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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 Dec 27. 2016

나의 독립출판 이야기 02

"시작이 반이다. 사람도 반이다."

(1편에 이어)


  "저기, 스터디 까페라서요.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직원의 말에 세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새벽 1시를 넘긴 시각, 한산한 스터디 까페에는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소음이었다. 셋은 모이기만 하면 이렇게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자주 만나지 못해 이야기할 거리가 늘 쌓여있기도 했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셋 모두 열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날도 각자의 본업을 마치고 늦게서야 만날 시간을 냈다.

  세 사람은 직원의 등 뒤로 못 다한 몇 마디 말을 서로에게 던지고선 이제 입 대신 손을 바삐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원고를 썼고, 옆에선 그걸 손글씨로 옮겼고, 또 다른 사람은 그림을 그렸다.

 

  이제 막 머릿속에서 끄집어 낸 거친 문장들, 아직은 종이 위에 따로 따로 존재하는 미완의 그림들이 어떻게 하나의 책으로 엮일까. 상상해봐도 아직 또렷하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볼리비아의 어느 밤, 1인용 텐트 속에서 느꼈던 감정은 그 뒤로도 여행의 갖가지 순간마다 나를 찾아왔다. 숙소에 누워 멍하니 있을 때나 트레킹을 가서 몇 시간이고 걸을 때, 문득 지나간 여행의 장면들이 떠올라 벅차오르기도 했다. 그 때마다 글을 썼다. 사소하지만 가장 생생한 여행의 순간들을 수첩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수첩이 낡아갈수록, 여행이 끝나갈수록, 명확한 메시지가 생겼다. 여행은 답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도 찾고 싶던 답은 돌아 돌아 다시 가까이에 온 일상에 있다는 것. 그러니 내 여행을 특별하고 거창한 것처럼 포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까지.

  '나만의 여행기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겠다. 그 안에 '그렇게도 떠나고 싶던 일상과 그렇게도 돌아오고 싶던 일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아서. 읽는 사람이 직접 글도 써넣고 색칠도 하고 사진을 붙히거나 내용을 오려낼 수도 있는 여행책이면 어떨까? 조금씩 갈피가 잡혔다.

 

이희정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에 선물받은 그림. 내 여행 사진을 보고 그렸다. 독립출판물 <POSTCARD>의 시작이 되는 그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원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선 그림을 그려야 했는데 내겐 그런 재주가 전혀 없었다. 주위에 그림 그리는 사람이 없나 생각해보다 떠오른 사람이 이희정 작가였다. 대학에서 알게 된 한 학년 선배인데, 그림 작업한 것을 우연히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었다. 남미여행 마지막 나라였던 브라질의 한 버스터미널에서 이희정 작가에게 연락을 했다. 같이 책을 만들어 보자고. 확답은 아니었지만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에 오면 한 번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이희정 작가와 만나 내가 만들고픈 책에 대한 기획서를 보여주었다. 그는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다고 하며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더해주었다. 아직 만들어낸 게 하나 없는데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 마냥 성취감이 들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이런 기분을 두고 한 말이었나. 하긴, 이어지는 작업에서 이희정 작가가 정말 큰 역할을 해주었으니 그 날 난 반을 해낸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머지 반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원고를 손글씨로 써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쓴 글씨는 영 볼만한 것이 못 됐다. 친언니의 가까운 친구 한 명이 손글씨를 잘 쓴다는 사실을 알고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콘텐츠 디자이너인 신수정 작가. 때문에 편집 디자인까지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편집 디자인이 예상보다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걸 도맡아 준 신수정 작가가 없었더라면 아마 책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을 거다.


우리는 스스로를 '삼작가'라고 불렀다.

  이렇게 최고라는 말로도 설명 못할 팀원들을 만나 독립출판 작업을 시작했다. 2016년 3월께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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