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부지런함, 움직이는 부지런함
어렸을 적에는 생각이 부지런했다.
하지만 그 부지런한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늘 ‘왜?’라는 질문만 반복하며
그 질문 뒤에 행동하지 않는 나를 합리화하곤 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몸이 부지런해졌다.
그러나 그 부지런한 몸은 ‘왜?’라는 질문을 잊은 채,
의미를 묻지 않는 행동으로만 나를 합리화할 때가 많았다.
생각만 부지런하면 현실에 닿지 못하고,
몸만 부지런하면 방향을 잃는다.
결국 삶은 부지런한 생각과 부지런한 몸이 함께할 때
비로소 온전한 균형을 이룬다.
철학적으로 보면,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지만,
성찰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 삶 또한 불완전하다.
반대로 행동만 있고 성찰이 없다면, 그것은 단순한 반복일 뿐이다.
심리학적으로도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행동 이전에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나 메타인지만 있고 실행력이 없다면 무력감에 빠진다.
실행력만 있고 성찰이 없다면 쉽게 번아웃에 도달한다.
따라서,
생각은 몸을 이끌어야 하고
몸은 생각을 증명해야 한다.
그 두 가지 부지런함이 조화를 이룰 때,
삶은 비로소 깊이와 힘을 동시에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