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저장공간 부족 알림이 떴다. 97% 사용 중.
캐시(임시파일)와 쿠키, 최근 사용하지 않은 앱들을 삭제했는데도 차이는 미미했다.
갤러리로 가서 삭제할 영상과 사진이 있는지 살펴봤다.
심플 라이프를 지향하게 되면서 물건을 살 때도 전보다 훨씬 신중해졌고, 최근 몇 년간 입지 않은 옷과 가방, 신발들은 과감히 버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사진과 영상을 정리할 때만큼은 여전히 주저하게 된다.
갤러리에는 같은 공간, 같은 피사체를 여러 번 찍은 사진들이 남아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그 어느 하나 똑같은 사진은 없다. 거기에 갤러리 외 다른 저장 공간으로 틈틈이 옮기고 지워왔는데,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그 과정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들이라 더더욱 삭제하기가 쉽지 않다.
천 장 지우기를 목표로 작업을 시작했다.
사진들을 하나씩 확인하다 보니, 그때의 순간이, 그때의 내가 다시 마음에 들어와서 머문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런데도 홍콩에 가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을 찾을 때마다, 즐거운 추억이 차곡차곡 쌓였다.
홍콩의 명물 타이청 베이커리에서 에그타르트를 사 들고 환하게 웃고 있던, 17년 전의 나.
그새 17년이 흘렀다는 사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간다. 그래서 요즘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 순간을 즐기고 충분히 만끽하는 것 역시, 연습이 필요하니까.
시드니에 가기 전까지, 호주는 꼭 가보고 싶은 나라 리스트에는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회로 10일 동안 시드니에 머물게 되었고, 그 이후 시드니는 다시 꼭 가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1월의 시드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품고 있었다.
맑고 투명하게 빛나는 하늘, 부드럽게 내려앉던 따스한 햇살, 딱 좋은 온도, 스쳐 가며 나누던 눈인사와 미소, 밝은 기운이 곳곳에 감돌던 거리, 쾌적한 공기.
그리고 내게 아주 중요한 먹거리들도 내 취향으로 가득했다. 다양한 종류의 오트밀과 그레놀라 바, 새콤하고 달콤한 과일들, 샐러드까지.
아이들, 남편과 함께 한 우리 가족의 첫 콘서트 관람.
토요일 저녁의 홍대는 감성과 낭만,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거기에 소울 풀한 라이브 음악까지, 소중한 순간이 하나 더 쌓였다.
생일이 일주일 정도 차이 나는 후배와 함께 생일 파티를 했다.
밝고 유쾌한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 그 동안의 근황과 육아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게 되어 더 반가웠다.
동생이 선물로 소고기를 건넸는데, 왠지 신선하고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특히, 서현이가 이모가 준 고기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엄마, 입에서 살살 녹아."
예술 작품 같은 플레이팅이라 이 날 사진이 넘쳐난다.
추리고 추려도 20장이 넘게 남았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5장만 남기기로 했다.
친구네 부부의 마음 씀씀이와 센스에 감명받았었는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그 크리스마스 저녁의 분위기가 다시 느껴진다.
"고마웠어."
"엄마, 나 병아리콩으로 만들고 싶은 거 있는데 유튜브 검색해도 돼?"
언니가 요리하고 빵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수현이도 뭔가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응, 필요한 거 있으면 알려줘."
"잠시만. 엄마 아아아~~ 우리 집에 파프리카 가루 있어?"
슬쩍 보니 꽤 진지하다.
작고 귀여운 손으로 파프리카 가루와 소금, 올리브유를 섞어 양념을 만들고, 병아리콩 과자를 구워냈다. 간도 딱 맞고 익힘 정도도 완벽해서 자꾸만 손이 갔다.
요리에 대한 기준이 높은 첫째도 한입 먹어보더니, 어떻게 만들었냐며 궁금해한다.
앞으로 병아리콩 요리는 수현이에게 맡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