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걸은 남자
3년 전부터 보려고 했지만 못보다가 드디어 보았다. Man On Wire. 미국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걸어간 남자.
영상은 여느 다큐멘터리가 그렇듯이 주인공 필리페 페팃 (Philippe Petit)와 그의 친구들의 인터뷰로 과거의 일을 회상하며 시작한다.
신기했던 것은, 그들의 젊은 시절의 영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영상은 재연이 아니라 실제 그 당시의 화면이었다. 그들은 훗날 다큐멘터리를 찍을 것을 예상하고 당시부터 차근차근 사진과 영상의 기록을 남겼던 것일까? 평소 일상에 대해 사진 뿐만 아니라 영상을 백업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이 다큐를 통해 또 드러났다. 젊은시절의 필리페와 그 시절 애인인 애니의 모습은 너무나 풋풋하고 비범한 예술가에게서 풍기는 풍채가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줄타기 곡예사인 필립프는 장소를 불문하고 곡예를 부린다. 하지만 항상 연기를 펼치고 나선 경찰에게 붙잡히기 일쑤였다. 불법으로 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남에게 피해를 주었나? 건물을 손상시켰나? 법은 어겼지만 악한 짓은 아니었다. 법 앞에 두려움이 없는 예술가였다. 누구도 해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위한 일이었다.
그러던 그는, 뉴욕에 위치한 세계 무역 센터 공사에 관한 기사를 읽게된다. 곧바로 그는 그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걷는 꿈을 꾸게 된다.
'이 쌍둥이 타워가 총총 걷더군요. 내 머리 속에서. 질주를 하는 거에요. 내 뇌 속에서.'
수 년, 수 개월 동안 그와 그의 동료들은 꿈을 이루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무역 센터 공사 현장에 침입하여 와이어를 포함한 장비들을 몰래 옥상으로 옮기는 과정도 한 편의 영화였다.
'나오는 순간,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그게 보이자 난 알았죠. 내 꿈이 바로 박살나는 걸.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해. 분명 불가능했죠.
여길 가로질러 걷는 것 뿐만 아니라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거의 1톤이나 되는 장비를 몰래 가져오고
줄을 수시간 동안 설치하여 유도선을 까는 것 등. 분명 인간의 범주 밖이었죠.
허나 내 안의 뭔가 끌어당겼죠. 내가 그걸.. 만져보도록..'
'내가 죽으면.. 얼마나 멋진 죽음일까! 그 죽음이 내 열정의 표현일 테니!'
그는 꿈을 위해 연습하고, 계획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성공한다.
그가 일생의 꿈을 이루는 공연을 할 때 가장 큰 수혜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잡으러 온 경찰관들 이었다. 그들은 당시의 장면을 이렇게 증언한다.
' 개인적인 생각으론 내가 이 세상 누구도 다시 못 볼 걸 보고 있구나. 평생의 기회라고 봤죠. '
이 사건으로 미국의 유명인사가 된 필리프. 사람들, 대중들, 기자들은 그에게 묻는다. 왜 이짓을 하냐고? 어떤 이유로? 우리도 궁금하다. 그는 왜 그랬을까?
필리프가 행한 행동은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의 최고봉이며 '자유'를 찾아 일생을 바치는 예술가이다. 그가 인생을 대하며 사는 방식은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를 따라서 살기는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과의 삶의 격차에서 오는 경외심을 비롯한 자격지심같은 기분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저, 세상을 조금 더 유쾌하고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삶을 '아는 것' 자체가 우리는 예술을 보는 것이며,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러한 삶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