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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Jun 10. 2024

내가 듣고 싶던 그 모든 말들

<엄마의 독서> (1)

읽어야겠다는 의지와 읽고 싶은 욕구가 이처럼 맹렬히 타오른 적이 있나 싶다. 친구에게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교과서를 달달 외우며 문제집을 풀던 고 3 때보다 촘촘하고 밀도 있게 시간을 보낸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공부만 할 수 있었던 그때가 참 팔자 좋았던 시절이었구나... 뭐든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밥 차리고 와서 먹으라고 이야기하고 이제야 책 좀 읽고 싶어 앉으려는데 여지없이 부른다. 이제 집안일 마무리하고 내 시간이다, 아까 읽다 만 책을 다시 집어 들자 "엄마, 엄마!" 부른다. 하루에도 몇 십 번씩 두 명이서 번갈아 가며.... 흠... 코에서 뜨거운 김이 나온다.


"나 책 좀 읽고 싶다고...!!!" 엄마의 공부는 이런 것이었다.

 




<엄마의 독서>

읽고 싶은 책 리스트는 쌓여 가고, 그 더미 속에서 같은 책을 두 번이나 읽게 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그런데 무려 세 번을, 슬쩍 넘기거나 건너뛰지 않고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정독한 책이다. 첫 번째와 너무 달랐던 두 번째 읽기를 지나, 이제 막 세 번째 읽기를 마쳤다. 나는 이런 책을 늘 읽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세 번째 <엄마의 독서> 읽기에 이토록 심탐하게 된 건, 요즘 내가 듣고 싶었던 모든 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모험심이 강하고 용기 있는 선배이자 자애로운 옆집 아주머니이자 성공한 사업가 친구이자 누구에게도 말할 하기 싫고 말할 수 없는 도피처이자 나도 모르겠는 내 마음을 비추는 엑스레이다.


사람은, 특히 여자는 아이를 낳고 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엄마라는 새롭고도 고귀하며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는 기존의 내가 가졌던 가치관, 잠재력, 한계, 신념, 믿음 등이 총제적으로 변화함을 의미한다. 엄마가 되기 직전까지의 삶과는 판이한 차원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4 가능과 불가능의 사이에서_두 아이의 엄마


육체적으로도 지쳐 있었지만 이 시기에 나를 가장 괴롭힌 건
육체의 피곤함보다는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아이들에게 잘해주려 애쓰다가도 어느 순간 폭발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버릇이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포효는 주로 조금 더 어른에 가까운 큰아이를 향했다.
아이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며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분출하기 시작한 굉음과 분노에 찬 손짓 발짓,
한 맺힌 듯 풀리는 폭언은 제 리듬을 타고 맹렬히 기세를 높여갔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갈 데까지' 가버렸고,
아이가 한참 눈물을 흘린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그 상태에서 빠져나왔다.
그런 날 밤이면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나는 악마 같은 엄마다....' 이런 생각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구절이라 가져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째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 머리로는 분명히 차고 넘치게 알고 있지만 구토를 하듯 내뿜어지는 나의 폭주,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갈 데까지 갔던 직전보다 지하도 뚫려 있음을, 밑바닥을 마주했다고 괴로워하던 날 이후에 숱한 더한 날이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여기에 나는 이렇게 화를 내고 난 직후부터는 뒷목부터 뜨거워지며 컨디션이 확 떨어지는 증상을 겪는다. 감정과 기분이 몸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몸소 경험 중인 것이다. 절대로 다시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리, 다짐에 다짐, 결심에 결심을 축척하며, 종국에는 반성과 후회로 되돌아온다.






엄마와 나 사이의 유사점은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하는 행위뿐이었다.
손으로 등짝을 치는 것. 그 외에는 내가 엄마보다 훨씬 비이성적이었다.
나는 엄마가 절대 하지 않았던 '했던 말 미친 듯이 반복하기',
'아이에게 내 인생에 대한 넋두리를 주절주절 늘어놓기',
'울면서 공룡처럼 발 구르기',
'엄마가 힘들어서 집을 나가버렸으면 좋겠냐고 협박하기'를
단골 레퍼토리로 써먹었다.

두 번째 읽을 때 까지도 이 부분이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공룡처럼 발을 구른다고? 왜?'와 같은 궁금증이 일 뿐이었다. 몇 년이 흘러 세 번째 읽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밑바닥을 누군가가 목격한 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아 지나칠 수가 없었다. 몇 년 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나는 왜 이런 모습의 엄마로 변해버린 것일까? 그나마 책을 읽으며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건, 그토록 매번 결심하지만 결국 해 버리고 말아 후회하는 '했던 말 미친 듯이 반복하기'를 나만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배운 적 없는, 대물림이 아닌 새롭게 생산 중인 '언어적 학대'를 하고 미친 듯이 반성하고 후회하는 게 나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의무_<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by 슈테파니 슈나이더


그러나 나는 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육아서를 읽거나 다른 엄마들과
손을 맞잡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는 다짐을 주고받은 뒤면 하루나 이틀 정도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아이를 대했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이것은 엄청난 스트레스 요인이 됐다.
내가 나를 자제하지 못한다는 것, 그렇게 많은 책을 보고 강연을 듣고
수없이 다짐을 했는데도 내가 나를 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자괴감과 열등감으로 이어였다.
이러한 감정의 수렁에 빠지자 '못된 습성'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육아서 읽기와 교육 강연 순례하기, 동료 엄마들과 다짐 주고받기 의식에
매진하기 전보다 더 빈번하게 불을 내뿜게 되었던 것이다.
혹시, 나는 쓰레기인 것일까?
이 시기 마음속에 맺힌 내 이미지는 '쓰레기'였다.


정확하게 내가 주기적으로 드는 생각을 4장 75페이지에서 만났다. 심지어 어제 동네 엄마들과 주고받은 대화에서 나는 "후회와 반성의 반복으로 인한 자괴감 열등감을 느낄 때면 괴롭다."라고 말했다.  첫째 아이가 여덟 살 초반까지만 해도, 다른 엄마들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거나 그랬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음... 왜 아이한테 그렇게 화를 낼까? 그렇게 화가 날 일이 있나, 말로 잘 설명하는 게 엄마의 역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월감 내지는 자부심도 느껴지면서 말이다. 그렇게 사고를 한지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첫때 아이에게 문제집을 집어던지며 불을 뿜어댔다. 누가 분노에 차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면 어떤 귀신보다 무서웠을 것이다. 처절함, 회환, 자책과 죄책감으로 얼룩진 그날 밤 굳게 다짐을 했었지. 내 엄마 인생에서 이런 식으로 화를 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그렇게 몇 주가 지났던 시점에 정확히 처음의 그날보다 수위가 높은 나의 '화부림'에 아이가 펑펑 울다 잠들었던 밤, 나는 내가 쓰레기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5 아빠, 넌 누구냐_아빠의 자리_'알아서 잘하는' 아빠는 없다 <나쁜 아빠> by 로스 D. 파크


"내가 뭐 하고 있는지 안 보여? 내가 손이 열 개 달렸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 채
나는 끝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울고 발을 구르고 고함을 질렀다.
반복되던 장면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어느 때 헐크로 돌변하는지. 수많은 일들이 나를 향해 한꺼번에 덮쳐올 때였다. 그러니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신경 써야 하는 일이 한꺼번에 닥쳐올 때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다.


내가 언제 아이들에게 폭군이나 헐크 혹은 마녀로 돌변하는지 나도 참 많이 돌아봤었다. 다. 시. 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 언제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바로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와 대응방식이 매우 흡사한 장면을 읽다 보니 며칠 전 화장실 습격 사건이 떠오른다. 둘째 아이의 말만 듣고 화장실에서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에게 폭주를 했더랬지. 가라앉은 뒤 반추해 보니 폭주기관차의 전형이었다. 그럼에도 먼저 사과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배운 건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나이기에, 잘못된 방식으로 대응했던 부분에 관해서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5 페이지는 더 나올 것 같아 <엄마의 독서>를 읽고 난 후 나의 속마음 파헤치기 1편은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그토록 사랑한다는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행동을 돌아보면 느꼈던 환멸, 수치심, 죄책감이 나만이 가진 특수성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경험은 참으로 위로가 되었다. 잠시일 뿐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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