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운이 좋은 사람은 나의 오해 속에 존재한다.

운은 ‘과정’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착시다.

by 너머

“그 사람, 참 운이 좋더라.”

우리는 누군가의 성공을 보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어쩌면 무의식 중에 질투와 핑계, 혹은 위로를 섞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운이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운이 좋아 보이는 사람”은 남다른 열정 속에 사는 사람이다.


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겸손하다.


진정 운이 좋은 사람은
대개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말에는 ‘나는 행운의 주인공이었을 뿐이다’는 겸손함이 묻어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노력과 기회 사이의 간극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 겸손은 자신의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나는 열심히 했지만, 나보다 더 열심히 한 사람이 있었다”
“우연히 좋은 타이밍이 왔다”
“내 곁에 좋은 사람이 있었다”


이 말은 운의 존재를 말하는 동시에,
자신의 성취를 독점하지 않으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운이 좋아 보이는 사람은 나의 오해 속에 존재한다.


반면, 운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라는 말은
그 사람의 눈물, 수고, 고통의 시간을 내가 보지 못한 데서 나온다.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아온 노력은
성공의 순간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만 판단한다.


이는 사실,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라기보다 나 자신의 안목에 대한 고백이다.
나의 시야는 그 사람의 고된 과정이 아닌,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보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보이는 사람은 사실
운이 아닌 끊임없는 의지와 반복된 실패 끝에 성공을 만든 사람일 수도 있다.


운은 ‘과정’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착시다.


우리가 누군가를 보며
“운이 좋다”고만 판단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깊이를 외면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말은
결국 나 자신의 한계와 무지의 고백일 수도 있다.


‘운이 좋아 보인다’는 말에는
그 사람의 삶을 충분히 바라보지 않았다는
우리의 무관심과 피상적 판단이 스며들어 있다.


누군가 스스로 “나는 운이 좋았다”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보자.
그 말속에는 겸손이 있고, 성찰이 있고,
‘과정의 고됨’을 통과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감사와 이해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보며
“운이 좋아 보인다”라고 말하고 싶을 땐,
그 판단을 한 발짝 멈추고,
그가 지나온 여정을 조용히 상상해 보자.


그 순간,
운에 대한 인식은 겸손의 눈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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