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받고 싶은 정서적 지지가 충분하지 않아서 괴로웠을때,
어쩌면 아빠는 본인이 그런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625후 전후 3-4년 즈음에 청양의 산골짜리 외딴 집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아빠는 폭삭 주저앉은 경상도 사업가가 낯선 지역에서 두번째 아내에게 얻은 첫째 아들이었다. 정황상 장남의 무게가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시대와 집안의 요구에 따라 아빠는 어렸을 적부터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거친 노동환경에 내몰려야 했다. 아빠가 이따금 해주는 이야기로 미루어보건데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그렇게 자상한 애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에 더해 할아버지가 반대하는 기독교인이 된 아빠는 서울에 상경해 목사가 되기위한 교육을 받고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할아버지에게 정서적 지지를 포함하여 그 어떤 물질적, 정신적 지지도 받을 수 없었다. 날아오는 목침을 피했으면 피했지.
아빠는 이런 유년-청년 시절을 보낸 사람 치고 무척 자상하고 섬세한 사람이었고, 아빠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자식들이 인정하는 바이지만, 받아본 적 없는 '정서적 지지'라는 측면에서는 서투른 정도가 아니라 암담하기까지 했다. 그런 아빠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쉬운 방법이 '한번도 그런 지지를 받아본 적 없는 청양의 산골짜기 소년'을 떠올려보는 것였다. 고무신 살 돈도 없어서 짚신을 신고 학교에 가야했던 소년, 짚신이 부끄러워서 차라리 맨발로 비포장 도로를 몇 시간 걸어 학교에 다녀야했던 소년. 그런 이야기를 누구에게 털어놓으며 격려를 받을 수도 없고, 그럴 수 있다는 ㅅ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소년을 떠올리면 사랑을 달라고 땡깡부리는 내가 겸연쩍었다.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 소년을 만날 수 있다면 만나고 싶어졌다. 더러워진 발을 따듯한 물에 씻기고 가만히 안아주고 싶었다. 다 커버린 아빠에게 그럴 순 없었다. 어련히 잘 스스로 안아주기를 바랐다.
읍- 읍- 읍- 읍-
저녁을 먹으며 엄마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발음을 연습하고 있나보다 했다. 그 소리의 크기와 주기가 요즘 늦깍이 영어 공부에 빠진 엄마가 어플로 발음 연습을 할때와 비슷했기에 엄마와 나 모두 들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10분이나 신나게 떠들고 있을땐가... 갑자기 그 소리가 뭔가 급박한 느낌이 들정도로 크고 잦아졌다. 마치 드라마에서 납치를 당해 입이 청테이프로 봉해진 사람이 복부에 구타를 받을 때 낼 법한 신음소리와 흡사헀다.
깜짝 놀라 안방으로 간 나와 엄마는 침대에 엎드려누워 이상한 신음을 불규칙으로 내뱉고 있는 아빠를 발견했다. 엄마는 많이 놀라 혼비해보였고 나는 그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더 침착해졌다. 아빠의 신음소리는 고통스러워도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내는 소리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고통받는 동물이 낼법한 소리였다. 사람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동물적 육감이 있는 존재에게 위험을 인지시키는 소리.
아빠가 알아들을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19를 부를까?" 하고 물었다. 아빠가 머리 옆에 있던 손가락을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들린것 같고,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확신이 없어 한번 더 물었다. "응급차 안불러도 돼?" 또 똑같이 손가락이 흔들렸고, 신음소리가 미묘하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띄었다. 내 말이 들리는게 확실하고, 이성적 판단력도 있는데, 의사를 표현하기가 힘든 상황인 것 같았다.
"아빠, 내 말 들려? 내가 뭐 해줬으면 하는게 있어?" 또 손가락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아니'라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해줄까?" 아까보다는 좀 더 긴 시간의 텀 이후에 아빠 허리쪽에 있던 손이 등을 살짝 가르켜다가 떨어졌다. "등 만져줄까?" 엄마가 물었다. 미묘하게 고개가 끄덕이는 것 같았다. 엄마가 아빠 옆에 앉아 등허리를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지 아빠 표정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몸서리를 치는 듯도 했다. 엄마는 아픈 사람을 '어루만지는' 손놀림이 능숙하지 못한 사람인 걸 온가족이 안다(ㅜㅜㅋ). 내가 엄마 대신 아빠 옆에 앉아 등을 쓸어내렸다.
이상하리만치 마른 몸, 숫자도 셀수 있을만큼 도드라진 갈비뼈가 등에서도 다 만져졌다. 무슨 탈이나도 이상하지 않고 죽는다 해도 납득이 갈만한 '약한' 몸이었다. 온기가 필요해보였다. 사람의 따듯한 손길이 필요해보였다. 만지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이런게 육감일까.
거기에 누워있는 건 산골짜기 소년이었다. 드디어 만났구나.
엄마도 아빠도 몰랐겠지만 그 순간 내가 등을 쓸어 준 건 아빠가 아니라 산골짜기 소년이었다. 버거운 인생의 부담 앞에 지쳐 쓰러진. 괜찮다는 메세지가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된다는 메세지를 주고 싶었다. 얼른 낫으라는 손길이 아니라 아파도 된다는, 쓰러져도 된다는, 심지어 다 그만두고 떠나도 괜찮다는, 수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손길이기를 바랬다.
아마도, 인생의 어떤 순간에 내가 간절히 받고 싶은 메세지였을 것이다.
아빠의 신음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호흡도 편안해보였다. 모든 정황이 응급상황을 비껴지나갔음을 알렸다. 아빠를 쓰다듬는 시간 동안 옆에 있던 엄마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빠가 점차 그 이야기들에 이성적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빠 이제 정신이 들어?" '(끄덕)' 119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되자 발동했던 '비상적인 침착함'이 '일상적인 침착함'으로 돌아왔다. 파충류 뇌가 꺼졌다. 그 사이 아빠를 만지는 손길은 주열기로 바뀌어 있었고, 내가 주열을 쉬는 동안 아빠가 스스로의 손으로 주열기를 잡아 대고 싶은 곳에 가져가 대었다. 휴우. 됐다.
아빠는 저녁에 먹은 것이 탈이 났던 모양이다. 홍어를 드셨는데 체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성분이 아빠가 감당하지 못할만큼 들어와서 부담을 준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쉬는 중에 점차 정신이 아득해져서 혼절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누가 와서 등을 좀 만져주었으면 했단다. 한 두어시간의 헤프닝 이후 아빠는 잘 회복되었다.
혹자는 그런 상황이면 119를 불러 병원에 데려가야 했던 것 아니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글쎄, 나는 아빠가 그 상황에서 응급차를 탔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육체든 정신이든 이승에서 멀어져가던 아빠를 다시 불러온건 나는 '다 괜찮다'는 그 손길이었다고 본다. 그때 발동한 그 손길은 내가 낸 것이 아니라, 아빠의 필요가 세상에 불러일으킨 것이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