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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Sep 08. 2023

공과대학의 새로운 비전

사용자 중심 디자인

 20년 전, DSLR이 유행하며 큰 주목을 받았었다. 똑딱이 콤팩트 카메라만 사용하던 나는 아빠의 카메라를 쥐고 복잡하고 섬세한 기능 앞에 주눅이 들었었다. 그럼에도 완벽한 사진을 찍어 싸이월드에 올리고 말겠다는 나의 열의는 꺾이지 않았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 물건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기 위해 머리 싸매고 몰두하며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유별난 것도 아니었다. 번화가를 둘러보면 DSLR은 거의 필수품처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나처럼 고가의 장식품에 불과했다. 전문가 못지않게 근사한 사진을 찍을 확률은 거의 우연에 가까울 만큼 드물었다. 인터넷에서 전문가들이 촬영한 사진을 감상하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시간이 더 많았다. 제조사들은 이런 상황을 더욱 부추겼다. 일부 고수들의 사진이 마치 모든 사용자의 결과물인 양 제시하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았다. 나 역시 DSLR 사용이 어렵다고 솔직히 말하면 나의 열등함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 같은 노파심에 카메라 사용을 관두었었다. 실제로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기능에만 중점을 두었을 뿐 사용자 친화성은 기대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 시절 DSLR을 사용하기 어려웠다는 건 주관적인 판단일까?  TV 리모컨에 사용하지도 않는 버튼이 그토록 많은 이유는 뭘까?


 소니의 워크맨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을 MP3가 깨트리고 나왔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을 것만 같았지만, 애플에서 아이팟을 내놓으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혁신의 연속이었다. 따지고 보면 기술적으로 새로울 것은 없었다. MP3에 앞서 CDP, MD를 비롯한 디지털 음원 플레이어가 명백히 존재했었다. 아이팟도 넓은 의미에서는 MP3의 범주로 볼 수 있다.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는 타이포그래피 수업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산업디자인은  기술의 진보를 넘어 사용자 중심의 가치에 핵심에 둔다. 이러한 이유로 공과대학교에서는 산업디자인 전공과목을 교양 수업에 포함시켜 예비 개발자들의 시각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UI/UX 디자인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는 사용자의 반응에 초점을 둔 인터랙션 디자인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사용자가 쓰기 어려운 형태라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이다.


 산업 디자인은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진가를 드러내기도 한다. 자동차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의 배치는 운전자의 편의성만 고려한 것이 아니다. 브레이크의 높낮이는 운전자의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렇지만 안전성에만 무게를 둔다면 운전자의 피로감이 증가할 수 있다. 최적의 위치와 각도를 연구하는 인간공학 분야에서도 산업디자인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학교에서 연례행사로 개최하는 엔지니어링 페어에 참관한 적 있다. 학생들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얼른 찾아갔었다. 교직원으로서 학생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지켜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 최근 학생들의 동향은 단순 기능의 우월성을 넘어 제품이나 서비스의 쾌적함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보다 현실적인 교육 과정을 보고 있으면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공과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은 미래 엔지니어들의 굳건한 기틀이 되어준다. 교직원으로서 학생들의 무한한 도전과 창의력을 바라보며 깊은 감명을 받는다. 사용자 중심의 가치 두고 있는 학생들의 노력은 우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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