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에게 편지를 전할 생각을 하니 마음 속 저 편에서부터 '반가워요, 너무 좋아요, 떨려요, 어쩌죠?' 재잘재잘 간지러운 마음의 소리가 별빛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홍디 작가님께 책을 소개하는 편지를 쓴다고 했을 때 떠오르는 책이 있었는데요, 바로 <아마도 사랑은 블랙>이라는 책이었어요. 읽기도 전에 제목에 꽂혀서 지금 나처럼 속 타는 마음, 애끓는 아픈 사랑의 표현인가 했답니다. 홍디 작가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블랙'에 물들어 가실 거예요. 작가님은 그림을 그리며 물감으로 다양한 빛깔을 만들어내는 마법사이니까요.
작가님은 '사랑'하면 어떤 색이 떠오르시나요? 그것도 궁금해집니다. 왠지 작가님의 사랑은 하늘빛 사랑일 것 같아요. 하늘을 좋아하는 작가님이니까요. 그리고 점점 노을빛에 가을빛이 더해진 그런 색깔. 그저 작가님의 대답을 듣기도 전해 상상해 봅니다.
아마도 사랑은 블랙. 사랑이 블랙이라니, 처음 만난 제목은 제게 너무 신선했어요. 그리고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맞아, 사랑은 블랙이 분명해.' 하고 감탄하게 되었어요. 어머니에게 쓰는 작가의 글은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기도 하고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도 했어요. 이광희 디자이너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 어느 글보다 제겐 울림이 있었고 한편 한편 아껴서 오래오래 본 글들이에요. 작가님도 이 책을 만나면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거 아세요?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은 패션디자이너 이광희 씨가 쓴 책이에요. 작가님에게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작가가 디자이너라는 사실때문이 아니었거든요. 이 책이 작가님에게 추천하기에 더없이 좋은 이유를 또 찾게 된 것에 신기했어요. 이광희 씨는 작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최정상의 자리를 지킨 디자이너이기도 해요.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앙드레 김'만 떠오르던 사람이었어요. 아이참,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을 뻔했어요. 패션에서도 홍디님은 멋진 디자이너였기에 이 분도 진작에 알고 계실지도 모르고, 그 분야에서는 당연히 더 많이 아시겠지요. 어쩌면 이 책도 읽으셨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어쩌지?' 하고 걱정했는데 그렇다면 더 좋지요. 작가님과 읽은 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책을 읽는 내내 나이 드신 분의 지혜로움과 삶에 대한 고찰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 분의 부모님도 정말 존경스러운 인물이더라고요. 아버지는 이종묵 목사였고, 어머니는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사로 평생을 고아들과 정신병환자들을 위해 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마도 이광희 작가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늘 겸손한 자세로 세상에 따뜻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부모님의 삶이 고난의 길이었기에 자녀들은 힘든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요.
편지 곳곳에 담긴 신선한 깨달음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글들이 많아요. 조금씩 소개해드릴 테니, 천천히 따라오세요. 어때요, 벌써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홍홍(작가님의 트레이드마크인 웃음소리를 좀 빌려 쓰도록 할게요!)
제가 책갈피로 표시해 둔 몇 개만 소개해 드릴게요. 그렇지 않으면 밤을 지새야 할지도 몰라요. 한 편으로는 부족한 편지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1. 빛방울의 첫 번째 책갈피
#깨달음은 언제나 뒤늦게 오더라
30대를 잘 보낼 걸 그랬다며 후회하는 아들에게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로 후회하지 마. 깨달음은 항상 뒤늦게 오는 거야. 깨달음이란 항상 뒤늦게 오는 거야. 엄마가 일흔을 살다 보니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게 원래 인생의 순서야. 깨닫는 건 자가기 아프면서 겪어봐야 알게 되는 거잖아. 경험을 통해서 몸으로 터득해야 진짜 깨닫는 거지. 깨달은 다음엔 절대 잊지 않는 게 중요해."
후회하고 자책하는 나를 바라보다가 그렇게 나이 든 어른이 이야기해 주니,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요.
2. 빛방울의 두번째 책갈피
#첫 번째 편지 책갈피 #사랑은 아마도 블랙
"어머니, 사랑의 색깔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 주어진 모든 의미가 합쳐진 게 사랑이 아닐까요? 사랑은 자유라고 생각할 때 그것만으론 충분히 않습니다. 사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해 보아도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랑은 기쁨, 행복, 슬픔, 불행, 고통, 환희, 자유, 빛과 그림자, 이 세상의 모든 의미를 하나로 모을 때 비로소 사랑인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아니, 까맣게 타들어 간 마음은 사랑 때문입니다. 진정한 모든 의미가 합해진 깜깜한 암흑에서 사랑의 환한 빛이 나옵니다.
모든 색을 합하면 검정이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블랙이 아닐까요?"
'어머니'로 시작되는 작가의 편지는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어머니라면 어떻게 말씀해 주실까를 생각하며 글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어머니,'까지만 읽었는데도 가끔은 목이 메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작가님도 아마 예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마흔의 고개를 넘어 걸어가고 있는 작가님과 저는 한 남자를 사랑하여(사랑해서 결혼한 맞죠?^^)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낳아 자식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지요. 부모 아래 컸지만 부모가 되어보지 못하면 부모의 마음을 알리 없더라고요. 부모가 되어보니 속이 시커멓게 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점점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토록 사랑하기에 하나의 색으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빛깔의 사랑이요. 작가님은 어떠신지요?
이 편지는 답장을 받는 글이 아님에도 작가님의 대답이 기다려지는 것은 왜일까요? 큰일이에요, 작가님의 생각이 너무 궁금하고 작가님을 만나러 가고 싶어지잖아요. 홍홍
3. 빛방울의 세 번째 책갈피
#내려놓음이란 말이 멋지긴 한데요
"내려놓는다는 거, 참 멋진 말이에요.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는 투쟁하듯 쌓아 올려야 할 일들도 있는 것 같아요. '내려놓음'이라는 멋진 포장으로 인생에서 슬그머니 물러나 어물쩍 포기해 버린 일은 없는지 주위를 둘러봐야 할 것 같아요. 사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 본 후에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자식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려놓으라고 하잖아요. 사실 말은 내려놓자, 싶지만 절대 되지 않는 마음이거든요. 얼마 전 '스미다'님의 글 속에서 자식에 대해 내려놓는 순간이 있기나 하냐는 글을 읽고 엄청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치열하게 나의 삶을 살아보고 자식의 일에 대해 열심히 해 본 후에라야 비로소 '내려놓음'이 필요한 순간에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작가님은 한 때 대기업에서 열심히 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오셨고 그 모든 걸음들이 헛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지금의 멋진 작가님을 만들어 내신 건 그렇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쌓아 올렸기에 가능한 모습이겠지요.
4. 빛방울의 네 번째 책갈피
#두더지 잡기 놀이
작가가 칠십이 되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오랜 세월 아무렇게나 꾸깃꾸깃 구겨서 휴지통에 집어던져 쌓아 놨던 낡은 생각, 묵은 아픔들을 깔끔하게 비워버리고 정리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였대요.
"마치 용수철 달린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문득문득 이 녀석들이 튀어나오니, 이제는 그 애들이 말하게 해 줘야겠더라고요. 문제는 이런 두더지가 튀어나올 땐 어떤 단어로 다스려야 할지 저런 두더지는 어떤 말로 달래야 할지 막막한 거죠. 마음에 담긴 것을 시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을 찾아낼 수 있다면 훨훨 날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더 두드리고 흔들어야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글을 쓰는 우리가 하는 고민이기도 해서 참 공감하며 읽었어요. 얼마나 더 두드리고 흔들어야 가능할까요? 하지만, 작가님! 함께 글을 쓰는 동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모릅니다. 막막한 마음을 글로 풀어내었을 때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는 글동무들이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작가님, 어떠셨어요?
한 권의 책을 몇 마디의 말로 소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요. 쓰다 보니 한 권을 책을 다 베껴 쓸 뻔했답니다. 작가님에게 대화하듯 쓰다 보니 옆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어요. 작가님에게 한 뼘 더 다가간 느낌이에요. 작가님에게 조심스레 건넨 책 한 권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기약해 봅니다.
편지를 쓰는 내내 가슴이 따뜻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제가 작가님을 생각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사람을 먹고 산다.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도 살지만, 먹을 사람이 없으면 죽는다. 너는 사람에게 먹혀 봤느냐?
저는 글을 쓰는 내내 작가님을 먹었습니다.
다음 차례엔 홍디 작가님에게 먹혀보고 싶네요.홍홍
마지막은 호러가 되어버렸지만, 작가님에게 전해지는 제 편지가 작가님을 행복하게 해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정성껏 접어 작가님에게 보냅니다.
점점 더 깊어지는 가을의 빛깔을 모두 머금어서 작가님의 가을이 더 찬란하시길 바라고 또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