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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헷 Feb 02. 2021

평가를 앞둔 멘탈관리, 근데 이제 싱어게인을 곁들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도 꼭 챙겨봐야 하는 심야 프로그램이 생겼다. 무명가수, 세월 속에 잊힌 뮤지션, 재야의 고수들이 경연을 펼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맑은 정신으로 재방송을 보기 위해 유료 시청권을 결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은 결승에 가까워질수록 참가자의 매력이 묻히는 느낌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참가자들이 자신의 끼와 색을 찾아나가는 모습이 무척 흥미롭다. 몰입력이 상당한 무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실력을 갖춘 참가자들이 간절함까지 버무려 준비한 완성도 높은 무대를 오디션이라는 명분으로 한 번에 관람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질 정도다.



 음악에 흠뻑 빠져 즐기다가 평가 시간이 돌아오면 누군가는 탈락해야 한다는 현실에 심사위원도 나도 아연실색하고 만다. 최종 결승에 진출할 여섯 명을 뽑는 이번 오디션도 그러했다. TOP10으로 뽑힌 10명의 참가자는 언젠가는 한 번씩 내 눈물을 고이게 만든, 이미 애정하게 된 가수들이니까. 누가 떨어질까, 누가 붙을까, 당사자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손에 땀을 쥐고 무대를 지켜본다.


 카메라는 무대가 시작되는 찰나의 참가자 구석구석을 섬세하게도 담아낸다.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 떨리는 손끝, 비장한 눈빛. 방구석 나에게도 긴장감물든다. 얼마나 떨릴까. 혼신을 다해 준비했을 텐데.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나를,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내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다. 걸어온 길을 입증하는 시간. 할 수 있을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내 자리는 어디일까. 나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참가자 내면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해왔을 터.


 그 고민이, 떨림이, 긴장감이, 화면을 뚫고 나를 덮친다. 어, 이거. 뭔가 익숙한 느낌인데. 상당히 공감 가는 감정인데....?


 아.

 그렇다.


 암을 생각할 때의 감정이다. 자연치유를 결정할 때의 느낌이다. CT촬영실 앞 복도에서의 기분이다.

 

 내 몸의 자연회복력을 믿고, 수십 권의 책을 통해 공부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왔지만 몸이 주는 여러가지 신호들은 때때로 나를 심판대 위로 끌로 간다. 그 신호는 갑자기 엄습하는 피로감이나 입  염증일 때도 있고 예고 없이 속옷을 적시는 붉은 핏물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괜히 엄숙해져서는 티비 속 가수의 긴장이 역력한 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내 선택이 괜찮은 걸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오디션을 앞둔 가수에게 이입한 감정이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흘러갈 만큼, 다음 달 잡힌 검진을 나는 꽤 신경 쓰고 있었나 보다. 설사 중간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나아갈 것을 다짐했으면서도 '평가는 두렵다'. 검사 결과가 어떻든 암이 있다는 사실,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당장 죽지 않고, 영원히 살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렇. 그럼에도 두렵다.


 가능한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이번 무대에 대한 평가가 저 가수의 음악 전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듯, 나도 고군분투한 날들과 성장에 대한 평가가 CT결과지 하나로 판가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속이 복잡한 사이 어느새 특히나 응원하는 가수의 차례다. '제발, 즐겨.' 나도 모르게 보낸 염원에서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도 힌트를 얻는다.


'떨어지든 말든 평가 따위 잊고, 신나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줘. 넌 이미 빛나. 증명은 필요 없으니, 그냥, 무대를 즐겨.'


 00호 가수에게 전하는 이 말을 스스로에게 못 할 것 있나.

 암이 있든 없든 내가 선택한 치료법이 먹히든 안 먹히든 삶을 즐길 때, 삶의 모든 과정을 내가 주인공인 무대처럼 누빌 때, 위너의 벅차오름은 언제라도 내편이다. 그 행복함을 얼마나 자주, 깊이 만끽하느냐가 성공한 인생의 척도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두려움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다.


게다가 그렇게 즐긴 놈들은 잘만 합격하더라. 아니면 또  어떤가. 나도 나에게 주어진 무대를 즐기련다.



Shine, dream, smile.
Let us light up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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