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최선을 다하면 지치고, 덜하면 불안한 우리에게

우리가 필요한 건 ‘폭발’이 아니라 ‘호흡’이다.

by 너머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이대로 가다간 오래 못 버티겠어…"
"그렇다고 대충 살면 내가 아닌 것 같아."

이런 마음속 대화는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삶이 곧 좋은 삶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감지하기 시작했다.


최선은 곧 ‘최대한’이 아니다.


‘최선’이라는 말은 어쩌면 잘못 이해된 채 우리 안에 각인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최선’을 ‘자신이 가진 에너지, 시간, 정신력을 모두 소진하는 상태’로 생각한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보자면, 진짜 최선은 소모가 아닌 조율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함은 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반복의 습관이다”라고 말했다.

심리학자들도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자기 조절(self-regulation)과 회복력(resilience)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에너지를 단번에 불태우는 사람은 반드시 꺼지게 되어 있다.

중요한 건 지속할 수 있는 힘, 다시 말해 달릴 수 있는 리듬을 찾는 것이다.


딜레마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문제는 사회가 우리에게 ‘늘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는 점이다.
성실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경쟁에서 밀리면 무능하게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한순간도 쉬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종종 번아웃(burnout)이다.

번아웃은 과로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와 에너지 사이의 불균형에서 생기는 심리적 탈진이다.

자신을 모두 소모해도 성취감이 없거나, 그 노력이 반복되면 보상보다는 허무감만 커진다.

그러니 딜레마는 분명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자기혐오가 온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너무 쉽게 지친다.


오래 달리기 위한 최선의 방식


우리가 필요한 건 ‘폭발’이 아니라 ‘호흡’이다.
달리기에서 중요한 건 순간 속도의 최고치가 아니라, 호흡의 지속 가능성이다.
자기 삶의 리듬을 유지하는 방식,

쉬어갈 타이밍을 알아차리는 감각,

한계를 미리 감지하고 조율하는 자기 인식이야말로,

진짜 의미의 최선일 수 있다.

그리고 이건 타협이 아니다.
당신이 오래가고 싶기 때문에,

당신이 끝까지 도달하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달려야만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죄책감과 최선을 다했을 때의 소진 사이에서
우리는 늘 외줄 위를 걷는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야 한다.
지속 가능한 최선이 진짜 최선이다.
그것은 덜 치열한 삶이 아니라, 더 깊이 있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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