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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Feb 19. 2024

사람들은 다 알아 보더라고요.

"나는 인기가 너무 많아서 피곤하다. 사람들이 나를 그만 좋아했으면 좋겠다.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 한 가지 뭘까요? 여기 두 번째 줄, OO님?"

"잘난 척? 자기 자랑 늘어놓기?"

"오! 어떻게 한 번에 맞추셨지? 정답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 지름길, 남의 이야기는 듣지 말고 다 끊으세요, 그리고 내 이야기만 주구장창하며 자랑을 늘어놓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아요."



인간관계, 동기부여, 자기 관리, 삶의 자세, 커뮤니케이션, 정서지능, 자존감을 치열하게 탐구하는 상담학자이자 상담 전문가이신 이 교수님의 명쾌한 한 마디에 강연장에는 웃음이 퍼졌다. , 사람 마음은 다 똑같구나. 만날 때마다 상대의 이야기는 뚝뚝 끊거나 건성으로 들은 채 어떻게든 본인 이야기로 넘어가기에 급급한, 오직 자기의, 나만의 이야기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 상대의 상황이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대화에서 우리는 직감한다.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다, 내 아까운 시간이여...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사람이 스쳐간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그녀와의 만남이다.

장바구니 물가의 폭등으로 마트에서 장 보면 10만 원이 우습다는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 웬일인지 조용한 그녀다. 첫 만남부터 적극적으로 다가온 그녀는 모든 대화를 주도했고, 그런 그녀가 가만히 듣고만 있는 모습은 겨우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매우 낯설었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기보다는 딴생각 중이거나 본인 이야기를 준비하는 듯했는데 첫인상 때문에 갖게 된 나만의 오해이리라, 대부분의 사람은 착하고 선하기에, 아직까지는 성선설의 끄뜨머리 즈음이라도 믿던 시절이기에 '선입견을 갖지 말자, 좋은 사람일 거다.' 속으로 되뇌었다. 이윽고,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OO백화점 식품관에서만 장을 봐요."

식구들이 고기와 과일을 좋아하는데 OO백화점 식품관에서 사 먹다 어쩌다 다른 곳에서 구입이라도 하게 되면 바로 안다며, 역시 백화점 물건만 한 게 없다며 그 후로도 한참을 백화점 예찬을 늘어놓았다. 장 보러 갔다 장만 보고 적이 없다. 가기만 하면 백이 우습다,는 말도 함께. 겨우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그녀와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며 세 번째 만남은 더 헛헛하고 피곤해질 거란 확신이 들었다.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쓸 수는 없었다. 너무 빠른 결정일지라도 이번만큼은 나의 촉을 믿기로 했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에도 어떻게든 본인의 이야기, 정확히는 자랑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였기에,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여나갔다. OO백화점 식품관에서만 고기를 산다는 그녀의 백화점 예찬을 들은 지 몇 주가 채 되지 않던 시점, 가성비 좋기로 유명한 근처 시장 정육점에서 기꺼이 줄을 서며 고기를 사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되었다. 시장 정육점 사례는 극히 자잘한, 귀엽기까지 한 에피소드였다. 본인 아이를 맡기고 사라지는 일이 수시로 발생하였고, 본인 아이가 먹다 남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다던가, 전염병에 감염되었을 때 방역 수칙을 어기는 일은 기본이요, 본인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릴 때는 가만히 있다가 반대의 경우에는 난리를 친다거나, 심지어 돈이 없는 집의 아이들과는 분리를 해야 한다는 등의 말들을 서슴지 않게 내뱉으며 스스로 자신의 인성이 어디까지인지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급기야 그녀는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준 고마운 사람들에게조차 무례하고 방자하게 굴어 몇 년이 흐른 지금, 나와 함께 OO백화점 식품관 이야기를 들었던 그 테이블의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떠났다. 시기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그녀와의 기억이 떠오르자 안도의 한숨이 밖으로 나올 뻔했다. 다시 강의에 집중하자.



 



"이렇게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니,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바로 맞추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요?"

"경청하기?"

"심리학에 관심 많은 분들 답습니다. 경청하는 자세는 기본이고요,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상대가 원하는 걸 이야기하는 겁니다."


상대가 원하는 걸 이야기한다? 쉬워 보이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굉장한 노력과 관심이 요구되는 기술이다.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하며 상대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 무얼 추구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나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거기에 진심인지, 건성으로 듣고 있는지는 본능적으로 안다.



H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만큼 관계에 진심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그녀의 행동을 보면 저절로 느껴진다. 본인 아이 챙기기도 바쁠 텐데 맛있는 저녁 메뉴가 있으면 함께 하자며 연락이 온다. 가식이나 겉치레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니 나도 그렇게 된다. 그녀의 따뜻한 배려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눈으로도 보인다. 멀리서도 반갑게 나와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그녀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도 다 안다. H의 품에 쏙 안긴다. 기분이 울적한 날, 기쁜 일이 생긴 날, 엄마는 속 상할까 말 못 하는 남편 흉을 보고 싶은 날, 그녀가 있다.  



교수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아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집에 돌아가셔서 이렇게 물어봐주세요."


 

 "지금 엄마에게 가장 바라는 건 뭐야?
엄마가 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


그렇다.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들으려고 노력하는 엄마에게 마음의 문을 닫는 아이는 없다. 집으로 돌아가 세상에서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 행복이, 사랑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작심매일이라도. 이래서 사람은 배우고 익히고 연습하고 실행해야 한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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