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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 Jun 03. 2019

'밥 먹었니?'라는 말의 의미

혼자가 아닌

   군대에서 제가 보낸 시간은 2년 1개월입니다. 26개월, 연봉 50만원 정도 계약하고 들어갔는데 중간에 1개월이 줄어드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귀찮은 표정이 역력한 소대장이 소대원 명부를 들고 내무실로 들어왔고 자신의 줄어든 복무기간에 사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당연히 줄어드는 기간은 들어온 순서와 반대였고 괜히 심기가 불편해지는 선임병들의 눈치를 보던 생각도 납니다. 괜히 과하게 미소를 지었다가는 간밤에 있을지도 모를 정신교육 행사가 신경 쓰여 표정 관리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다들 동년배인데 몇 달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 차이에 따라 신분이 갈리는 현실이 그때는 뭐가 그리 억울했는지 모릅니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나 지금 겪는 직장생활은 그런 억울함 정도는 애들 장난처럼 보일만큼 더 치열하고 비정한데 그때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줄어든 25개월을 보내며 전 딱 2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처음은 훈련소입니다. 입소하고 1주일간 동물 및 실습 교보재 취급당하다 처음 갔던 교회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를 들었을 때 ‘아.. 나도 사람이었구나..’라는 눈물이 흘렀고 세례까지 받게 됩니다. 초코파이와 바나나는 사랑이었습니다. 초코파이를 한 번에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군대에서 깨달았습니다. 8개까지 먹고 더 달라고 외치던 저의 눈빛은 인생에 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때 그런 초코파이에 왜 그렇게 절박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픔으로 다가오는 기분입니다. 두 번째는 상병 때쯤? 슬슬 일방적인 빠따가 아니라 저도 좀 모아놓고 짝다리 짚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 최전방 배치를 받고 집에 전화할 때도 해맑게 ‘엄마 여기 선택받은 사람들만 오는 곳 이래 북한군도 보여~’라고 말했던 제가 전화 한 통에 무너져서 엉엉 울었습니다.


   무슨 말이었을까요? 어머니(사실, 전 엄마!!라고 부릅니다) 와의 통화는 사소했습니다. 딱히 부대에서 건수가 있던 상황도 아니었고 여유롭고 따뜻한 봄의 주말이었습니다. 뒤에서 빨리 끊으라고 독촉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그냥 안부 같은 말이었는데 전 엄마가 ‘밥 먹었니? 먹고 싶은 거 없니?’라는 말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냥 대단하게 절절하지도, 아픈 말도 아닌데 왜 그리 눈물이 터졌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원하는 대로 기억한다고 지금은 잊어버린 당시의 다른 아픔이 있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눈물이 없는 제가 딱히 서럽게 울 사정이란 없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먹먹한데 우리에게 ‘밥 먹었니?’라는 말은 참 많은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밥 먹었냐는 말에 어떤 정이란 것이 묻어나는 것은 우리만의 정서일까요? 나이가 들수록 그 말이 때론 정겹게, 때론 아프게, 때론 절절하게 들립니다. 밥 먹었냐는 말은 단순히 ‘네가 끼니를 거르지 않고 나이와 체중에 맞는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하여 3대 영양소로 환원하는 신진대사를 잘하고 있니?’라는 의미도 물론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그렇게 말을 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던지는 말 같지만 ‘밥 먹었니?’에는 많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마음은 어떤지, 기분은 어떤지, 아프진 않은지, 힘들 때면 식욕은 있는지 살아갈 힘이 있는지, 보고 싶고 걱정하고 신경 쓰는 많은 말들이 짧은 ‘밥 먹었냐’는 말에 담겨있습니다. 짧은 말이지만 물어보는 사람의 가장 따뜻한 마음을 담아 절절하게 챙기는 마음입니다. 나쁜 날들에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으적으적 씹고 있으면 나를 생각하는 그런 많은 마음들이 느껴져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먹다 보면 하루가 지나고 시간이 흐르고 마음에도 다른 것들이 채워져 갑니다.


   먹기 위해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먹방처럼 식욕의 해소 의미도 있겠지만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그런 마음들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그렇게 혼자가 아닌 존재라는 의미가 되겠죠.

   사진은 아버지에게 다녀올 때면 들르는 장어구이 식당입니다. 나름 일산 쪽에서 유명한 집인데 식당 홍보를 하는 것은 아니고 아버지에게 다녀올 때면 항상 이 식당에 들릅니다. 저도 '플라세보 효과'의 맹신자라 장어를 먹으며 괜히 힘이 나는 기분을 느끼고 시원한 김치말이 국수를 먹으며 마음을 달랩니다. 아버지를 항상 기억하겠다 말하지만 사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1년에 두어 번 그것도 마음을 먹어야 찾는 무심한 아들입니다. 그렇게 대답 없는 아버지를 가끔 찾아 한참 혼잣말을 합니다. 그러다 사진 한번 만져보며 '아빠 또 올게' 말하며 돌아오는 길에 그리움을 삼키듯 밥을 삼킨 지 벌써 8년이 지났습니다. 아버지에게 '밥 먹었냐'는 말이 가끔은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도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식사는 잘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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