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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천천히 들이마시고, 깊게 내쉬고




 반년을 꼬박 기다려야 하는 수술 날짜가 잡힌 이후, 꽤 다양한 시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수술 후 회복이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원래 하던 운동들은 조금 더 강도를 높였다. 기다리는 기간 동안의 생리통을 조금 다스리기 위해 한약을 복용했다. 통증 자체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통증과 함께 찾아오던 부수적인 현상 –체하는 것이라든가 눈을 감고 있어도 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과 같은- 들은 조금 수그러들었다. 식습관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하던 음주량도 더 줄였고 가공식품의 비율도 줄였다. 이 모든 시도는 수술 결과가 별로 좋지 않을 때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불순한 의도도 약간은 가지고 있었다.


 또 하나 새로운 시도는 명상을 시작한 것이다. 계기는 아주 우연했다. 교정 운동에 관련한 자격증 이수 교육 중 근막 이완에 대한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살면서 몸의 어느 구석 하나 유연해본 적 없는 나는 그 날의 수업에 유독 집중했다. 앉은 자세로 손끝을 발쪽으로 내밀어 유연성을 측정하던 중학교 체력검사에서 무려 –11센티미터가 나와 온 반의 놀림거리가 됐던 나였으니.


 특히나 햄스트링 이완에 애를 먹어 주변 근육에까지 영향을 받아 운동에 불편함을 느꼈던지라 몇 가지 햄스트링 이완을 위한 방법에 귀 기울이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씀은 이러했다.


- 이 방법을 다 쓰고도 안 되면 그건 정신의 문제니까 명상을 하시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학생들은 키득거렸고, 선생님은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마음이 근육을 이완되도록 내버려두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며 진지하게 명상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전까지 명상이란 것을 떠올리면 정신력이 약한 사람들의 고상한 도피처 정도로 여겨왔던 마음에 약간의 동요가 일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조금 맛보기 정도로 가볍게 시작하는 법을 모르는 나는 명상에 관한 책을 열두 권 독파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정말로 어떤 도움을 주는 지 전혀 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론이 납득되어야 실행에 옮기는 전형적인 인간이다. 그렇게 접한 책들 중에는 통증을 명상으로 다스리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 한 권 있었다. 한 번도 유연한 적 없었던 햄스트링을 늘려보고자 파헤치기 시작한 명상에서 뜻밖의 수확을 얻은 것이다.


 열두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눈을 감고 잠시 멍하게 있어보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8주 동안의 프로그램으로 통증을 다스리는 명상법을 알려주는 그 책을 가지고 인생 첫 명상을 시작했다. 책 뒷면에 나온 사이트에서 명상에 필요한 가이드 음원을 다운 받았는데, 지도자의 목소리가 애니메이션 성우처럼 작위적이고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어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책의 번역 전 원본 사이트에서 다시 가이드 음원을 다운 받았다. 온통 영어라 들으며 해석하는 과정을 한 번씩 거쳐야 했지만 목소리가 편안하고 마음을 가라앉혀줬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가이드대로 열심히 명상 스케줄을 따라갔지만, 2주 차가 되어서도 사실 딱히 뭐가 좋은지 느낄 수 없었다. 명상 말미에는 지금 이 느낌을 기억하며 하루를 보내라고 하는데 일상을 사는 동안 그 느낌을 떠올리려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느낌이 약해서인지 아니면 내 일상이 명상 때 가졌던 느낌을 떠올리며 진정할 만큼 치열하지 않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3주 차가 되었을 때 변함없이 생리통이 시작되었고 그간 독학한 명상을 적용할 수도 없을 정도의 통증이 밀려왔다. 호흡을 하며 내 아픈 부위에 숨을 보내야 한다는데 지속적인 호흡 자체가 불가능했다. 또다시 캄캄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생각했다. 명상은 얼어 죽을. 숨 쉰다고 아플 게 안 아플 수 있겠냐고.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때려치웠던 명상은 폭풍과도 같던 생리가 끝나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을 때 다시 비적비적 시작했다. 또 이상한 강박은 있어서 원래의 스케줄에 이어서 진행하지 않고 다시 첫 주 차부터 시작했다. 이 때의 마음가짐은 이랬다. 그래, 몇 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방법이고 입을 모아 좋다고들 할 때에는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 군말 없이 8주 동안은 일단 해보자. 


 그 다음 생리통이 찾아왔을 때, 가장 심한 이틀을 제외하고는 명상을 이어나갔다. 반듯하게 눕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안락의자에 쪼그려 기대앉은 자세로도 했고, 이웃집의 낡은 에어컨 실외기 소음 때문에 머리가 울릴 때에는 헤드폰을 쓰고도 했다. 그렇게 무사히 8주 차까지의 명상을 끝마쳤을 때 정말로 통증을 자유자재로 다스릴 정도의 고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약간 달라진 부분은 있었다. 미쳐 날뛰는 생각들을 잠시 치워둘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순간 생각이 너무 앞뒤 가리지 않고 밀려들어 눈앞이 어질해지고 미간에 주름이 생길 때가 있다. 딱히 가치가 있거나 꼭 해야만 하는 생각도 아닌데 슬라이드 필름을 쉬지 않고 돌리듯이 팍 팍 눈앞에서 생각들이 터지며 지나간다. 그 생각들은 과거의 회한이나 미래에 대한 건설적인 계획이 조금씩 섞여있어 마치 떠올릴 필요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명상에서 늘 강조하듯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들 지금 이 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 부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다음부터 나는 명상을 하는 동안만큼은 걱정도 불안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마음을 일상으로까지 끌고 와 매사에 초연한 사람은 되지 못하지만 하루에 15분~20분 정도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아직까지 통증을 가라앉힐 정도의 명상은 하지 못한다. 반발심이 어딘가 남아있어서인가 싶기도 하다. ‘아픈 건 몸이지 내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몸뚱이와 자아를 분리시킬 단계에 이르기엔 멀었다. 아픈 몸뚱이가 너무도 확연히 나다. 


 그럼에도 명상을 놓지 않고 지속하는 이유는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일 하나쯤은 하고 싶기 때문이다. 몸을 위한 운동도 하면서 정신을 함께 챙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꾸준히 운동해도 몸의 어딘가 망가지는 부분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없는 걸 보면 명상이 내 정신 건강을 온전히 갑옷처럼 지켜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약해지는 순간을 조금만 더 의연하게 버텨내 설 수 있게 도와주는 막대기 하나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가 어디야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눈을 감고 천천히 들이마시고, 깊게 내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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