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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 Dec 29. 2016

나의 독립출판 이야기 03

"내 생각이 그림으로 만들어지는 경험"

(2편에 이어)


  사실 처음 생각한 책은 조금 난잡한 모습이었다. 일러스트로 여행의 모습들을 담아내고, 거기에 읽는 사람이 직접 그림을 덧그리거나 색을 칠하거나 글을 써넣을 수 있었으면 했다. 또, 책의 일부를 잘라내면 엽서가 되거나, 팔찌가 그려진 쪽에는 구멍이 뚫려 거기에 자기 손목을 대볼 수 있다거나 하는, 독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변형된 형태를 생각했다. '나만의 여행기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책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희정 작가와 첫 회의를 가진 후 지금과 같은 책의 모습을 확정했다. 그가 아예 책의 전체 페이지가 각각 엽서가 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었다. 원래 생각보다 훨씬 깔끔하면서도 '엽서'라는 매체가 갖는 상징성에 기대어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는 형태였다.

두 쪽이 연결되는 그림이 주는 재미를 가져가고 싶어 고민 끝에 책의 쪽 배치 형태를 결정했다.

  다만 엽서의 모양을 갖추려면 앞면에는 그림이, 뒷면에는 엽서 페이지가 와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배치할 경우 두 쪽이 연결되는 그림을 넣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림 페이지와 엽서 페이지가 번갈아 나오는 방식으로 배열하기로 하면서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POSTCARD>가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까지 이렇듯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다.



  그림 작업 초반은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시간이었다. 어떤 장면들을 그릴지, 어떤 순서로 이어질지 나름대로 구상안을 그렸다(위 왼쪽). 여행이 끝나갈 즈음부터 책의 내용을 생각해두었기 때문에 금방 구상안을 그렸다. 어떤 느낌의 그림체를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참고사진도 여러 장 모아 그림 작가에게 보여주었다(위 오른쪽). 그러면 그걸 본 작가가 또 한 번 참고사진을 모으고 간단한 그림을 그려 구상안을 만들었다. 그가 그러모은 참고사진, 새로 제안해주는 내용, 간단하게 그려본 스케치들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내가 떠올린 것보다 훨씬 좋은 내용들도 많았다. 작업을 함께하는 사람과 성향이 잘 맞고, 그의 작업 능력이 만족을 뛰어넘을 정도로 우수하다는 것. 다시 만나기 힘들 행운이었다.

이희정 작가의 삽화 구상



  남미여행에 대한 내용이라 그릴 내용이 대부분 생소한 풍경이었다. 여행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그리려니 쉽지 않았다. 해서 내 여행 사진을 포함해 참고사진들을 많이 준비했다. 작가의 부탁으로 여행자의 행색이나 옷차림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사진들도 따로 모았다. 때문에 완성된 삽화를 보면 내 사진 혹은 여행 중의 내 모습과 똑 닮은 부분이 눈에 띈다.



최종본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삽화 초안들.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힌 뒤로는 작업과 회의를 반복해가며 그림을 완성했다. 작가가 그림을 그려오면 내가 원하는 방향에 맞게 수정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그림 속 등장하는 주인공을 여성으로 보이게 그렸다가, 내 뜻에 의해 중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수정했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처럼 느끼게 하려면 성별을 지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수정 사항을 작가와 이야기하며 고쳐나갔다.


  내가 구상한 것에서 이렇다할 이미지가 나오지 않았던 삽화가 몇 있는데, 이 역시 끈질긴 회의 끝에 얻은 아이디어로 늦게나마 작업을 했다.

  특히 페루에서 봤던 퍼레이드에 대한 내용(위 왼쪽)이나, 여행을 시작하고 끝마쳤던 비행기 속 감상을 그린 내용(위 오른쪽)은 이미지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퍼레이드에 대한 삽화는 이희정 작가의 제안으로 2층 창문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이미지를 완성했다. 삽화에 포함된 글 내용과 꼭 들어맞는 분위기다.

  비행기 속을 표현한 삽화 역시 이희정 작가의 아이디어에 이런 저런 생각을 더해가며 만들었다. 비행기를 반으로 잘라 옆에서 바라본 듯한 구조로 그린 것이다. 비행기 속 승객들의 모습도, 바깥 풍경도 잘 담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 비행기 삽화에서 재미있는 생각 하나가 떠올라 책에 적용하기도 했는데, 이 내용은 뒤에서 다루기로 한다.



  그렇게 30장 정도를 작업하는 데에 3~4개월이 걸렸다. 내가 그린 터무니없는 구상안이 작가의 그럴듯한 구상안이 되고, 또 작가의 구상안에서 깔끔한 그림 삼십여 장이 나왔다.

왼쪽부터 내가 그린 터무니없는 구상안, 참고사진, 완성된 삽화
나의 구상안과 참고사진을 보고 작가가 아예 다른 구도의 삽화를 구상하기도 했다.
내 여행 사진을 그대로 살린 삽화도 있다. 간단한 수정 사항은 삼작가가 활발히 의견을 나누며 고쳐나갔다.


  나의 이야기가 그림 작가의 눈을 빌려 이미지가 되고, 손을 통해 하나의 그림이 되는 과정. 머릿속 생각은 글로 써서 옮길줄만 알았던 나에겐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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