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힘들었지만 충분히 읽어볼 만했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읽었던 책 중 가장 흥미로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좋은 책이었지만, 쉽사리 추천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처음 <배움의 발견 Educated>을 발견했을 때, 제목이 굉장히 낯이 익었다. 책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던 상태라 일단 제목만 보고는 자기 계발서인가 하며 시작했는데, 읽는 내내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513 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며칠 만에 다 읽었다. 그 어떤 막장 드라마나 스릴러 소설보다 충격적인 실화였다. 동시대에 심지어 나보다 어린 작가가 겪어낸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던 책이다.
아이다호주 벅스피크의 산이 인생의 전부였던 타라.
아버지는 본인의 나이, 스물일곱에 태어난 루크 오빠의 출생 신고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후 아버지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도, 건강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중단하였다. 현대 의학을 불신하며 병원에도 가지 않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망상과 집착에 빠진 아버지를 중심으로 타라의 가족은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교육은 물론, 사회와 타인과의 교류에서 멀어져 갔다. 그 정도는 점점 심해져 어느 시점부터는 그 어떤 사회적 교류도 하지 않은 채 지구 위의 외딴섬으로 살아갔다.
셋째 타일러 오빠의 권유로 타라는 열일곱 살 때 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그 후 벅스피크에서의 삶과 대학 생활 사이에서의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동안 겪은 원가족 내에서의 규범과 자신의 가족문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기 시작하며 걷잡을 수 없는 방황의 시간을 보낸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가족의 규범을 정당화해 보기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해보기도 하며, 잠시라도 그것에 반감을 가졌던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가족에 대한 생각들에 타라의 온 하루는 점령당했고, 옥죄여오는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공황장애가 생겼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등 처절한 시간을 보낸다.
그 후 정말 다행스럽게도, 배움의 시간을 통해, 공부하는 과정을 거쳐 타라는 서서히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된다. 교육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사이에 주기적으로 벅스피크를 방문하는 타라의 모습은 정말이지, 안타까움을 넘어 수분기 없는 퍽퍽한 밤고구마를 때려 넣은 것처럼 답답했다.(물론 밤고구마를 좋아한다.) 하지만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타라의 삶을 들여다본 내가 어찌 그 마음속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엄마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릇되고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채, 가족을 통제한 타라의 아빠가 제일 잘못이 크다. 그렇지만 엄마의 방관자적인 태도가 몹시 불편하고 이해가 안 된다. 대학에 가는 걸 찬성한 것도 숀의 폭력을 인정한 것도 엄마였다. 특히, 타라의 손목을 꺾어 굴복하게 만들고, 동생의 얼굴을 변기에 처박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숀의 행동을 그저 지켜보고 추후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대변하는 엄마의 모습에 읽는 내내 화가 났다. '어떻게 엄마가, 본인 딸한테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굳이 이해해 보자면 그녀의 엄마도 가스라이팅을 당한 피해자일 것이다. 온전한 사고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마무리는 그나마 해피엔딩이라 참 다행이었다. 숀이 타라를 해코지할까 봐 어찌나 조마조마했었는지.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후 손을 씻는 것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던 소녀는, 배움을 통해, 교육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아닌 자기 자신 안에서 살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결심한다. 자신의 삶에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주인이 되기로.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며 다 같이 빠져 죽지 않겠다고.
4 아파치 여인
타일러 오빠의 죄책감은 엄청났다. 오빠는 사고가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했고, 그 후로도 여러 번 해가 바뀐 후에도 모든 결정, 모든 결과, 모든 반향들이 모두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볼 때 그 사고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그냥 일이 꼬이려니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사고를 떠올리면 나는 늘 아파치 여인들이 생각나곤 한다. 삶을 이루는 모든 결정들, 사람들이 함께 또는 홀로 내리는 결정들이 모두 합쳐져서 하나하나의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알들이 한데 뭉쳐 퇴적층을 만들고 바위가 되듯이.
13 교회 내의 정적
타일러 오빠가 일어서며 말했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은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나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내 몸을 마비시킨 것은 두려움뿐 아니라 연민이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숀 오빠를 증오하고 있었고, 오빠 얼굴에 대고 오빠가 증오스럽다고 외치고 싶었다. 내가 오빠를 아무리 증오해도 오빠 자신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혐오감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말이다.
16 불충한 인간, 불복하는 하늘
나는 나머지 식구들과 달랐고, 그 다름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내가 다시 피로 흠뻑 젖은 숀 오빠를 도로에서 발견하면 또다시 그날 내가 한 행동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미안하지 않았다. 부끄러울 뿐이었다.
17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교실을 나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바로 컴퓨터실로 가서 내가 질문한 그 단어를 검색했다. 그 단어는 바로 <홀로코스트>였다.
충격에 빠진 것은 틀림없었지만, 그것이 너무나 끔찍한 일에 대해 알게 돼서인지,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알게 돼서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잠시 머릿속에서 상상을 해봤던 것은 기억난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수용소나 시체들을 묻는 구덩이 혹은 가스실이 아니라 엄마의 얼굴이었다. 너무나 강렬하고 낯선 느낌이어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나를 겁나게 했다.
20 아버지들의 합창
아버지는 내가 점점 '주제넘게 행동한다'라고 했다. 내가 이방인 같은 옷차림으로 다른 곳에 있기를 원한다는 사실이 아버지를 괴롭혔다. 그렇게 아버지와 숀 오빠는 동지가 됐다. 두 사람이 의견일치를 본 건 단 한 가지였다. 대학 맛을 본 내가 주제넘은 아이가 됐고, 그런 나를 치료할 방법은 어떻게든 과거를 상기시켜 주는 것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는 그 모든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가진 언어를 그때는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사실은 이해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깜둥이라고 수없이 불리고, 수없이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웃을 수 없게 됐다는 것. 그 단어와 그 단어를 사용하는 숀 오빠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오직 그 단어를 듣는 내 귀뿐이었다.
23 나는 아이다호에서 왔어요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이었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뭔가 불순한 요소가 들어 있었다.
26 흐르는 물을 기다리며
폭발로 인해 아버지는 설교자에서 관찰자로 변신했다. 끊임없는 통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목이 화상을 입어서 말하는 것이 힘들어진 아버지는 관찰했고 귀를 기울였다.
숀 오빠와 에밀리가 약혼을 발표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방문에 건 빗장을 연신 확인했다. 현재가 금방이라도 과거에 점령되고 말 것만 같았다. 마치 현재가 과거에 압도되어 버리고, 눈을 잠시라도 감았다 뜨면 다시 열다섯 살로 돌아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어떨 때는 숀이 무서워,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무서워." 나는 자기를 무섭게 하는 사람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무도 그런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그 말들은 내 입술을 떠나는 순간 생명이 없는 말들이 되어 있었다.
28 피그말리온
"학생이 어떤 사람이 되든,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든, 그것은 학생의 본모습이에요. 늘 자기 안에 존재했던 본질적인 모습. 케임브리지여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학생 안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학생은 순금이예요. 어디에 있든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케리 박사의 말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정도의 믿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34 바라는 것들의 실상
나는 엄마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엄마의 말을 믿지 않은 진짜 이유는 칼 때문이었다.
... 그러나 숀 오빠는 칼을 선택했다. 그것은 죽이는 순간을 느끼기 위해 선택한 칼이었다. 그 칼은 농부, 혹은 푸줏간 주인의 칼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노의 칼이었다.
35 태양의 서쪽
"도무지 마음을 못 정하겠단 말이야." 숀 오빠는 거기에서 말을 중단했다. "너를 내 손으로 직접 죽일지, 청부업자를 시켜서 죽일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척 하자 오빠는 더 공격적이 돼서 으르렁거리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진짜 그럴 생각은 없을 거야." 엄마가 말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내가 말했다.
38 가족
내가 처음으로 브리검 영 대학교에 발을 디뎠던 날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내 박사 학위 논문의 심사 결과를 정식으로 통보받았다. 나는 이제 웨스트오버 박사가 됐다. 나는 새로운 삶을 쌓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행복한 삶이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상실감은 가족 문제를 넘어선 것이었다. 나는 벅스피크를 잃었다.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