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적극적인 행동의 결과이다.
공감을 잘하냐는 질문에
쉽게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노력은 하지만 어렵다”라고 답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공감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공감하는 데 서툴다.
왜 공감은 이토록 어려울까?
공감은 내가 ‘하는’ 것인가?
아니면 상대가 ‘공감되었다’고 느끼는 것인가?
내가 충분히 공감했다고 느꼈지만,
상대가 공감받았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다면,
그것은 공감일까?
반대로 나는 공감하지 못했다고 느꼈지만,
상대가 따뜻하게 이해받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공감인가?
이는 공감의 핵심이 나의 감정이 아니라,
상대의 ‘인지된 경험(perceived experience)’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세계를
마치 그 사람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즉, 공감은 내가 느끼는 감정의 공유가 아니라,
타인의 감정 세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태도다.
우리는 흔히 공감을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감은
본능이 아닌 훈련과 의지의 산물이다.
공감은 신경학적, 심리학적으로도 노력의 결과다.
심리학자 폴 블룸(Paul Bloom)은
그의 저서『공감의 함정(Against Empathy)』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공감은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일 때
오히려 편향적이고 비합리적일 수 있다.
진정한 이해는 감정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주의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내가 경험했던 일,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공감이 잘 된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는 공감이 아니라 공통분모의 확인에 더 가깝다.
진정한 공감은,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아픔,
생각해보지 않은 세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열린 마음에서 비롯된다.
공감은 감정의 교류가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 질문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진심에서 비롯된 배려의 행위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어요?”
“당신이 그렇게 느낀 데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요?”
“제가 지금 당신의 감정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은 감정을 끌어내려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건네려는 실천이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나와 너(I and Thou)』에서 말한다.
“진정한 만남은 서로를 객체로 대하지 않고,
온전한 존재로서 ‘너’로 대할 때 일어난다.”
즉, 진짜 공감은 상대를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결론적으로,
공감은 감정의 흐름이나 마음속의
공명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공감은
내가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에서 완성된다.
공감은
수동적인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능동적인 태도와 책임을 요구하는 선택이다.
공감은
상대를 위해 내 마음을 열고,
때로는 내 관점을 내려놓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공감은
타인의 고통 속에 조용히 자리를 펴는 일이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 우리는 질문하고, 경청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