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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학자 J Oct 22. 2017

먼 곳과 깊은 곳

권소영 작가의 <Landscape>와 고독에 대하여

우리는 종종 떠난다. 1년에 한 번 떠나는 휴가든,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여행이든, 이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떠난 여행이든, 또는 관광 산업이라는 자본의 요구가 비밀스럽게 심어 놓은 마음 때문에 떠난 여행이든, 어쨌든 우리는 종종 떠나고 그 떠남의 끝에 무엇인가를 본다. 물론 우리가 여행의 끝에 보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운 카드 명세서와 다시 꺼내보지 않는 핸드폰 안의 스냅샷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약간의 주의 깊음과 약간의 운이 따른다면, 우리는 떠남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


그것은 고독이다.


여행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과 내 앞에 펼쳐진 풍경뿐이다. 그 여행이 홀로 떠난 여행이었더라면, 가족과 친구는 저 멀리 그들이 속한 땅에 있을 뿐이고, 내가 들을 수 있는 것은 내 목소리뿐이다. 그 여행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끌벅적한 여행이었더라도, 밤의 테라스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혼자다. 결국 여행은 고독해지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알려지지 않고 죽는다"

권소영 <Landscape> (2015)

나는 얼마 전 권소영 작가의 <Landscape>를 구입했다. 이전 작품을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제적인 부담은 있었지만, 속절없이 매료된 작품을 지나치는 것은 그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이 작품은 알프스의 설경을 한지에 묵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빈 공간이다. 하얗게 눈으로 덮인 산마루, 그리고 빈 하늘, 그리고 그 공백을 둘러싼 빽빽한 검은 숲과 회색 바위 산. 이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여행의 고독을 느낀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적막, 그 적막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 먼 곳의 풍경이 환기하는 고독의 감정 속에서 나는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그곳은 바로 나의 자아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알려지지 않고 죽는다"라는 발자끄의 말을 생각해보면 1830년 이래 유럽의 인생관이 얼마나 수미일관하게 전개되어왔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인생관에는 항상 지배적이고 점점 더 깊어지는 한가지 불변의 특징이 있다. 소외와 고독의 의식이 그것이다. 이 의식은 신과 세계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느낌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자기도취의 순간에는-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곧 가장 큰 절망의 순간이기도 한데-초인의 이념으로까지 솟구쳐오르기도 한다. 초인은 산꼭대기의 희박한 공기 속에서 상아탑 속의 유미주의자 못지않게 고독하고 불행한 것이다.
-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 p.249.


발자크가 말하듯,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알려지지 않고 죽는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조금 더 확장하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죽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진짜 '나'일까? 내 욕망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일까?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이 시대의 삶에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발자크의 말이 소외와 고독의 의식을 상징한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도 소외되는 지독히도 고독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여행지의 풍경이 진정으로 보여주려 하는 것은 자연의 광활함이나 이국의 낯선 느낌 같은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목소리만을 듣기 위해, 내 생각만을 하기 위해, 우리는 낯선 곳으로 자신을 보낸다. 이 지점에서 역설적으로 여행의 고독은 우리가 느끼는 지독한 소외와 고독을 해소시켜줄지도 모른다. 여행지의 풍경은 적어도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니까, 절대적인 소외와 고독은 상대적인 소외와 고독으로 내려올 수 있다. 물론 한 번의 여행이 나를 나로부터 외롭지 않게 해주지는 않을 테지만.


작가론: 여행, 그리고 특이점

나는 권소영 작가의 작품들로부터 두 겹의 특이점(singularity)을 본다. 과학자의 언어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특이점이라는 단어가 작가를 잘 표현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분수는 분모가 0이 아닐 때만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분수가 분수인 것은 0이라는 특이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관악기의 연주나 종소리가 아름답게 울리는 것 또한 음파가 악기나 종의 공명(resonance)이라는 특이점을 통해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내가 찾은 첫 번째 특이점은 작가가 젊은 동양화가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한지와 먹을 사용하길 즐긴다. 그러나 권소영 작가는 동양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한다. 동양화의 재료와 어법으로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녀가 그리는 작품의 톤은 전통적 동양화라기보다는 현대 회화와 맞닿아 있다. 어쩌면 권소영 작가의 회화는 동양화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의 삶의 '노멀(normal)'은 서구사회에서 비롯된 보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이 마시는 커피는 뉴욕이나 런던 또는 홍콩이나 도쿄에서 마시는 커피와 다르지 않고, 그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또한 타국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보편성의 시대에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은 한국의 젊은이에게 노멀이라기보다는 '앱노멀(abnormal)'에 가깝다. 한복은 경복궁에 갈 때나 명절에나 어쩌다 한 번씩 입는 옷이고, 국악을 멜론이나 유튜브에서 찾아 듣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은 '노멀'하지 않은 '앱노멀'이라기보다, 한국 젊은이들의 노멀을 정의하는 '특이점'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젊은이들의 보편성은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이점이라는 분모 위에서만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권소영 작가의 회화는 그 특이점을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특이점은 권소영 작가는 여행지의 풍경을 그리길 즐긴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에게 한국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작가가 누리는 현대적 삶 가운데의 특이점이라면, 여행의 순간은 우리 삶 가운데의 특이점일지도 모른다. 분명 우리는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없다. 경제적 부담도, 시간적 부담도, 그리고 우리 삶의 관성도 이겨내야 떠날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을 통한 혼자되기 경험을 통해 우리의 삶을 규정할 수 있다. 낯선 곳의 숲과 집이 작가가 즐겨 그리는 주제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여행지가 우리 삶의 특이점이라는 사실은 더욱 분명하다. 빽빽한 숲 앞에 서면 우리는 절대적인 고독을 느낀다. 또한 길을 헤매다 발견한 낯선 곳의 집의 닫힌 문을 보면 그곳에 내게 속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만이 느껴진다. 낯선 곳의 숲과 집 모두 우리의 소외와 고독을 상징하는 매개인 것이다.


여행으로서의 삶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삶 자체가 여행인지도 모른다 [1]. 세계에 던져진 존재로 인간을 정의하는 실존주의자들의 말도, 신에 의해 인간은 세상에 보내지고 다시 신에게 속한 곳, 즉, 천국으로 돌아간다는 아브라함 계 종교의 믿음도, 우리의 삶이 하나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늘 외롭고 괴로운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낯선 곳에 떨어져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니까.


다만 우리는 바란다. 그 여행을 통해 작고 따뜻한 기념품 하나쯤 가질 수 있기를. 우리의 여행이 늘 어두운 숲과 닫힌 문 앞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기를. 우리의 지독한 소외와 외로움이 여행을 통해 조금은 견딜 만한 것이 되기를. 그런 것들을 바란다.



[1]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오후에 귀를 기울이면 그 울림이 귀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p.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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