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SA 소개하기
해외 논문이나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면, 농업농촌개발과 관련된 연구의 스펙트럼이 정말 폭넓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특히, NGO나 KOICA처럼 국내 국제개발 관련 기관들이 유의 깊게 참고할만 한 것은 참여적 접근법과 농민들의 동기부여 및 의사결정권에 대한 연구들이다. 많은 국제개발NGO들은 몇 년 전부터 주민 조직화, 참여적 기법 등 '주민들의 참여'를 강조하며 개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참여 요소는 기후변화 적응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발도상국 농촌지역의 주민들이 기후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기후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대응할 것인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참여는, 어찌 보면 당연하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 수 있다. (나중에 이 주제로 글을 한번 쓰고 싶은데, 이 당연하고 가장 기본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결국 수많은 사례들과 이 사례들을 분석한 연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개발에서 연구가 중요한 이유.)
관련해서, 흥미로운 연구물이 있어 이 글을 통해 공유해 보려 한다. 해외의 연구자들이 개발한 주민참여형 기후변화적응 툴(Tool)이다. Participatory Integrated Climate Services for Agriculture(PICSA)라는 방법인데, 농민들이 기후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 이를 통해 직접 기후변화로 인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적응방안을 고려하도록 가이드해 주는 메뉴얼이다. University of Reading의 연구자들이 고안하여 메뉴얼화 하였고, 효과에 대한 연구물들도 발간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게, 참 부럽다. 국내에서도 농업농촌개발 관련 연구의 범위가 더더욱 넓어지길 기대하며..)
연구물이라는 표현에 조금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이 방법은 국제개발 실무자라면 한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주민참여 프로세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Participatory Rural Appraisal(PRA), Rural Rapid Appraisal(RRA) 등의 단어로 표현되는 방법들인데, 마을 지도 그리기/계절달력 등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지역사회의 문제를 찾아내고 분석하는 여러 과정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에서 다루는 PICSA 역시 이러한 방법들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차별점이 있다면 기후변화와 관련된 요소들을 가미하여 진행한다는 점이다.
PICSA의 구성요소
PICSA는 크게 12가지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초기 7개의 단계는 농작기 수개월 전, 8~9번째 단계는 농작기 직전, 10~11번재 단계는 농작기에, 마지막 12번째 단계는 작물 수확 이후 시기에 이루어진다.
각 단계별로 간단히 주요 내용들을 살펴보면,
STEP A. 현재 농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 계절 달력(Seasonal Calendar) / 자원지도(Resource Allocation Map) 그리기
- 농업 관련 월별 주요활동 그리기, 지역사회 내 존재하는 자원들(물, 농경지, 기초 인프라 등) 그리기
- 월별 현재 상황과 활용가능한 자원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STEP B. 기후는 변화하고 있는가?
- 과거의 기후정보 데이터(연도별 강우량) 이해하고 해석하기
- 해당지역을 관할하는 기상관측소 (weather station)에서 연도별 강우량 등의 기후정보 데이터를 확보해, 농민들과 공유하기
- 기후정보 그래프를 분석하면서 농민들의 기후에 대한 인식과 실제 과거의 기후 패턴들이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기
- 우기 시작일, 종료일, 건기의 길이, 폭우 시기 등 농업에 참고할 수 있는 기후 정보들을 파악하기
STEP C. 어떤 기회와 위험요인들이 있는가?
- 과거의 기후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가능성 있는 기후의 변화를 예측해 보기
- 가뭄이나 홍수가 오는 주기를 예측하거나, 우기 시작/종료시기 등을 예측하기
STEP D. 농부들은 어떤 옵션들을 가지고 있는가?
- 분석한 기후환경에 적합한 작물, 가축 및 다른 생계수단들을 살펴보기
- 작물별 정보가 담긴 표 만들기 (작물, 품종, 요수량, 수확까지 걸리는 시기, 시즌변화에 다른 영향도 등)
- 작물별 작목법 매트릭스 그리기 (Soil and water conservation practices 등 농법별 장단점 분석하기)
- 축산 옵션 매트릭스 그리기 (가축별 장단점을 분석하기)
- 생계수단 매트릭스 긔기 (생계수단별 장단점 분석하기)
STEP E. 상황별 옵션들
- STEP D에서 분석한 옵션들 중 각자의 상황에 맞는 우선 순위 옵션을 선택하기
STEP F. 다른 옵션들과 비교하기 (예산 수립)
- 선택한 옵션을 실현을 위한 참여적 예산(Participatory Bugets) 수립하기 (활동들, 투입물, 노동력 등)
STEP G. 농부가 결정하기
- 앞서 진행한 계절달력 및 마을자원지도(STEP A), 옵션 리스트(STEP D), 수립된 예산(STEP F)를 활용하여, 본인이 활용한 자원과 작물 등을 기반으로 자원지도와 계절달력을 수정해 보기
STEP H. 당해 기상예보
- STEP H, I 는 농작기 직전에 진행함.
- 현지 기상관측소를 통해 당해 기상예보 정보를 수집하고 농부들에게 전달하기
- 기상예보(예상 강우량 등)를 이해하고, 본인이 선택한 옵션과 계획 리뷰하기
STEP I. 기상예보에 대비한 대응방안 살펴보고 선택하기
- 농민이 선택한 옵션과 계획 등을 검토하고 수정하기 (자원지도, 계절달력, 예산)
STEP J. 단기 기상예보와 경고(Short-term forecast and warnings)
- STEP J, K는 농작기에 진행함,
- 국가 기상청이나 국제 기상관련 기관에서 제공해 주는 단기 기상예보와 경고를 수집하여 제공하기
STEP K. 단기 기상예보와 경고에 대비한 대응방안 살펴보기
- STEP I에서의 자원지도와 계절달력을 기반으로, 본인의 계획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그리고 어떤 대응방안이 있을지 살펴보기
STEP L. 경험을 통한 교훈을 학습하고 과정 개선하기
- STEP L은 수확기가 종료된 후에 진행함.
- PICSA 프로그램의 과정을 돌아보고, 개선을 위한 레슨런을 찾아보기
이처럼, 본 자료는 기후변화 라는 상황 속에서 농민들이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분석하여 스스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참여적인 기법이다. 구체적인 진행절차는 레딩대학교 연구진들이 만들어 놓은 필드메뉴얼을 참고할 수 있다 (https://research.reading.ac.uk/picsa/resources/picsa-manual/). 뿐만 아니라, 이 기법이 현장에서 어떤 효과를 만들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다 (https://research.reading.ac.uk/picsa/research-picsa/).
이 기법이 농민들의 참여와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좋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같은 기법을 쓴다 하더라도 현장의 상황과 맥락 등등 많은 내외부 요인들로 인해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다만 PICSA와 관련된 여러 연구자료들을 보면서 인상깊은 점은, 어쩌면 우리가 좋은 것이라 당연시 하는 것들(대표적으로 주민 참여)조차도 정말로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것들인지 혹은 정말로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농업농촌개발 분야에서 연구되어야 하는 주제들은 무궁무진히 많다. 국제개발 프로젝트들이 단순히 '좋은 일' 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도 '좋은 일'이라고 당연시 하던 것들부터 하나하나 그 효과성과 영향에 대해서 분석하고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국내의 국제개발 수행기관들도 정말 다양하고 많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하나하나가 소중한 연구주제들일 것 같다. 프로젝트의 기획, 수행, 모니터링과 평가.. 이 모든 과정들이 '연구'라는 것과 좀 더 밀접해 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모든 사진 및 자료의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