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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Sep 25. 2016

The Pixar Story : 픽사 스토리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우리는 영화를 만들 때 어른도, 아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에 있는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장소를 생각하죠. 

현실에서 잊고 있었던 그 곳을 영화가 일깨워줄 겁니다.

- 월트 디즈니(Walt Disney)



화제의 겨울왕국을 보았다. 디즈니에서 라푼젤에 이어 3D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대 성공이다. 겨울왕국은 수십 년 전 부터 계획했던 컨셉이었고 마침내 그 결실을 보게 되어 영화의 재미와 더불어 매우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의 시작부분에 짧은 단편이 소개되는데, 디즈니 초기 캐릭터들이 스케치와 3D를 왔다갔다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옛날 스타일의 단편이었다. 이 단편의 감독은 바로 '존 래스터'였다. 존 래스터. 픽사의 아버지 존 래스터.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고 3D로서도 성공하겠다는 뜻이 숨겨진 단편이었다. 뭔가 뭉클했다. 동시에 픽사가 그리워졌다. 최근 몇년동안 '상대적으로' 잠잠하니 말이다. 2007년에 만들어진 픽사스토리 다큐가 또 보고싶어졌다. 월E, UP, 토이스토리3가 나오기 전까지의 픽사의 이야기를 남긴 기록다큐멘터리. 겨울왕국의 여운으로 Let it go를 무한반복하여 들으며 이 글을 쓴다.


픽사와 디즈니의 관계는 많이 햇갈릴 수 있는데 현재 디즈니는 픽사를 인수한 상태이다. 하지만 두 회사가 전혀 다른 기업은 아니다. 픽사는 본래 디즈니로부터 출생되었다. 



존 래스터 (John Lasseter).

픽사의 설립자 중 한 명인 존 래스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학교 출신으로 능력있고 촉망받는 애니메이터였다. 그는 디즈니에 심취해있었지만 3D라는 신기술의 가능성을 보고 '안 해봤다고 못 하는건 아니다' 라는 마음으로 거기에 인생을 걸게 되었다. 3D애니메이션이 점점 가능성을 보일 당시, 컴퓨터가 애니메이터를 빼았진 않을까 하는 과도기의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 당시 디즈니 직원의 95퍼센트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작업하지 않겠다고 했다 - 존의 꿈은 실현하기가 매우 순탄치 않았다. 시대를 앞서간 존은 심지어 결국 자신의 고향인 디즈니에서 해고당하기까지 이른다.


에드 캣멀(에드윈 캣멀) (Edwin Catmull).

애니메이터가 꿈이었지만 컴퓨터에 빠진 상상력 넘치는 과학자이다. 그는 초기 컴퓨터 그래픽 자체를 발전시킨 과학계의 선두주자 중 한명이었다. 맘 속에는 언젠가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대가였던 존과 에드는 어느 날 서로 만나게 된다. 이렇게 픽사는 설립되었다. 예술과 과학의 역사적인 결합의 순간이었다.


'우리는 예술로 기술을 변화시켰고, 기술로 예술에 영감을 주었다.'


스티브 잡스 (Steve Jobs).

돈 없는 신생회사 픽사를 투자로 살린 사람이 스티브 잡스이다.


'저는 그의 꿈을 샀어요. 정신과 작품 모두를요.'


픽사의 컴퓨터기술은 애니메이션업계와 영화의 특수효과 업계 등 여러분야에 활력을 불어넣고 많은 영감을 주고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는데 그에 대비한 확실한 수입이 없었다. 그러던 중 스티브는 일반 투자자들보다 훨씬 긴 안목으로 신생회사인 픽사를 평가하고 투자를 시작했고, 5년동안 1년에 100만달러씩 손해를 봤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꿈밖에 없는, 현실은 시궁창이나 다름없는 위기의 순간에 존은 디즈니로부터 계속적인 감독제의를 받지만 그는 앞이 불투명한, 하지만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수 있다고 믿는 픽사에 계속 남았다. 결국 디즈니는 픽사와 손을 잡고 픽사에게 기회를 주었다. 즉, 픽사가 디즈니의 하청으로 들어간 것이다. 디즈니의 승인이 떨어지면 픽사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여건과 환경을 제공받았다! 

픽사는 디즈니 고유의 뮤지컬같은, 인어공주나 미녀와 야수같은 컨셉은 거부했다. 연령층도 어린이에만 맞추지 않았다. 그들은 픽사만의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쉽게 디즈니의 승인은 떨어지지 않았다. '토이 스토리' 초기 구성은 디즈니에게 퇴짜를 맞았다. 첫 장편 3D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위기에 봉착하지만, 그들은 전화위복의 심정으로 다시 일어서서 밤낮없이 일하고 회의하고 즐겁고 꿈을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다보니 디즈니의 승인이 떨어졌고, 결국 95년 '토이 스토리'를 탄생시킨다.


  




최초의 장편 컴퓨터 3D애니메이션. 그들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드디어 픽사 왕국이 건설된 것이다. 이렇듯 토이스토리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정말 경이롭다. 그냥 운좋게 뚝딱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토이스토리로 다들 우리가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제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우리는 그런 영화를 만들 운명이었다.'



  

토이 스토리의 성공으로 픽사는 명성을 얻었지만 캐릭터상품 등 재정적 수입 대부분은 디즈니로 귀속되었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픽사는 단순한 제작사가 아닌 독자적인 스튜디오가 되어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자본을 얻기 위해 픽사는 주식 공개를 했다. 성공적이었다. 디즈니는 계약 연장을 요청했다.스티브는 동등한 파트너 관계라면 계약하겠다고 했다. 디즈니가 동의했다. 청출어람의 순간이었다.


'두번째 상품 신드롬', 일명 '서포모아 징크스'. 처음이 성공하면 두 번째는 망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지금까지 성공이 단지 운인 것이냐. 이걸 깨야 진정한 실력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픽사는 이 관문을 보란듯이 가뿐히 통과하면서 승승장구하게된다. 다음 작품이 바로 '벅스 라이프'다. 그 다음이 '토이 스토리2'. 탄력을 받아 1년에 1편씩 영화를 내기로 한 픽사는, 존 레스터의 뒤를 이을 감독들이 필요했다. 함께 일해온 동료 직원들이 존의 뒤를 이었다. 이 또한 도박이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피트 닥터(Pete Docter). 역시나 몬스터 주식회사의 성공 후 다음 감독인 '니모를 찾아서'의 앤드류 스탠튼(Andrew Stanton)에게 존 래스터는 묻는다. '앤드류, 부담감 느낄 필요 없어.' '전 괜찮아요!'  역시나 성공. 절대 운이 아니다. 수십 년 노력의 산물이다.



' 네 작품을 연속으로 성공한 회사라면 예전 방식을 고수할 거예요.

하지만 픽사는 정반대였죠. 네번 연속해서 성공했지만 똑같은걸 반복하거나 자만할 수 있으니,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했어요. '

- 브래드 버드(Brad Bird), '인크레더블' 감독


존 래스터는 결국 월트 디즈니 급의 평가를 받는다. 


' 월트 디즈니도 존처럼 뛰어난 직감을 가진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앞날을 내다보는 것 같았죠. 

존 래스터도 그와 비슷해요. 존은 월트와 많이 닮았어요. '

- 조 그랜트(Joe Grant) , 디즈니 스토리 담당



      

문득 든 생각인데, 어벤져스처럼, 픽사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영화가 한 편 나오면 정말 환상적일 것 같다.


혁신의 상징. 꿈은 이루어진다의 표본. 열정과 노력의 본보기. 상상력의 천국. 픽사. 

픽사는 디즈니처럼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쭉 평생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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