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을 드러내는 용기에 대하여
우리는 종종 질문을 주저합니다.
단순히 궁금해서, 알고 싶어서 물어보고 싶은데
입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심지어 질문을 머릿속에만 담은 채 삼켜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 '질문'은 이토록 어려울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질문은 곧 ‘나는 모른다’는 자기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은 내가 어떤 지점에서 멈춰있다는 신호이고,
내가 전부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자인(自認)입니다.
이는 곧 자기 취약성의 공개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아는 사람’, ‘유능한 사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합니다.
그렇기에
질문은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드러내는
일처럼 느껴져 부끄럽고 두렵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가장 위대한 앎의 시작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의 문답법(엘렌코스, elenchus)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질문을 통해 무지를 인정하고,
그 무지를 드러냄으로써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질문이 두려운 이유는
우리가 질문을 실패의 증거로,
혹은 나약함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문화 속에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아는 체하는 자는 멈춰 있고,
모르는 것을 묻는 자만이 움직인다."
질문은 멈춰 있지 않겠다는 선언이고,
움직이겠다는, 성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심리학에서 ‘자아노출(Self-disclosure)’은
인간관계의 형성과 신뢰의 기반입니다.
자아노출이란, 나의 감정, 생각, 부족함, 두려움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질문은 일종의 자아노출이며,
이는 타인의 판단과 평가에 노출될 수 있기에
심리적으로 불안함을 유발합니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이를 두고
“취약함은 약점이 아니라,
용기의 본질이다”라고 말합니다.
질문은 용기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며,
자기 보호 본능을 잠시 내려놓고
성장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선언입니다.
질문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처럼 느껴지지만,
그 실상은 나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과정입니다.
진짜 질문이란,
"이건 왜 이럴까?"
"나는 이걸 왜 모를까?"
"나의 생각은 왜 여기서 멈추는 걸까?"와 같은
내 안의 빈칸을 스스로 인지하고 채우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그리고 질문은 종종 타인과의 연결을 만들어냅니다.
질문하는 순간, 우리는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로 인해 관계는 단단해지고, 신뢰가 싹틉니다.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
나는 어떤 것을 묻고 싶은가?
그리고 왜 이 질문을 지금까지 하지 못했는가?
이 물음들로부터,
진짜 학습이 시작되고,
진짜 관계가 시작되고,
진짜 나와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질문은 앎이 아니라, 사람이 성장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입니다.
우리는 질문하는 존재로, 인간다움을 회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