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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 May 29. 2019

마지막 말들

당신과 나 사이

   지난 주말 오랜만에 아빠한테 다녀왔습니다.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은지 가는 길에 유독 차가 많더군요. 꾸역꾸역 도착해서 가족들이 잠시 화장실 간 사이 먼저 아빠를 찾아 조용히 울었습니다. 두께가 어느 정도 일지 모를 유리 너머에 아빠가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남자는 이제 작은 흔적으로 세상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유리벽은 사소한 두께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세상과 아빠의 세상을 그렇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아빠를 찾으면 항상 그 유리벽 너머 잠들어 있는 아빠를 만지듯 손을 대고 눈을 감아보곤 합니다. 어제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 짧은 시간에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어 펑펑 울었습니다. 예전에는 혼자 찾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아오곤 했는데 점점 찾는 시간의 간격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눈물은 강을 흐르듯 흘러 마음까지 잠기게 만들었습니다.


  전 아빠에게 유언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들었다고 덜 아픈 마음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게 슬픕니다. 제가 아빠와 주고받은 대화는 부서 배치를 원하는 사업장으로 받게 됐다는 것, 지망했던 부서 중 한 곳으로 결정됐다는 말에 좋아하시던 그 모습 그게 전부입니다. 이미 그때 아빠는 말을 할 수 없었고 침대에 놓여있던 노트에 직접 글을 써서 마음을 전해야만 했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모습이 선합니다. 너무나도 멀쩡하게 글을 쓰고 한쪽 팔을 들어 파이팅을 말하셨던 모습, 너무나도 괜찮아 보였지만 목소리가 아닌 글씨로 말을 해야 했던 그 모습이 가끔씩 마음을 찢습니다. 어떻게 보면 ‘회사에 열심히 다녀라, 축하한다.’가 아빠의 유언으로 남은 셈입니다. 그래서 엉망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더 화가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데...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면 아빠의 마지막 말을 지키지 못하는 것 같아 화가 납니다. 내 어깨에는 아빠의 응원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걸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 최선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마지막 말은 그것뿐이니까  


  마지막이란 때론, 어쩌면 자주 관계를 찾아오게 됩니다. 아빠와 나눈 대화가 어느새 멈췄듯이 사람 사이의 말도 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하는 말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상대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생과 사의 문제로 보지 않더라도 헤어질 수도, 멀어질 수도..같은 세상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그런 관계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또 보자고 어깨를 툭 치며 헤어진 친구들 중 몇 명은 이제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합니다. 그가 저를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은 축제 같았던 졸업식의 작별인사 몇 마디 겠지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지금 무심결에 던진 나의 말이 상대가 나를 기억하는 마지막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 사소한 말이라도 가급적이면 좋게 하려고 의식합니다. 그게 직접 보고 말하는 것이든, 전화든, 육성이 아닌 일개 회사 메신저나 카톡 같은 메신저라도 꼭 첫인사와 끝인사로 대화를 만들고 끝내려고 애씁니다. 어설프게 ‘ㅋㅋㅋ’ 혹은 읽씹으로 대화를 끝내는 것은 정말 싫어합니다. 우리가 멀어졌을 때 그래도 인사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아빠와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한이 이렇게 오래 남을지 몰랐듯이 다른 관계에서도 마지막 말이 공중에 흩어진 채로 기억하고, 기억되긴 싫습니다. 각자 필요한 말만 하고 그게 해결되면 알아서 대화가 종료되는 요즘 세상에 너무 고지식하게 사는 걸까요


어제 찾은 벚꽃 나무는 벌써 꽃잎을 땅으로 날리고 있었습니다. 벌써 봄이 지나감을 느낍니다. 하얀 눈처럼 내려앉은 벚꽃 잎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의 인사고 누군가에게는 작별의 인사로 남겠지요. 모든 순간은 시작이며 동시에 끝을 의미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살아가며 맺는 모든 시작과 끝에 인사가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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