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있는 그대로 삶을 바라보다.

쓰러진 나무는 그대로 있어도 된다.

by 너머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거나,

한 주를 시작하거나,

하루의 아침을 맞이할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지고 설렌다.

저녁, 주말, 연말과 같은 시간에도 의미는 있지만, 새로운 시작이 주는 특별한 설렘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새 출발 효과(New Beginning Effect)’라고 부른다.


인간은 새로운 시작 앞에서 기대와 희망을 느끼며, 과거의 실수와 실패를 잠시 잊고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설렘 속에서는 무거움조차 가볍게 느껴지고, 시작 그 자체가 삶의 작은 축제처럼 다가온다.


몇 년 전, 나는 그랜드 캐년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 한쪽 숲은 자연화재로 인해 불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초토화된 땅일 뿐이지만, 관리자는 이렇게 말했다. “불조차 자연의 일부이니 그대로 두었습니다. 인위적으로 진화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인간은 불편하거나 아픈 흔적을 지우려 하지만, 자연은 그 모든 흔적마저 품는다. 숲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존재와 변화, 그리고 회복력의 철학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삶에서 실패와 실수, 부정적인 경험을 억지로 지우려 하지만, 그것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면의 성장은 가능해진다.

지금 내가 사는 오클랜드에서도 매일 아침 조깅길에서 특별한 풍경을 만난다.

몇 년 전 허리케인에 쓰러진 거대한 나무가 있다.

그 거목은 이제 땅에 누워 있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러지고 꺾였음에도, 세월 속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은 모습은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인간은 흔히 좋지 않다고 느끼는 것, 불편한 것을 지우려 하지만, 자연은 그것조차 기록하며 기억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수용적 관찰 경험’이 불안을 줄이고, 내면의 탄력성과 회복력을 높인다고 한다.

우리는 또한 시간과 기억 속에서 성장한다.


실패와 상처를 애써 지우는 대신, 그 경험이 왜 생겼는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이해할 때, 우리는 더 깊고 단단한 자아를 형성한다. 불타버린 숲을 떠올리고, 쓰러진 거목을 바라보며, 나는 삶의 불완전함과 그 안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조금씩 배워간다.


부러지고 흔적이 남은 것, 상처받은 것, 기억되는 것… 그것들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자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존재다.


새로운 시작은 설렘만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설렘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흔적을 인정하고, 현재를 받아들이며,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새벽 공원에서 달리는 내 발걸음, 쓰러진 나무, 타버린 숲, 그리고 그 모든 것 속에 깃든 시간의 흔적. 그것들은 말한다.

“지우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자체로 의미가 된다.”

삶은 그렇게, 완전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이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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