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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학자 J Oct 27. 2017

떠남과 돌아옴, 그리고

돌아오고 떠나는 이들과 공항에 대하여

맬버른 공항 출국 전광판 [1]

나는 공항만큼 시적인 공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공항이 아니라면 한 곳에 있기 힘든 여러 감정들이, 그것도 아주 짙은 농도로 겹쳐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휴가를 앞두고 두근거려하고, 그 옆의 누군가는 정든 땅을 떠나며 깊은 슬픔을 느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반가운 이와 재회했다는 기쁨을 느낀다. 공항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근무하는 공항 직원들과 승무원들에겐 일터의 고단함과 퇴근의 기쁨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익명의 감정들이 넘실거리는 곳이 바로 공항이다.


그런가 하면 출국 정보를 나타내는 전광판에 적힌 낯선 도시의 이름과 LJ325, KE1238과 같은 항공편명을 보면 그 비행기들이 싣게 될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언젠가 몇 번은 공항에 앉아 입국하는 사람들, 출퇴근하는 승무원들, 전광판에 떠 있는 세계 각지에서 날아오는 서울행 비행기들의 반짝이는 표시들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 감정들의 잔향이 공항에 남아 공항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타인의 수많은 감정들과 수많은 이야기들이 뒤섞인 이곳, 공항이 내게는 이 땅에서 가장 특이한 곳으로 여겨질 것이다 [2]. 내가 좋아하는 밴드 마이앤트메리(My Aunt Mary)의 노래 <공항 가는 길>은 공항에서 피어오르는 단정한 슬픔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아무도 없는 파란 새벽에 / 차가운 바람 스치는 얼굴 / 불안한 마음과 설렘까지 / 포기한 만큼 넌 더 이상 쓰러지지 않도록 / 또 다른 길을 가야겠지만 슬퍼하지는 않기를 / 새로운 하늘 아래 서있을 너 웃을 수 있도록" 공항은 누군가에겐 이별의 장소이며, 누군가에겐 재회의 장소다. 그리고 공항만큼 떠남과 돌아옴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곳은 없다.


마이앤트메리 <공항 가는 길> EBS 스페이스 공감 라이브 공연


떠남과 돌아옴, 그리고

"나의 마음은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는다. 나의 사고가 요구하는 이러한 무한을 과연 무엇이 대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쎄낭꾸르는 "오베르망"에서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이러한 '무한'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음이 명백하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Heimweh)과 먼 곳에 대한 그리움(Fernweh)이라는 것은 낭만주의자들의 갈가리 찢어진 감정의 표현이다. 그들은 인간들의 체온을 못내 아쉬워하고 인간들로부터의 고립에 괴로워하면서도, 동시에 인간들을 기피하고 열심히 멀리 있는 것과 미지의 것을 찾아 헤맸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의 소외를 괴로워하면서도 이러한 소외를 긍정하고 소망했다.
-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권, p.227.

하우저의 말처럼,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동시에 먼 곳을 그리워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그리고 공항은 우리의 그런 모순이 물리적으로 실체화된 곳이다. 공항을 통해 이 땅을 떠나는 이는 여행에 대한 분명한 동기와 열망을 가지고 떠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자신이 뒤에 두고 온 고향의 모든 것들을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워할 것이다. 반면, 공항을 통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는 이는 자신이 뒤에 두고 온 것들을 다시 회복하려는 강한 갈망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지만, 자신이 지나 온 먼 이국 땅의 기억과 생활 또한 그리워할 것이다. 공항은 떠나는 이의 모순과 돌아오는 이의 모순이 중첩되어 있는, 물리적 실체인 동시에 "갈가리 찢어진 감정"을 상징하는 하나의 시적 은유인 것이다.


인간은 갈가리 찢어진 존재이므로 그들에게 허락된 100년 남짓한 시간을 역동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술에 취해 "내 인생을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로도 모자라"라고 외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것이 허세든 아니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참으로 치열하게 산다. 무엇이 인간을 그토록 힘이 넘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일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을 진동의 양 극단으로 삼아 그 사이를 쉴 새 없이 왕복하는 진자처럼, 우리는 두 곳을 향하는 그리움을 원동력 삼아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두 그리움이 향하는 곳들을 떠나고 돌아오는 일 다음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유동하는 삶 뒤에 우리는 어딘가에 정착할 수 있을까? 그 정착은 항구적인 것일까. 떠남과 돌아옴은 <오딧세이아>의 고전적인 테마처럼 더 향상된 나를 찾는 여행일 수도 있고, <일리아드>의 영웅들처럼 그리스를 떠나 트로이에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분노의 포도>에서 그려지는 절망적인 캘리포니아 농촌을 떠도는 여행 끝에 인간이 가진 힘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을 하는 중에 그 여행의 의미를 알 수는 없다. 어찌어찌 여행을 마치고서야, 우리는 그 여행이 남긴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교차로 위에서

드라마 <공항 가는 길> OST인 선우정아의 <City Sunset> [3]

앞서 우리는 공항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상징하는 하나의 시적 은유를 보았다. 그러나 훌륭한 시가 늘 그렇듯, 공항이라는 시는 단 하나로만 해석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김하늘·이상윤 주연의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은 삶에 대한 공항의 은유 중 하나를 아름답고 시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공항은 사랑하는 연인이 만나는 곳, 그리고 평론가 정덕현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공항을 갈 때 느끼는 그 설렘과 낯섦 그리고 여행의 의미만큼 더해지는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감이나 일탈의 느낌에서 오는 살짝 현실을 벗어난 듯한 그 해방감 같은 정서 [4]"로 상징되는 곳이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236cm×172cm (1970)

떠남과 돌아옴이 교차하는 곳, 공항에서 나는 내 삶을 본다. 내게 공항이 은유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다. 공항은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과 재회와 기억과 후회와 기대와 두려움 같은 것들 모두를 은유한다. 공항을 지나는 수많은 별 같은 사람들과 그 공간이 자아내는 수많은 별 같은 은유들로부터 나는 김환기의 그림과 그 그림의 제목이 인용한 김광섭의 시를 떠올린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희망의 문학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공항이라는 삶의 교차로 위에서,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헤어진 이를 그리고, 다가올 이를 그릴 것이다. 나는 헤어진 이가 내게 받은 선물로 기뻐하기를 바라고, 다가올 이가 내게 줄 정으로 서로 따뜻해지기를 바란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 출처: wikipedia

[2] 수많은 감정의 결이 켜켜이 쌓인 것뿐만 아니라, 공항은 물리적으로 특이하기도 하다. 공항 건물의 형태를 보면, 우리는 도시의 어떤 건물도 공항과 닮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건물보다도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지어졌으면서도, 미래적인 외양을 가지고 있는 공항의 건물들은 현실과 미래가 충돌하는 모양이다.

[3] 떠남과 돌아옴과 그 뒤에 남은 것들, 그리고 삶 가운데에서 힘든 이들에게 선우정아의 <City Sunset>은 한 줌의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만 힘든 건 아냐 모두 나름의 아픈 눈물 한숨 애써 숨기며 미소 짓지 저 노을처럼"

[4] 정덕현, "‘공항’ 김하늘·이상윤, 불륜은 불륜인데 왜 이리 공감될까", 엔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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