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러웠던 음악대장과 소규모 슬램의 감동.
2011년 다대포에서 삼락생태공원으로 근거지를 옮긴 이후 6년째 매년 참석하는 부산락페스티벌.
이정도 라인업과 이정도 규모와 이정도 퀄리티의 락페스티벌이 무려 공짜인데,
부산 살면서 별 일 없을 경우 이런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내 기준에서 인간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관심 있는 사람의 경우에만 ^^)
올해는 처음으로 이틀연속 뛰었다.
첫째날은 국카스텐(음악대장)보러, 둘째날은 잠시 친구 만나러.
첫째 날.
락밴드 중 국카스텐 만 유일하게 좋아하는 친구(4년 전 콘서트 같이 갔던)와 동생과 동생 친구와 함께 갔다. 일 마치고 가느라 어짜피 앞의 공연은 볼 시간도 없었다.
동생 친구의 경우 국카스텐이 부락에 오는걸 알면서도 귀찮다고 안오려 하길래 내가 욕을 해서 정신차리게 해주었다.
"니가 음악을 싫어하는것도 아니고 일렉기타도 잘치고 밴드음악에 관심도 그렇게 많고 락밴드도 좋아하고 게다가 음악대장뿐만 아니라 국카스텐 노래까지 다 알고 노래방에서 꽥꽥지르며 스트레스 푸는 놈이, 지금 무슨 중요한 약속도 있는것도 아니오 집이 멀리있는것도 아니오 지하철타면 30분도 안걸리는 곳에 살면서, 입장료도 없는 이 축제에 단지 피곤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여기에 안오려고 하는 것이 니 인생의 도리에 맞다고 생각하냐? 그리고 너 국카스텐 라이브 실제로 본적 한번도 없다며? 그런데도 오늘 공연 있는걸 알면서도 안온다는게 지금 제정신이냐? 여기 오지 않을 이유 중 피곤한것 빼고 단 한가지라도 있으면 당장 나한테 말해봐. 없으면 좋은말 할때 당장 뛰어나와서 동생한테 연락해라."
그랬더니 잠시 후 동생 친구는 정신을 차려 택시타고 달려왔더라 ㅋㅋㅋㅋㅋ
음악대장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서 모두 음악대장을 기다렸다. 나야 벌써 3번이나 봤지만, 그래도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처음 본다는 것에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난 분명히 라젠카로 시작할 줄 알았으나, 예상 외로 음악대장 곡은 별로 안하고 대부분 국카스텐 곡으로 셋리스트가 채워졌다.
몽타주로 시작해서, 메니큐어, 꼬리, Violet Wind 등 매니아만 아는 노래 위주로 흘러갔다. 나야 다 좋았지만 왠지 주위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아무래도 음악대장만을 보러 온 사람이 대부부인듯 하였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갈수록 계속 그러니 짜증이 솟구치면서 공연이 끝난 후엔 분노로 바뀌었다. 아니, Sinkhole을 하는데 거의 안뛰는 것을 보고 기가 차서 말도 안나왔다.
원래 부산락페스티벌은 이렇지 않았다. 전국 어디 페스티벌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미친 분위기와 흥분의 도가니탕인데, 6년동안 이런 분위기는 처음봤다. 내가 아무리 뛰어도 주위 사람들이 뛰질 않는다.
영상을 보면 그 최악의 분위기가 확실히 전달된다. 물론 무료이기에 아무나 들어올 수 있고, 뛰든 말든 본인 자유지만, 신나는 노래에도 안뛰는 분위기에 참... 날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래도 동생과 동생 친구는 국카스텐 라이브를 드디어 처음 봤다는 것에 만족했고, 내 친구도 4년만에 본 것에 의의를 두었다.
참 아쉬운 공연 분위기였다.
둘째 날.
서울에서 친구 한명이 부산에 놀러왔는데, 마침 부락 둘째 날이라 당장 가서 놀아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친구는 나보다 훨씬 심한 밴드 및 공연 중독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친구도 부락은 처음이었다.
난 부락의 이런 서양 축제같은 분위기가 참 좋다. 돗자리 깔고 남녀노소 가족친구연인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서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축제를 즐기는 이런 분위기. 난 다른 페스티벌도 다 그런줄 알았는데 친구는 다른 곳은 이렇지 않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무료 입장이기에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 것일 것이다.
약속이 있어 잠시 친구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으나, 4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잠시 무대 구경을 했다.
칵스를 보고 가고싶었지만 시간이 없었고, 그 전 무대였던 일본 밴드 '크리스탈 레이크'의 무대를 보았는데,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팀의 매력에 홀딱 빠져버렸다.
'크리스탈 레이크' 일본에서 온 그들은 완전 제대로된 하드락을 하고있었다. 이런 락공연은 정말 오랜만에 봤다. 무대매너가 상상을 초월하게 멋있었다. 진짜 제대로된 락밴드, 락큰롤, 락스타의 공연이었다.
오늘 만난 친구는 매년 각종 유명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친구인데, 어딜 가도 부락처럼 제대로된 락공연은 없다고 한다. 부락이야말로 진정한 락페스티벌이라고 한다. 거기에 공짜라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라 한다. 뿌듯했다.
또한 부락의 필수인 소방차 물대포도 다른 곳엔 없다고 했다. 과열된 열기를 물대포로 식혀주면서 진흙탕이 형성되는데 다른 락페엔 이게 없다니 내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이때는 급격스럽게 더위가 꺽인 날이라 감기걸릴까봐 몸을 사리긴 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잠시 소규모 공연을 보았다. 아마추어 밴드들이었는데 2~3개의 다른 미니 스테이지에서 각자 모두 미친듯한 '하드락'을 뽐내고있었다. 모두 실력과 무대매너가 프로못지 않았다. 이런 엄청난 밴드들이 겨우 관객 20~30명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그 적은 관객들은 모두 미친듯이 슬램을 하며 뛰어놀았다. 모두 마약한것처럼 눈이 뒤집혀서 슬램하더라.
나도 끼고 싶었지만 다른 일정이 있기에 겨우 참았다. 매번 큰 무대 위주 공연만 보다가 이런 소규모 공연을 보니 뭔가 새로웠는데, 분위기가 전날 국카스텐 분위기보다 백만배 좋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작년에 본 팀은 '뱅크럽츠'였는데, 이번에 본 팀 명을 못 들어서 아쉽다.
부산 락페스티벌은 부산시에서 적극 홍보해야 할 대표적인 관광 축제 컨텐츠가 되어야한다. 해운대, 광안리, 남포동, 사직 야구장 등 뿐만 아니라 한여름의 부산락페스티벌은 이제 그 어떤 식상한 축제보다도 훨씬 매리트있고 자랑할 만한, 부산을 넘어 한국의 최대 (무료) 축제이다. 몰려드는 인파만 해도 3일 동안 십만 명이 훨씬 넘는다.
내년엔 영상컨텐츠 제작하는 친구와 함께 부산 락페스티벌 홍보 동영상을 찍어서 영상 작품 한편 만들기로 했다.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