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빡독에서 만난 인연들에게.
"좋게 헤어지는 사람이 어딨어. 나쁘니까 헤어진거지."
겉으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척 했지만, 마음은 지긋이 고개를 가로젖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니까. 고로 직접 경험한 것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을 수 밖에 없으니까. 나에게는 '좋은 이별'이 그렇다.
작년 9월부터 시작해서 430여일간 이끌어온 새벽 독서모임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본래의 취지가 스스로를 새벽에 깨워 책상 앞에 앉게 만들기 위함이었고, 이제 그럴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일찍 일어나야할 이유가 없어도 일찍 일어나지는데다, 일찍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과는 운동이고, 일찍 일어나지지 않는 날엔 그냥 자버리고 싶기 때문이다(ㅋ_ㅋ)- 이것이 나에게는 좋은 변화일지 모르나 함께 했던 분들에겐 '책 읽는 새벽'의 터전이나 명분이 사라지는 아쉬운 일일 수도 있었다. 미안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했다. 주최가 없이 굴러가는 모임을 만들고도 싶었지만 그러려면 지금보다 수배로 에너지를 들여 문화를 형성해야했고, 그럴 에너지는 없었다. 이기적 유전자는 '해산' 깃발을 들었다.
좋게 말하면 '정'이 많고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 넓은 이 성격도, 나이가 들고, 체력이 딸리고, 내 앞길 분간하기도 바빠지면서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이해관계도 없고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막상 헤어지려니 참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저 쿨한 '안녕'은 역시 내 스타일이 못된다. 그래서 이렇게 끄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나름의 '좋은 이별'을 만들어 본답시고.
모닝빡독을 시작한 건,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일을 그만둔지 반년쯤 지났을 때였다. 이미 전부터 이런저런 독서모임에 참여하거나 지역독서모임을 만들어보거나 하고 있었지만, 매일 -그것도 새벽에- 진행되는 독서모임은 처음이었다. 바쁜 아침에 맞물려 있는 시간대라 모닝빡독은 6시 땡하면 시작해 7시 땡하면 간단한 인사로 헤어지는 쿨한 모임이 되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지만 같은 시간대에 모여 책을 읽는다는 묘한 연대감이 매력적이었다.
채팅방에서는 별스런 이야기들이 다 오갔다. 누군가 던진 고민에 여러명이 돌아가며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기도 했고, 특정 주제에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소모임을 만들어 대화의 깊이를 더하기도 했다. 내가 사는 지역까지 찾아오셔서 좋은 기운을 나눠주고 가신 분도 있었다. 많은 분들이 (좋은 모임을 만들어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런 작은 말들이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박수도 마주칠 손뼉이 있어야 소리가 나는 법. 매일 새벽 줌으로 만나 책을 읽는다는 이 엉뚱한 아이디어에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너도나도 좋은 기운과 격려를 더해주시려는 모습에 정말 감사했다. 덕분에 낯선 사람을 믿는 용기도 훌쩍 큰 것 같다. 덕분에 언제 어디서라도 필요할땐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임을 만들자는 생각을 당연히도 품고 있는 사람이 됐다.
이제는 그 좋은 둥지를 내 손으로 허물게 됐지만, 이곳에서 받은 좋은 기운, 좋은 인연들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음을 안다. 직접 보고 들을 순 없을지 몰라도 참여자 한사람 한사람이 속한 세상은 여전히 밝고 따듯할거다. 그리고 그 따듯함은 돌고 돌아 언젠가 느꼈던 익숙한 봄바람처럼 또 코끝을 간질일테지. 그러니 하나도 아쉽지 않다. 굿바이 에브리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