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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외로움이라는 합병증




 지금까지 살면서 삼킨 진통제를 합하면 몇 알이나 될까? 내가 평균적으로 생리 한 번에 먹는 진통제가 10알~12알정도 되니, 1년이면 120알~144알. 통증을 가라앉히는 데에만 일 년에 백 알이 넘는 약을 먹고 있는 셈이다. 


 통증이 완벽하게 사라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내가 먹는 타이레놀 ER의 경우 8시간 주기로 2알 복용하는 것을 권장하는데, 약을 먹고 난 후 30~40분 후에 조금 진정이 되고 약효는 3시간 안에 동난다. 그러면 나머지 5시간은 다음 약을 손에 쥐고 울면서 참아낸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생리통이 시작되었을 때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시작하기 전에 이미 진통제를 복용한 상태여야 통증이 훨씬 덜 하다는 것이다. 자, 그러자면 생리가 시작되는 기미를 눈치 채야 하는데 나처럼 생리가 시작될 듯 말 듯 배가 꼬물꼬물한 기간이 일주일 정도 되는 사람은 그 기간 동안 미리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지. 나는 그렇게 몇 번 자궁과 진통제를 두고 미묘한 기 싸움을 시도하다 포기한 적이 있다.



 이쯤 되어 통증에 대해 말해보자면, 나는 초경부터 꾸준히 생리통이 있어왔고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해진 건 37세 정도부터다. 그 무렵부터는 생리가 시작되고 3일 동안 내 왼쪽 아랫배를 트럭이 밟고 천천히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칼로 찌르는 통증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생리통을 느낀다고 하는데, 내가 느끼는 통증은 엄청난 무게에 지그시 깔린 것 같은 아픔이었다. 모든 소화기관이 멈추고 숨쉬기가 버겁다. 그 바람에 물 한 모금도 못 삼킬 지경이 되어, 공복에 먹으면 속이 아픈 ‘소염’성분이 포함된 강력한 진통제는 복용할 수 없었다. 3일 내내 타이레놀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삼킬 수 없다. 


 생리가 끝날 무렵이면 몸무게는 항상 2-3킬로그램 씩 줄어 있었다. 생리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컨디션으로 고스란히 회복되긴 했는데 그 점이 더 화가 났다. 일상 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단 그 3일 때문에 직장도 그만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뚜렷한 조그마한 회사에서 한 달에 3일 씩이나 병가를 보장해 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통증이 심해져 중간에 집으로 돌아오거나 아예 출근도 못하는 날이 많아지자 나는 제대로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불안해졌고, 먼저 퇴사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퇴사 후에도 시간 제약이 좀 느슨한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봤지만 통증으로 일상이 멈추는 3일이라는 건 꽤 큰 것이어서 매번 진행되는 일들에 어깃장을 놓고 뒤틀리게 만들었다. 






 통증은 괴롭기도 하지만 외로운 것이다. 옆에서 누군가가 아무리 지극정성으로 돌봐준다 해도 통증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다. 밤은 길고 새벽은 더 길다. 맑은 날도 비 오는 날도 모두 캄캄하기만 하다. 익숙하고 안정감을 주던 방안의 공기마저도 공포스럽게 일렁이며 몸 안으로 밀려들어오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삼킬 수 있는 진통제 두 알을 쥐고 바닥에 가만히 웅크려 있으면 다시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어디에도 그대로 전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한 무기력함으로 생각조차 멈춰버린다. 그렇게 많이 울었다. 울려고 하지 않아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 번 그렇게 아프고 나면, 이미 다음 생리가 다가올 쯤엔 잔뜩 신경이 곤두서있다. 이번엔 또 얼마나 아플지, 집에서 진통제로 버틸 수 있을지 지난번처럼 응급실에 실려 가야 하는 건 아닌지. 컨디션이 멀쩡한 다른 날들마저도 이 끔찍한 3일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통증을 그래도 참아야지 하며 버텨냈던 건 이게 고작 생리통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병원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투병중인 너무나 끔찍한 병명의 환자들도 많은데, 너도 앓고 나도 앓는 생리통 정도로 죽네 사네 일상 생활을 못하겠네 하는 내 자신이 한심했던 것이다.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생리통은 심장마비와 같은 수준이다.’ 라는 기사를 읽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외롭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 통증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트럭에 깔린 것 같은 아픔이 내 예민함과 엄살 때문이 아닌가 의심해야 했던 날들을 조금 보상받았다.


https://www.insight.co.kr/news/230559

https://www.ytn.co.kr/_ln/0103_201605291710092246 (기사 참조)


 대학 병원에서 제대로 자궁내막증에 대해 진단을 받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병은 자궁 내막 조직과 유사한 형태의 세포가 생리 때 자궁의 수축과 함께 역류하여 복강 내 이곳저곳에 자라나는 병이다. 나는 드물게 매우 상태가 안 좋은 케이스였고 (물론 그 부분은 수술 후에 더 정확히 알게 되었지만) 꼭 수술이 필요한 다른 요인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 이 정도면 아플 수밖에 없네. 통증이 말도 못했겠어. 아니, 어떻게 버텼어 그래?


 머리가 하얀 의사 선생님의 말에 창피하게 눈앞이 자꾸 그렁그렁해지는 걸 참아내느라 혼났다.


 누구든 외롭지 않게 아프면 좋겠다. 주변 사람의 따뜻한 보살핌도 필요하지만 내 통증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의 위로는 더할 나위 없다. 그래서 제대로 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원인을 알아내주고 명확한 방법을 제시해주는 그런 곳이 필요하다. 그런 곳에서는 구구절절 무용담 늘어놓듯 내 아픔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숨죽여 견뎌온 통증까지 충분히 알아준다. 정말로 외롭지 않은 건 그런 순간이다.


 어두운 마음속이 얼마나 깊고 깜깜하며 긴지 잘 안다. 진통제로도 그런 고립감은 이겨낼 수 없다. 이 정도 통증으로 병원에 가는 게 맞는지 자신이 확인하려 하지 말고 일단 움직여서 전문가가 확인할 수 있게 해야 맞다. 아픔이 반복되면 생각도 둔해져 자기 자신을 파고 들게 되는데,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만큼 아픈 사람도, 또 얼마나 아픈지 뚜렷하게 알아줄 수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기억해야 하는 건 아픈 동안에는 외로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외로울 때 먹는 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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