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학교로 전학 온 친구가 두 명 있었다. 본인이 전학 왔을 때가 생각났다며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단다. 전혀 다르게 생긴 두 친구는 알고 보니 쌍둥이였다며 눈을 반짝거리며 이야기했다. 식탁에 오랫동안 마주 앉았다. 우리는식사가 아닌 대화를 했다. 이런 다정한 시간이 자주 생기면 좋겠다.
에곤 실레의 그림이 눈에 띄는 동급생 <원제:Reunion>을 읽었다.
16살의 두 소년이 주인공이다. 유대인 의사의 아들이자 랍비의 손자인 화자 한스 슈바르츠는 콘라딘 폰 호엔펠스가 전학 오기 전까진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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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아이도, 내 완전한 믿음과 충절과 자기희생에 감복할 수 있는 아이도 없었다.
나는 친구를 위해 죽는 것도 달콤하고 옳은 일이라는 데에 동의했을 터였다. 열여섯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에 있는 소년들은 때때로 천진무구함을 심신의 빛나는 순결함, 완전하고 이타적인 헌신을 향한 열정적인 충동과 결부시킨다. 그 단계는 짧은 기간 동안에만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강력함과 독특함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로 남는다.
중학교 시절, 정말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편지도 자주 주고받았다. 학년이 올라가며 반이 달라졌음에 도 점심시간에 만나서 밥을 먹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국어 선생님을 나도 자세히 관찰했다. 관심도 없는 선생님이었지만 친구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친구에 세 전해주었다. 친구가 좋아하니 나도 기뻤다. 그때는 가족보다 친구가 더 소중했고 좋았다. 그 친구는 국어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답게 글쓰기도 좋아했다. 덕분에 나도 글짓기를 자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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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는 일에 너무 매여서 내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은 내 침울하고 따분해하는 표정, 에둘러 피하는 대답, 그들이 소년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불가사의한 과도기와 <성장통>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린 내 기나긴 침묵에 익숙해져 있었다. 때때로 어머니는 내 방어막 안으로 들어오려 했고 한두 번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도 했지만 내 고집스럽고 반응도 보이지 않는 태도에 낙담해서 오래전에 그러기를 그만두었다.
나의 부모님도 나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는 대신 친구와 많은 대화를 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친구처럼 지내는 이이들이 부럽기도 같다.
나는 아직까지는 내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한다. 너무 바쁠 땐 건성으로 대답하면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네?" 하며 서운함을 전할 때도 있다. 말하려고 부엌으로 달려온 아이 앞에선 생선을 손질하던 중이라도 멈추고 집중해야겠다. 아이가 방어막을 치기 전에!!
7 가장 중요한 문제는 더 이상 삶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이 가치 없으면서도 어떻게 해서인지 유일하게 가치 있는 삶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인 것 같았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슨 목적을 위해? 우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인류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해야 이 잘 안 되는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을까?
부모로서의 바람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태교로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나도 그 세계에 빠졌다. 두 아들은 책을 좋아한다.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학교에 다니기시작하면서 수학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추가되었다. 첫째는 이제 곧 중학교에 입학한다. 책 읽는 것을 줄이고라도 수학 공부의 양을 늘리려고 억지로 시키며 많이도 부딪쳤다.
아이의 유리조각같은 날카로운 말들에 공부는 아이에게 맡긴 상태다.알아서 하겠지라고 믿고싶다.
"왜 수학이 중요한데? 왜 대학에 가야 하는데? 내 인생인데 왜 엄마가 시키는 데로 해야 하는데? 빨리 독립하고 싶어!!!"
공부 좀 하라고 할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했던 첫째의
질문과 주장들이다. 몸도 생각도 커지며 많은 물음표 시기라고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렇게 몇 개월을 지내고 보니 수학 문제 좀 안 푼다고 인생이 크게 나빠질 것 같지 않다. 그 후 찡그린 얼굴보다 웃는 얼굴을 마주할 때가 많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한스와 콘라딘은 너무 잘 맞는 단짝이었다. 하지만 나치즘이라는 이념은 우정을 갈라놓았다. 2차 세계대전의 잔인함과 어리석음이 두 친구를 헤어지게 한다.
소설이 시작되기도 전에 앞 페이지에 쓰인 화려한 선전 문구가 읽은 후에 다가 올 감동을 떨어뜨렸다. 이 책을 읽겠다면 내용을 먼저 읽은 후 다시 앞으로 돌아가 서문과 선전문구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