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싸구려 식빵을 먹고 세상을 판단했다.

싫어지기에는 아직 값을 덜 치렀다.

by 너머

뉴질랜드에 장기간 거주하게 되었을 때였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식빵 하나를 사러 마트에 갔다.


뉴질랜드는 처음이었고
어떤 식빵이 괜찮은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가장 싸고, 가장 많이 진열되어 있던 식빵을 골랐다.
많이 쌓여 있으니 다들 먹는 빵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식빵은 너무 맛이 없었다.
반 정도 먹고 버렸던 것 같다.


이후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카페에서도, 집에서도, 이런저런 빵을 먹게 됐는데
이상하게도 뉴질랜드의 빵들은 대부분 맛있었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먹은 식빵은 대체 뭐였을까.


다시 마트에 갔을 때
이번에는 조금 비싼 식빵을 집었다.
가격 앞에서 잠깐 망설였지만 그대로 계산했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다.


그때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없다. 싼 음식만 존재할 뿐이다.”


나는 돈을 아끼려 했던 게 아니라
기회비용을 계산하지 않았던 거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싸다’는 이유 하나로 지워버렸다.


그러다 생각이 더 이어졌다.
우리가 싫어하게 된 것들 중에는
사실 본질적으로 나쁜 게 아니라
값을 지불하지 않아서 나쁘게 느껴진 것들이 있는 건 아닐까.


예를 들어,
어떤 여행지가 별로였다고 말할 때.
어떤 식당 음식이 맛없었다고 말할 때.

그 여행에서 가장 싼 숙소를 고르고
그 식당에서 가장 싼 메뉴를 시켰다면,
과연 같은 여행지라도, 같은 식당이라도
비싼 선택을 했을 때도 그렇게 느꼈을까.

여행지가 별로였던 걸까.
음식이 맛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지불한 값만큼의 경험이었을까.


생각은 사람에게까지 이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싫다”고 말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하지만 정말 사람이 싫어진 걸까.
아니면 싸구려 관계를 반복하다 보니
사람이 싫어졌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싸구려 식빵만 먹으면
식빵이 원래 맛없는 음식이라고 믿게 되듯,
값을 들이지 않은 관계만 맺다 보면
사람 자체가 실망스러운 존재처럼 보이게 되는 건 아닐까.

비싼 관계를 가져도 그럴까.
시간을 쓰고, 감정을 쓰고, 책임을 감수하는 관계에서도
사람이 여전히 싫어질까.


요즘 나는
무언가를 싫어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게 정말 나와 맞지 않는 건지,
아니면
내가 지불하지 않은 값의 결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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