를 닮은 아기 강아지를 낳고 싶었어? 아니면 언젠가 아플지도 모르니 수술을 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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