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잡고 빨래 개기, 정리 정돈, 뜨거운 물로 샤워하기, 남편이 진심인 분야다. 냉장고에 음료수와 맥주 착착착 줄 세우고, 술이 아무리 많이 되어도 양복 상의는 탈탈 털어 페브리즈를 뿌리고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어 놓은 후, 뜨신 물로 아주 오랜 샤워를 끝낸 후에야 비로소 잠을 잘 수 있는, 남편은 그런 남자였다.
“어제 새벽에 행복이 깬거야?”
“깨진 않았는데 뒤척거리는 것 같아 봤더니 축축 하더라고, 찝찝할 것 같아 기저귀 갈아줬어.”
‘굳이…? 안 울면 그냥 두지. 기저귀 갈다가 깨겠어. 그러니 피곤하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리 둘 다 최소한의 잠과 달리는 체력으로 하루하루 버텼던 날들이라 말을 아꼈다.
이런 섬세하고 깔끔하고 배려심 넘치는 남편의 성격은 첫째를 키우며 한동안 지속되었는데, 이 깔끔함 덕분인지 때문인지 새벽 3시에 눈을 비비며 기저귀를 갈아준 후 다시 잠드는 생활을 이어갔다.
최선을 다했던 아빠의 육아로 행복이는 아빠와 베스트프렌드가 되었고, 아기를 좋아해 동생을 낳아 달라고 매일 노래를 불렀다. 4개월만의 복직 후 내리 달리던 나도 행복이가 4살이 되자 둘째 생각이 났다.
“난 지금이 너무 좋아. 우리 행복이 낳고 한동안 잠도 못 자고 얼마나 힘들었어? 기억 안나? 이제야 편해졌는데.”
매일매일 난 둘째가 더 갖고 싶어졌다.
임테기(임신테스트기)에서 임신 확인 후, 짜잔하고 남편을 보여줬다.
많이 놀란 눈치다.
이런 히스토리를 가진 둘째는 아빠의 분신처럼 똑같이 생긴 채 세상에 나왔다.
첫째 행복이도 축복과 감탄, 행복이지만 내가 우겨서 낳은 둘째 사랑이는 사랑 그 자체다.
태어날 때부터 웃으며 태어나 간호사 선생님들도 신기해하셨던 그 아가는 지금도 웃음 천재다. 육아하면서 당연히 힘들고 지치고 내 밑바닥 마주했나 싶었는데 그보다 더 밑바닥이 있고, 죄책감 느끼며 후회하고 반성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은 둘째까지 낳은 거다.
태어난지 이틀 째, 계속 웃는다.
정말 고마운 우리 딸, 임신 기간에는 엄마 회사 열심히 다닐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주고 잠 많은 엄마를 위해 신생아 시절부터 통잠을 잤다.
조리원에서도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고
집에와서도 여전히 잘 웃고,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고
이 아가는 여전히 반달눈으로 웃으며, 그 사이 사이 축복과 감사와 감탄은 잊은 채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엄마를 위로해주는 사랑 넘치는 7살 어린이가 되었다. 다그치고 재촉하며 아이를 등원시킨 오늘 같은 날, 브런치에 반성하고 고백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