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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Jul 06. 2024

아직 어린데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다

연애*사랑*결혼

잠이 안 온다. 나 아빠가 된대. 그런데 거기에 얽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어.

일단 난 졸업 후에도 집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국내에서 그다지 자리 잡기 힘든 안경광학과 학생이야.

대학 3학년 생이라 경제력이 전혀 없고. 그리고 우리는 아직 결혼을 안 했어. 연락한 지 6개월이고 사귄 지 한 달 정도. 그리고 누나랑 나랑은 4살 차이야.

누나가 너무 착하고 순박해 보여서 만났어. 근데 한 달 전쯤에 같이 간 태국 여행에서 일이 생겼지.

여행사가 우리 신혼부부로 알고 더블 침대 방을 잡아준 실수가 나에겐 동기가 되었다니까.

그리고 집에선 아직 누나의 임신도 누나와 내가 만나는 것도 몰라.

누나 이야기 했었지만 집에서 엄마가 나이 많은 사람 만나는 것에 심하게 반대하시더라. 무슨 할머니를 만나냐는 식으로 말이야. 절대 안 된다고 팔딱 뛰시더라고. 누나랑은 동호회에서 만난 누나 동생 사이인 줄만 알아. 말은 할 거지만 말하기 너무 무섭다. 내가 지금 가장 두려운 건 집에 말해야 된다는 거야.

누나는 79년생인데 그동안 벌어둔 것도 없고, 이혼한 부모님과 엄청나게 치료해야 될 치아 상태에 약간의 카드비까지 있어. 키도 작고 눈에 잔주름도 있지만 난 상관이 없어. 근데 부모님이 싫어할 만한 걸 다 갖춘 거지.


난 집에서 일종의 보여주기식 아들이야. 그러니까 대외 홍보용 아들이라는 거 있잖아.

공부도 잘해야 하고 잘 생겨야 하고, 키도 커야 하고 기타 등등 자랑할 거리가 많아야 하나 봐.

그러다 보니 결혼에 대한 기대치도 엄청나. 엄마 아빠가 원하는 조건을 다 합치면 몸매는 슈퍼모델급의 서울대급의 브레인과 잘 나가는 탤런트급 외모의 갑부집 외동딸 정대로를 바라고 계셔. 그리고 내가 사회에서 흔하게 불리는 잘 나가는 결혼 상대로 성장해 나가길 바라시지.


개인적으로 내 생각으로는 사회에서 말하는 결혼에 적합하다는 조건들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그것만 따지는 건 이혼율만 부추기는 것 같아.

얘기하면 길어지니까 본론으로 돌아오면 지금 날 괴롭히는 세 가지는 일단 첫째로 집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모르겠어.

둘째는 집에서 만약 외아들인데도 불구하거나 쫓겨나거나 하면 나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한 원조, 가령 등록금이나 개업을 위한 비용도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가족 부양을 위해 당장 기술도 변변한 자격증도 없으니 내 앞날은 그동안의 순탄했던 상황에서 완전 역행하겠지.

호주 유학 가서 안경집 사장을 하고 싶었는데 한 20년 후에 내 모습이 일전에 내가 알바하면서 보았던 3D 업종의 노동자로 힘들게 살던 아저씨의 모습과 겹쳐지니까 무엇이 옳은지도 헷갈릴 지경이야.

그리고 세 번째로 나이가 이제 24살인데 너무 서둘러진 것 같아서.. 나 누나 너무 좋아. 그런데도 왠지 더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어. 왠지 모르겠어. 사랑하긴 하는데 너무 갑자기 아기라니 무서울 정도야. 난 아직 결혼도 아빠가 될 준비도 안 돼 있어. 내가 꼬마나 다름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야.

누나는 지우고 싶지 않다고 말해서 나랑 결혼해도 좋다는데 우리 집에서 그런 누나의 모습을 알게 되면 돈이랑 아들 보고 접근한 꽃뱀 정도로 생각하겠지.

우리 엄마는 정신병도 있으셔.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에 나오는 과대망상 비슷한 거 있잖아. 농담이 아니라 15년 가까이 약 없이 못 사신 분인데 누나를 보고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 감도 안 와. 가령 누나가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 부모님과 나까지 모두 죽이고 돈을 챙길 심산이다라는 식으로까지 생각하시고도 남을 분이야.


나도 누나 말처럼 낙태가 얼마나 여자에게 상처가 되는지, 또는 보육원 등에 아기를 버린 짓이 얼마나 가슴 아픈 건지 잘 알고 있어. 그러고 싶지 않은데 당장 진짜 어른이 돼야 하잖아.

결혼만으로 버거운데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어쩌면 두 달 후에 유부남에 예비 아빠의 직장도 구해야 할 거고 부양할 가족까지 생기는 거 아니야. 나 정말 잠이 안 온다.

내일 엄마가 그라탕이 먹고 싶다는데 몰래 누나를 불러서 같이 갈 거야. 말은 아직 안 할 거야. 직접 보시고도 그 정도로 싫어하는지 볼 생각이야. 정말 무서워서 잠도 안 온다.


나에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할 용기는 있는데, 어떠한 고난도 이겨나갈 각오도 있는데, 솔직히 집에 돈도 좀 있고 내가 힘들게 정해서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집에 돈이 꼭 필요한데 그래서 아무 미련도 없는 집구석에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은 걸 자존심 구기고 성질 죽이면서 숨도 한 번 크게 못 쉬고 홍보용 외아들 노릇으로 여기까지 버텼었고, 조금만 더 하면 나도 독립해서 폼나게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모든 것이 당장 내가 입만 뻥긋하면 무너질 것 같아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무너지면 아무리 사랑하는 누나나 혹은 내 자식이라도 원망할 것만 같아서 내 인생이 원망과 노동으로 찌들어버릴 것 같아서 겁나.

욕먹어도 싸긴 한데 부모님한테 뭐라고 해야 할까? 누나를 집에서 좋아하게 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속도위반이어도 축복받는 사이고 싶어. 마왕 도와줘.


내 주변에 이런 경우는 없는 데다 힘들다 보니 믿을 건 수년간 방송으로 함께한 마음뿐이더라.




이 사연 가운데서 문장의 오류가 있군요.

'나에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할 용기는 있는데'.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각오는 있는데라는 말씀을 하시면 안 되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할 용기도 없고, 앞으로 닥쳐올 고난을 이겨나갈 각오도 없는 거잖아요. 지금 근데 왜 이런 엉뚱한 문장을 사용하시죠? 


그리고 우리 상담소에서는요. 좀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재판소가 아니기 때문에 평가하거나 여러분들을 여러분들을 단죄하거나 재판하거나 비난하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현실 상황을 정확하게 우리가 같이 이거 빼고 저거 빼고 제일 중요한 내용들을 생각을 해봐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비판하거나 비난하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비겁하세요. 그리고 24살 먹을 나이에 지금 비겁하면 앞으로 비겁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상황이 와서 안 비겁할 수는 있어도 다시 비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또 그렇게 행동하실 거예요.

그 말 뜻은 뭐냐 하면 지금 사랑한다라고 이야기하는 여자와 벌어진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의지도, 의사도 없다는 뜻이에요. 그냥 마냥 잘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 누나가 너무 좋은데 사랑하는데 그런데도 그 누나보다 앞으로도 더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쓰시면 안 되죠. 오류죠.

사랑이라는 거는 나중에 그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도 사랑할 당시에는 이 사람이 최고다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그거 아니에요? 


괴롭히는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일단 첫 번째로 '집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모르겠어.' 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에요. 집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털어놓고 났을 때 살벌한 최악의 반응이 왔을 수도 있고 최고의 반응이 올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해 보이지만 집에서 엄마 아버지가 '야. 애가 생겼다니 어떻게 돼. 어떡하겠냐. 하는 수 없지.' 그러면서 며느리가 마음에 든다 안 든다보다는 손자를 보게 된다라는 기쁨에 의외로 어머니 아버지가 동요하시는. 왜냐하면 귀하게 생각한 아들이니까.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죠.

그럴 때 당신은 누구한테 가장 부끄러우시겠어요?

이 아이가 태어난다면 가장 부끄러워할 사람은 당신이에요.

당신 어머니 아버지도 아니고. 그리고 애를 낳아서 기르고 결혼해도 괜찮을 거다라고 생각을 하는 그 누나도 아니고요. 이 애 얼굴 못 쳐다볼 사람은 아이 아빠인 당신이에요.

집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왜 생각해요? 집에서 각목 들고서 다리 몽댕이 부러뜨리면 맞는 수밖에 없는 거고 집에서 환영해 주면 그것만큼 고마운 일이 없는 거지만. 어떡해요? 그러니까 본인이 본인 스스로를 아직 본인이 애라고 규정을 하셨는데 그 점은 현명하시네요그걸 알고 계시니.


두 번째는 '외아들인데도 쫓겨나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집에서의 원조를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이런 이런 일이.. 그러니까 엄마한테 혼나면 우리 엄마 아버지는 나를 버릴 것이고.. 뭐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애 같은 건데요.

어른이면은요. 이 상황을 현명하게 타개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애를 낳는 쪽으로 간다면 내 아내가 될 사람을 집에서 받아들이고, 그리고 내 아들이자 내 아이이자 왜냐하면 우리 엄마 아빠의 손자니까. '남이야? 엄마 아빠 손자야~' 이걸로도 나갈 수 있는 거거든요. 얼마든지 공격할 거리는 많거든요. 좀 사악한 얘기입니다만.


세 번째로는 '나이가 24살인데 너무 서둘러진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은 결혼 못 해요.

물론 1%의 미련은 남았을 때 하는 게 결혼이라지만, 저는 1%도 안 남았을 때 결혼했거든요.ㅋㅋ

더 이상은 못 놀겠고 세상에 논다는 노는 건 다 놀아봤고 나 이제 이제 결혼해야지. 나는 뭐 도저히 뭐 아무런 후회 없다. 이럴 때 저는 결혼했거든요.

그렇다면 아기가 개월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낙태 수술에 대한 위험 부담과 몸에 대한 충격은 커지는데, 책임 못 지겠다라고 생각하면 항복하세요.

항복하시고 그리고 그게 그 탄생한 생명이 결코 사랑받을 수 없고, 그 아이의 부모인 그 두 사람이 전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와 관련돼 있는 모든 친척들과 관련자들이 싸그리 불행해진다면.. 지울 수도 있겠죠.

근데 낳는다라고 생각을 하시면,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냥 마음을 쪼이고 있는 그 끈을 한번 탁 풀어보실래요? 애라 모르겠다라고 입 밖으로 한번 뱉어보세요. '애라 모르겠다. 어쩌라고 내가 엄마 아버지 자식이고, 이렇게 생긴 애가 우리 엄마 아버지 손잔데. 그럼 어떡할 거야? 해보라고. 안 되면 누나랑 나랑 도망가서 1년 뒤에 애기 낳아가지고 안고 집에 들어오면 어떡할 거냐고. 우리 엄마 아버지가 손자 손녀를 보자마자 땅바닥에 떼기를 쳐?'

못해요. 절대. 그러니까 하겠다라고 마음을 먹으면 지금 방법은 많아요.


그런데 K군? 저한테 그걸 좀 얘기를 해보세요. 그 누나랑 잘 돼서 애기를 낳고 결혼을 해서 살고 싶다는 거예요. 이 모든 걸 없던 일로 돌리고 싶다는 거예요 지금?

그 누나랑 결혼하자니 더 좋은 상대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애 낳아가지고 이게 내 인생의 장래에 부담이 되가지고서 짐 돼가지고 내 인생 실패할 것 같고.. 뭐예요? 지금 가겠다는 거예요, 안 가겠다는 거예요? 

본인이 그거를 먼저 결정을 한 이후에야 '그렇다면 가려면 이렇게 가십시오. 안 가려면 이렇게 가십시오'라고 뭐가 나오는 거지 본인이 결정을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걸 누가 도와주겠습니까? 그거 아무도 못 도와줘요. 


마지막으로 이 말씀만 드릴게요. 이런 경우도 있다라고 말씀드리겠는데요. 

어른이 된 후에 아이를 낳는 게 아니고요.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어른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준비되지 않은 부부, 엄마 아버지가 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부부 결혼을 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청춘들이 서둘러했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나 인생 요지경 속이기 때문에 그걸 누구도 알 수가 없어요. 거꾸로 아기를 결국 낳고 내가 아이 아빠가 됐기 때문에 내가 어른이 되고, 나에게서 책임감이 생겨나고, 그 순간 엄마 아버지하고 얘기하는 내 말투가 달라지고, 그리고 이 아이를 낳아주었기 때문에 내가 약간의 망설임이라도 있었던 그 여자가 일고의 재고할 가치도 없는 '이 사람이 내 사람이야' 이렇게 되는 수도 있어요. 그 선후 관계는 누구도 뭐라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지 먹을 밥숟가락은 지가 물고 태어나는 거'라고.

나중에 제 딸이 당신 같은 사람이나 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2006.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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