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리학자 J Oct 21. 2017

조각난 세대가 가진 한 조각의 역사

<포기한 세대의 미시사>를 열며

2017년 지금, 나는 청춘이다. 나는 88년생이다. 그리고 나는 '나'다.


이 시대에, '청춘'이라는 이름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소환되는 만능열쇠 같은 이름이다. 보수도 진보도, 야당도 여당도, 386세대도 그 위의 세대도, 자신의 주장을 청춘이라는 하늘색 포장지로 포장한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새정치를 위한 청춘이고, 사회 현실을 외면하는 청춘이며,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 보세요."라고 요구받는 청춘이다.


어쩌면, 88년생들은 '88만원 세대'가 될 운명이었다는 것을 그들의 생년(生年)으로부터 암시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일컫기를 'N포 세대'라고 일컫는다 [1]. 포기하고, 포기하고, 또 포기하는 세대. 여건이 안 되므로 타의에 의해 포기하고, 실존하지도 않는 거창한 '꿈'을 쫓으라는 요구에 '꿈' 이외의 것들은 모두 자의에 의해 포기하는 세대.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는, 우리 세대를 대표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나'다. 우리 세대는 갈갈히 찢긴 세대다. 우리들의 선배 세대처럼 사상적 결속력을 지니지도 못 했고, 아버지 세대처럼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공유 희망에 의한 결속력을 얻지도 못 했다. 그런가 하면, 비정규직으로 연구를 하는 나와, 의사로 일하는 내 친구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동창과,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았다는 한다리 건너 누군가의 삶의 양식과 품은 철학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우리는 뭉칠 수 없으며 누군가에 의해 대표될 수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써보려고 한다. 바꿔 말하자면, 나는 우리 세대의 미시사(microhistory)를 기록하려고 하는 것이다. 시대정신이 실종된 시대, 아니, 각자도생만이 시대정신인 시대, 유동하지 않는 자본에 의해 갈갈히 찢긴 시대에 역사(history)는 존재할 수 없고, 수천, 수만 개의 미시사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수많은 미시사의 한 조각을 기록하려 한다.


나는 나의 미시사가 가치 있는 것일지,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버릴 가치 없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더 이상 '청춘'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게 되기 전에 '청춘'의 명패를 목에 걸고 나의 미시사를 글로 남기고 싶을 뿐이다. 아마도 이 글은 몹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글이 될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다른 글처럼 정기적인 게재 주기도 없을 것이고, 하나의 일관적인 주제도 없을 것이다. 그저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것이다.



[1] 그 이름 짓기는 어쩌면 우리 세대가 한 가장 능동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은 어쨌든 386세대의 일원이 지은 이름이었고, 우리 세대는 그 이름보다는 자신들이 지은 'N포 세대'라는 이름을 택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