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다움 Nov 11. 2024

설렘 한 스푼, 기쁨 두 스푼

Dear 왠지 정이 가는 여니 작가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한 날이 11월 5일이니 브런치를 시작한 지 딱 일 년 하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네요. 작가님을 알게 된 지도요. 빵순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였을까요? 따스하고 섬세한 성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가님의 글과 말 덕분이었을까요? 작가님에게 유독 친밀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심지어 저희는 직접 만난 적도 없잖아요.


본격적인 편지에 앞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에그타르트 사진으로 시작해요. 조만간 함께 하기를 바라며.




최근에 썼던 글 중에서 이 편지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어요. 처음 마음은 편하게 써야지, 힘 빼고 써 봐야지 해서 그래도 술술 써졌던 것 같은데 쓰다 보니 욕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퇴고 중입니다. 제 가슴속에 담긴 생각과 마음들을 작가님에게 구체적인 단어들로 아주 잘 전달하고 싶거든요.



작가님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책을 고르는 시간도 굉장히 설렜어요. 작가님은 책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궁금하네요. 같은 경우는 가지인 것 같아요. 서평을 둘러보다 마음에 들거나, 주변에서 추천받은 책들을 읽고요. 그리고 제목이라든가 표지라든가 한줄평에 이끌려 무작정 읽기 시작하기도 해요. 그리고 이렇게 우연히(혹은 운명적으로) 얻어걸린 책이 완전히 제 취향이거나 누군가가 생각나거나 추천해 주고 싶을 만큼 좋을 때면 희열이 느껴져요. 보물은 발굴한 듯한 느낌이에요. 이 책도 그랬어요. 아무런 정보 없이 우연히 집어 들었다 저희 집까지 온 귀한 책이지요. 감수성 수업은 제목이나 표지로는 사실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강렬하진 않았어요. 단지, 작가가 정여울 님이라는 걸 알게 되어 펼쳐 보았는데 역시나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들어가는 말부터 좋더라고요.




삶에 대한 사랑을 되찾기 위하여 시작할 것들

책, 음약, 미술 등 인간의 창조적 작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일반 사회에서 우리가 만나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보다 훨씬 공격성이 약하다. 이들은 '내가 왜 이 작품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할 뿐, '내가 이 작품이나 창작자를 싫어하는지'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일반 사회보다 '감사'와 '기쁨'과 '소박한 행복'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나를 발견한다. 비난하고, 공격하고, 서로를 짓밟는 사회 분위기에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애정, 사랑하는 마음을 잊어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침울해질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마침 이 구절이 나타났어요. 그리고 작가님이 떠올랐지요. 일상 곳곳에 잠들어 있는 감사함과 소박한 행복을 발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작가님의 모습과 결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 책에 대하여 작가님과 이야기해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우리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브런치가 빠질 수 없죠? 글쓰기 강의를 신청한 게 처음이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열정 넘치고 하루를 72시간처럼 살고 있는 분들이 많구나를 느끼며, 부럽고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함께 할 친구들을 만난 것 같아 정말 기쁘고 소중했거든요. 그렇게 일 년 여의 시간을 이 길만 바라보며 걸어왔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고 3 때보다 열심히 산 것 같아요. 그런데 그만큼 고민도 많았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속도와 방향이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주기적으로 이게 맞는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 자꾸 의문이 들고 조바심이 더라고요. 특히, 아이들에게 소홀해질 때면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제가 기대치도 높고 꿈도 크게 꾸는 성향이라 그만큼 실망도 크게 하는 것 같아요. 낙담하거나 실망하고 싶지 않아 기대도 낮추고 상상도 덜하려고 노력해 봤는데 안 되네요. 저는 그냥 마음껏 상상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낙심하고 다시 꿈꾸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이런 감정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작가님이 저에게 해 주신 이야기가 마음에 계속 남아 있어요. 누군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도움이 될 만한 책까지 추천해 준 다는 게 정말 고맙더라고요. 이 편지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합니다.




물론, 읽고 쓰고 운동하는 단순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면서도 매번 즐겁지는 않지만, 그 일 년의 시간들을 통해 지금의 저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긴 해요.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브런치를 시작하고 읽고 쓰는 생활을 이어가며 어떤 변화를 느끼셨나요? 편지를 쓰다 보니 작가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계속 생겨납니다. 특히, 이 질문은 정말 궁금해요. 저는 저 자신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점, 내 감정의 근원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게 됐다는 점이 가장 달라진 부분이에요. 그리고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건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실행에 옮겨 충만하게 보낸 하루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이 해야 하는 마음의 부채감을 넘어 그야말로 불성실하게 보낸 하루도, 소중한 삶의 일부라는 사실이요. 땅굴을 파고 깊숙한 지하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내가 나를 놓지만 않는다면 돌고 돌아 언젠가는 다시 올라올 있다는 것까지요.




트라우마_함께한다면 이겨낼 수 있는 그것

"혼자 견디기에 버거운 수많은 짐을 짊어지고 살아온 자신의 삶을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 말이 왜 그토록 서글펐을까. 나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도 나 자신의 삶을 애도해야 한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애도라는 말에는 단절의 의미가 있다. 힘겨웠던 그 시간을 견뎌낸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나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의 자신을 애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그것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언젠가는 활짝 피어나는 봄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줄기차게 싸워왔던 나는 어느 날 깨달았다. 나를 괴롭혔던 수많은 사람보다 이제는 내가 훨씬 강해졌음을. 어느새 나도 모르게 강인해졌음을. 과거에 나를 괴롭혔던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강하고 지혜로우며 씩씩해졌음을.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 있어야 힘을 얻는 존재라는 것을 눈물 속에서 깨달았다. 우리 함께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는 언어 속에서 힘을 내기로 하자. 수업이 타인에게 실망할지라도 우리는 혼자선 자신을 위로할 수는 없는 존재이며, 타인에게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필사하며, 작가님과의 고요하고 따뜻한 대화를 상상해 보았어요. 과거의 우리를, 아프고 슬프고 비참했던 기억과 마음을 애도하는 대화의 시간을요.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에 함께 이야기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 맞겠다 싶은 방법이 떠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 친정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그 사랑에 대하여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도요. 부모님의 무조건적 사랑에 진심으로, 정말 마음 깊이 감사드리고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마음 한쪽에서는 부모님이 주신 사랑의 절반도 보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부담감, 내가 바라는 형태의 사랑과 관심은 그게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불편함, 그리고 미암함을 넘어선 죄책감 같은 감정이 있었거든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배부른 고민으로 치부될까 봐. 고마움을 모르는 딸로 비칠까 봐... 사실, 정확한 감정은 모르겠어요. 어쩌면 단지 말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동생이 아닌 누군가에게 엄마에 대한 솔직한 제 심정을 털어놓았던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느끼는 딸을 만난 것도 처음이었고요. 그래서 더욱 내적친밀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면, 우리 딸들과 나와의 관계를 대입해서 생각해 봐요. 그랬더니 저만의 해답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제 삶을 충실히 살면서 틈틈이 전화하고 소식 전하고요.




친정 엄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에서 정말 좋았던 구절이 떠올라 작가님과 나누고 싶어져요. 작가님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추리고 추렸는데도 많네요.^^

내 사랑이 위로가 되나요?

아빠를 잘 보내 드리고 싶었다. 여전히 많은 후회가 남는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 정도 여한도 없이 부모를 떠나보내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사랑했던 만큼 누구에게나 작별을 안타까운 거라고.

이제는 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가 가장 행복해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마지막 문단이에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과감히 정리합니다.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한 지 꼬박 일주일이 지났는데 오늘은 정말 잘 마무리해서 발행할 예정이거든요.


글을 쓰기 전에는요, 저는 슬픔, 우울, 분노, 증오와 같은 강렬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마음속 아주 깊은 장소에 꼭꼭 눌러 두었어요. 잘 숨겨진 감정들은 한동안 너무도 고요해서 소멸했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현실적인 상황에, 수많은 역할에 지치고 고단해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 어른이 되어가는 저를 발견했어요. 밝고 명랑했던, 제가 좋아했던 저의 성향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과 팍팍한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에서 오는 씁쓸함 등이 한데 뭉쳐져 복합적인 심정이 들었어요. 저는 달라지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나 봐요.



글을 쓰는 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를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은 용감한 분이에요. 작가님이 하시는 일련의 모든 행위들(읽고 쓰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민과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언을 받아들이는)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보고 싶다는, 인생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강한 의지 같은 게 보였어요. 작가님은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작가님의 삶을 이끌고 싶어 하고 그래서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 거예요. 저에게는 그런 애씀이 보여요. 그리고 삼십 대에 읽고 쓰고 사유하는 삶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삼십 대 때 그렇게 하지 않(못)았거든요.  


 


작가의 무덤_단테의 무덤에서 천국, 연옥, 지옥을 경험하다

그렇게 자신을 향한 혐오를 부지런히 키워가고 있을 때, <신곡> 속 문장을 다시 만났다. "나는 행함으로써 패배한 것이 아니라, 행하지 않음으로써 패배했다." 너무도 뼈아픈 자기 진단이었다. 뭔가를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습관은 여전히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니깐 오늘 하루가 엉망진창이고 결핍투성일지라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내 삶이라는 큰 그림에 이어 붙이면, 언젠가는 그 깨진 모서리들이 아름다운 윤곽선이 되어 광대한 삶과 사랑이라는 모자이크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힘들고 지치고 쓸쓸한 그래요, 일단 오늘을 버티자. 오늘을 버틸 힘만 있으면 우리에겐 희망이 있으니까.


이 구절은 우리 둘 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에요. 덧붙이자면,


오늘은 버티자, 작고 소중한 기쁨과 즐거움도 발견하면서.


 




소중한 존재에게 무덤덤해지 않는 능력은 바로 사랑이라는 말에 한동안 가만히 저를 되돌아 보았습니다.

너무 흔하고 평범해서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단어가 '사랑'이 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감탄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감동하고 기뻐하는 하루를 보내기를 바라며, 편지를 마칩니다.

 

하루의 끝에는 작가님의 작고 소중한 아름다움 들을 만나기를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마도 사랑은 블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