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내 안의 직감,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직감은 내 삶의 빅데이터다, 그러나 편향될 수 있다.

by 너머

귀갓길에 아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지금도 선명하다.

아들이 친구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이야기했을 때, 나는 물었다.

“왜 그렇게 판단하는데?”


아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냥 직감이 그래”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다시 질문했다.


“너의 직감은 항상 옳을까? 혹시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 우리는 ‘직감’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직감과 인공지능의 닮은 점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의 직감은 단순히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살아오며 보고 듣고 경험한 무수한 데이터들이 쌓여 나온 결과라고.


마치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를 학습해

수많은 히든 레이어(hidden layer)를 거쳐 답을 내놓는 것처럼,

우리의 직감도 무의식 속에서 빠른 연산을 거쳐 순간적인 판단으로 나타난다.

이 점에서 직감과 인공지능은 매우 닮아 있다.




직감의 오류: 데이터의 부족과 편향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인공지능은 충분히 방대한 데이터와 반복된 검증을 통해 점점 정확해질 수 있다.
반면 사람의 직감은 개인이 살아온 경험이라는 아주 작은 제한된 데이터셋에 불과하다.


만약 그 데이터가 이미 편견으로 물든 것이거나,

왜곡된 경험을 통해 축적된 것이라면, 직감은 틀린 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

(사실, 초기 빅데이터와 AI도 위 같은 문제를 겪었다.)


즉, 직감의 질은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했는지, 얼마나 성찰적으로 배워왔는지에 달려 있다.




철학적·심리학적 성찰


칸트는 인간의 인식이 “경험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듯,

우리의 직감 역시 우리가 살아온 경험의 테두리를 넘지 못한다.
또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은 빠른 직관적 판단(시스템 1)에 의존하기 쉽지만,

그 판단은 때로 치명적인 편향을 낳는다고 경고했다.


아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이 점을 다시금 확인했다.
직감은 때로는 지혜일 수 있지만, 때로는 편견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그렇기에 직감을 절대적인 답으로 두기보다,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되묻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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