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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쫄보에게 가혹한 세상




 어린 시절의 나는 계단을 올라갈 때 발을 계단 안쪽까지 깊숙하게 밀어 넣고 나서야 다음 발을 올리는 안전제일주의 꼬마였다. 제 속도를 못 이길 정도로 뛰는 일도 없었고 정글짐 같이 하드코어한 놀이기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창피할 정도로 겁이 많고 몸을 사리는 인간이다. 딱 한 번 턱이 찢어질 정도로 세게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스스로 넘어진 게 아니라 친구가 나를 달려가며 잡아끄는 바람에 넘어진 것이었다. 아픈 것보다도 억울해서 오열했다. 마흔 살이 된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 만큼 크게 넘어져 본 일은 확실하게 열 번 안쪽이다.


 난임 판정을 받고 첫 번째 인공수정을 진행했을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부분은 내 스스로 배에 주사를 놓아야 한다는 것과 질정 삽입이었다. 나처럼 겁이 많고 몸에 대한 모든 부분에 조심스러운 사람들이라면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지 모른다. 이 세상은 성경험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이 발생하면, 몸을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 삽시간에 가차 없어진다.


 여성 잡지에서는 자기 몸을 잘 알아야 오르가슴도 느낄 수 있다며 스스로 질에 손가락을 넣어 지스팟의 위치를 찾아보기를 아무렇지 않게 권한다. 처음 탐폰을 넣는 데에도 어림잡아 한 시간이 걸렸던 걸 생각하면 오르가슴이고 뭐고 때려치우는 편이 쉽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이성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제 몸을 쉽사리 다른 사람에게 허락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사회가 갑자기 성인이 되면 태세를 바꿔 질 안에 손가락을 넣고 탐색을 하라고 한다. 그게 어떻게 하루아침에 가능하겠는가.


 앞서 말했지만 탐폰도 힘들었던 20대 중반의 내게 신문물을 보여준 친구도 있었다. 결국 오만가지 고통을 감수하고 생리대로 돌아선 나에게 몸을 바싹 낮춘 그녀가 마약 거래라도 하듯 조심스레 보여준 것은 생리컵이었다. 생리컵이 그나마 널리 알려진 게 4,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대략 15년 전부터 그걸 사용하고 있던 그녀는 대단한 얼리어답터였다. 


 고무대야처럼 칙칙한 붉은색의 그 컵은 말랑하다기에는 쉽게 흐물거리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아주 컸다. 그녀가 설명하는 생리컵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지만, 그 크기에 압도당해 도대체 이걸 어떻게 구겨서 몸속에 집어넣는다는 건지 뒷목이 시려왔다. 


- 그냥 이 부분을 이렇게 눌러서 접고 꽉 잡고 넣으면 돼. 


 오히려 겁에 질린 내 쪽을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열심히 설명해주던 그녀에게 경외심이 들었다. 이건 탐폰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하드코어였다. 고작 손가락 굵기만 한 탐폰 애플리케이터를 가지고도 진땀을 흘리며 헤맸던 나를 네가 알기나 하는 거니. 몇 년 전 생리컵이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최대한 작고 말랑하다는 생리컵을 하나 주문해 시도해봤지만, ‘안 될 놈은 안 된다’라는 불변의 진리만 깨닫고 화장대 서랍 구석에 봉인해두었다.




 허탈한 일이기는 하나 자신의 몸에 겁이 많은 사람은 쉽게 그것을 극복할 수 없다. 인공수정이라든가 시험관까지 가지 않더라도 산부인과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그 부분을 견뎌내야 한다. 질염의 종류에 따라 질정을 처방해주는 곳도 있고, 질 초음파의 경우도 무방비의 상태에서 ‘조금 불편하실 거예요.’ 한 마디와 함께 몸 안에 들어오는 낯선 기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인공 수정 과정에서 받은 질정을 들고 약이 녹아 뚝뚝 흐를 때까지 손가락을 바꿔가며 파들파들 떨던 걸 떠올리면, 결혼을 하고 성경험이 많아졌다고 해서 몸에 대한 겁이 없어졌다고는 못하겠다. 


 물론 타고난 겁쟁이인 내 탓이 크겠지만 갑작스레 태세를 전환하는 사회 분위기도 작용했다고 본다. 우리가 어릴 때쯤엔 성경험이 없는데 탐폰을 쓰겠다고 나서는 것만으로도 뒷목을 잡으며 발작을 일으키는 엄마들이 많던 시절이었으니까. 글쎄, 요즘은 탐폰으로 소중한 처녀막이 파괴된다는 둥 과학과 도덕을 한꺼번에 어지럽히는 헛소리를 믿는 사람이 없으니 조금 더 일찍 내 몸에 가까워질 기회가 있으려나.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나에게는 시험관 시술이라는 큰 산이 남아있어 몸에 대한 겁을 극복할 기회가 몇 번 더 주어졌다. 숨을 참고 손에는 최대한 두툼하게 뱃살을 쥔 채 짧은 주사바늘을 찔러 넣어야 하고, 밤이면 미끌한 질정을 쥐고 화장실에서 무념무상의 사투를 벌여야 하며, 듣자하니 남편이 엉덩이에 놓아주어야 하는 주사도 있다던데 마이너스 똥손인 남편을 신뢰해야 하는 것까지도 내가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다. 


 명상도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막상 닥치면 동공이 흔들리고 심장이 또 주체 못하고 날뛰겠지만 최대한 머릿속으로 나의 훌륭한 극복과정을 그려본다. 어느 누군가는 질에 손가락 하나 넣는 것 가지고 유난이야 싶겠지만 내 두려움을 모두에게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 두려운 건 두려운 것이다. 들이쉬고 내쉬고 평온한 상태로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실패해도 괜찮다. 다음 질정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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