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목욕탕을 갈 때면 만나는 할머니들이 있다. 몇 번 마주치다 보니, 눈인사를 나누었고 젊고 어린 나를 예뻐해 주신다. 그날도 백발의 고운 할머니를 만나 인사를 하니 할머니가 손녀 생각난다며 말을 건네셨다. 대답을 하려는데 목이 메인다. 눈물이 날 것 같다.
2017년 1월의 오전, 디카페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메일을 쓰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린다. '♡mommy♡'다. 근무 중에 웬만해선 전화로 연락하지 않는 엄마인데... 받기도 전에 쿵 내려앉는다.
"아름다움아...."
"응, 엄마?"
"...."
흐느끼는 엄마의 절절한 신음소리가 전화기 넘어 내게 온다.
"할머니...?"
"..,... 응..."
전무님과 팀원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버스 안, 눈물이 뚝뚝 흐른다.
영국에서 지냈던 기간에도, 장기 여행을 떠나거나 신혼여행을 가던 날도, 저 깊은 곳에서 슬며서 피어오르는 불편한 기분으로 포장된 걱정의 불씨를 애써 외면해 왔다. 생각을 해버리거나 입 밖으로 꺼내면 그 두렵고 무서운 일이 진짜 일어날 것 같아서...
아흔이 훌쩍 넘은 할머니의 서거(逝去)는 호상이라 불렸지만, 엄마와 동생에게는 유독 힘든 이별이었다. 아빠와 나는 장례식에 오신 손님들을 맞으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쇠약해진 엄마를 부축하고 너무 많이 울어 웃어도 울고 있는 것 같은 동생의 안위도 틈틈이 살폈다. 장례식장의 옆 방 상주분들도 엄마와 동생을 걱정했다. 저렇게 슬퍼하면 너무 힘들어, 라며.
사십구재(四十九齋), 할머니에게 드릴 꽃을 사려고 나서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동생이 운다. 매일 울다 지쳐 잠이 들어서인지 오늘따라 얼굴이 말이 아닌 동생이, 안쓰러우면서 딱한데 너무 답답했다. 결혼 후에도 할머니 보러 매일 친정에 오고, 임신 중에도 제부와 할머니 최애 간식 삼* 꿀호떡과 약과를 사가지고 오던 착하고 가여운 내 동생. 이제 그만 울고 너 좀 챙겨, 너가 너무 힘들잖아, 따뜻하고 다정한 언니처럼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결국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제발, 그만 좀 울어.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슬퍼하면 할머니가 하늘에서 편안하시겠어? 너처럼 잘했던 손녀가 어딨어? 너처럼 할머니 위했던 사람이 어딨 냐고. 그러니 그만 좀 해.!!" 왜 그랬을까... 하면서도 후회했다.
"언니... 나는 할머니가 엄마와 같은 존재였어. 나한테는 할머니가 엄마랑 똑같다고... 나도 그만 울고 싶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데 어떻게!!!!!!!!!"
비 오는 오후, 우리는 횡단보도에서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몇 주가 지나고, 나는 동생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엄마의 부재... 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이겠지만 아마 나는 천 일을 울어도 또 울고 하루 종일 슬퍼하고 또 평생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런 내가 동생에게 그만 슬퍼하라고, 너와 조카를 챙기라고 말할 자격이, 위로할 자격이 있었을까...
이제는 안다. 차고 넘치게 울고 아파하며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남지 않았다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또 아파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이제 슬퍼하는 걸 멈추고 너의 하루를 살아가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걸.
할머니, 잘 지내고 있지요?
오늘은 마음껏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슬퍼하려고. 비가 와서 그런지 더 보고 싶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잘 있어요. 아빠도 엄마도 둘째 손녀딸도 씩씩하게 하루하루 지내고 있어.
대왕할머니를 못 보고 태어난 둘째 사랑이가 벌써 일곱 살이 되어 내년에는 초등학교에 가, 시간 정말 빠르다.
행복이랑 나랑 대왕할머니 이야기하면 자기도 대왕할머니를 만났다고 이야기하는데... 뱃속에 있을 때 내가 할머니 얘기를 많이 해줘서 그런 것 같아.
할머니... 오늘 목욕탕에서 어떤 할머니와 탕 속에서 이야기를 하다 할머니랑은 목욕탕 한 번을 못 간 게 생각나 슬펐어. 그때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친구들과 나가서 놀기만 한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