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

스물한 번째 지난주




귤과 탱자


국가를 운영하는 이념이 죄다 서양에서 빌려온 것이라, 곳곳에서는 아직도 어색하다는 푸념이 나오는 모양이다. 마치 귤이 회수(淮水)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하듯, 어떤 곳에서의 개념은 다른 곳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채로 통용되고는 한다. 특히 지난주에는 언론이 흔히 주창하는 ‘언론의 자유’가 이 땅에서 어떤 의미로 융통되는지를 되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자유의 힘


잊고 있었다. 정치의 극적인 장면 중에서도 높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순간이 연설이라는 것을……. 이를 불현듯 상기시킨 것은 대선을 앞둔 미국 민주당의 전당대회였다. 연설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가 연일 등장하는 가운데, 버니 샌더스 같은 정치인은 물론이거니와 카림 압둘 자바, 메릴 스트립, 클로이 모레츠와 같은 대중적인 스타에, 미셸 오바마까지 감동적인 연설을 전하며, 트럼프의 상승세로 주춤하는 듯 보였던 민주당의 저력을 재확인시켰다. 그런데 비단 빛나던 것이 연설만은 아니었다. 건강한 정치적 생동감이 대회장을 줄곧 휩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음이다. 바로 그 기저의 분위기를 가능하게 한 것은 분명 ‘자유(自由)’의 힘이었다. 특정 정치인이 지닌 연설 능력의 능숙함 정도를 떠나, 인종과 성별을 떠나 누구든 자신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행하는 축제의 장은 부러움을 넘어선 경외감을 선사했다.


takeaways-obama-vouches-for-clinton-kaine-steps-up.jpg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3일차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판단


지난주, 판단에 종착지 헌법재판소가 또 한 번 결정을 내렸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의 4개 심판 대상 조항 모두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시행령 등이 확정되면 9월 28일부터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법이 제안하는 금액의 정도와 무관하게,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던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직접 대상자의 숫자만 4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며, 이에 연동하여 발생할 국내 경제의 변동은 어떤 식으로든 발현되리라는 것이 일반적 예측이다. 비록 지금 시점에서 그 누구도 선뜻 이 법이 실제로 우리 경제에 어떤 작용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섣불리 말할 수는 없겠으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생활상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단이다. 자세를 고쳐 앉아야 하는 사람들이 뒤척이고 있다.




누가 제 발 저리나?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때로부터 긴 시간을 지나왔다. 하지만, 막연하게 표류한 것은 아니었다. 최초 제안한 사항은 구멍을 메우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루어졌다. 법리에 근거하여 위헌의 소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대한변호사협회」가 제기한 위헌확인 헌법소원도 결론적으로는 ‘더는 그 누구도 다른 소리 할 수 없는’ 상황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법리적 판단을 물은 주체 중 한 곳이 「한국기자협회」라는 사실에 느꼈던 의아함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의아함은 28일 「한국기자협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발표한 다음의 성명을 통해 탄식으로 변이 되어 새어 나왔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이 최종 포함됨으로써 앞으로 취재 현장은 물론 언론계 전반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해졌다. 3만 원이니, 5만 원이니 하는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취재 활동의 제약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천 번 만 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3만 원이니, 5만 원이니 하는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런데,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부분에서 한동안 멈추어버린 시선을 떼어내기는 힘들다. 지금까지 행해진 취재활동에서의 ‘정상적’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정녕 여태껏 취재함에 있어 ‘끊임없는 자기검열’이 없었다는 것인가? 물론 이 땅의 모든 언론인이 취재에 있어 치열한 ‘자기검열’을 하는지에 대한 최종 판단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나, 스스로의 가치지향으로서도 의미를 지닐만한 대목을 기자협회가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태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설령 관련된 모든 사항과는 무관하게, 이토록 반론이 쉬운 문장을 쓰면서, 가상의 질문과 대답조차 해보질 않았다는 것인가?




자유의 의미


다시 대선을 앞둔 미국 민주당의 전당대회장으로 돌아간다. 자유의 기운으로 넘실거리는 대회장의 분위기는 당연히 하루아침의 산물이 아니다. 비록 긴 역사는 아니지만, 유럽의 실험을 통해 학습효과를 거친 이후, 건국이라는 설계도를 마련한 미국은 명징한 건국이념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중 전통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는 재산권의 보장을 근간으로,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만 존재하며, 따라서 국가가 국민의 권리에 부당한 침해를 가할 때 국민은 국가에 저항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는 개인의 존엄에 대한 존중을 그 기저로 삼는다. 곧 인권이다. ¹ 인간에 대한 예의가 보장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간의 자유가 최근 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그 위용을 슬쩍 드러내었을 뿐이다. 그런데 깊이 따질 것도 없이, ‘자유’라는 말은 우리에게도 있다.


서울시립대 경제학부의 이근식 명예교수에 따르면, ‘자유(自由)’는 그 표현이 사용되는 용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해석될 소지가 있으며, 이 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① 행동이나 생각을 제약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음 [Freedom]
: 출입의 자유, 자유로운 영혼, 자유롭게 날다 등

② 나쁜 것이나 싫은 것에서 벗어남
: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무지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

③ 개인의 당연한 사회적 권리(기본 인권)로서의 자유[Liberty]
: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재산 처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지 선택의 자유 등 ²


계속해서 이 교수의 견해를 빌리자면, 앞서 미국의 경우를 들어 언급한 ‘자유주의’에서의 ‘자유’는 ③번에 가깝다. 특히 ③번은 서양에서 근대 종교개혁과 시민혁명 과정에서 등장한 근대적 개념으로 미국의 독립과 건국에 지대한 이념적 영향을 행사했다. 반면,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자유의 개념은 넘겨받은 것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전해받은 ‘자유’는 우리의 국가이념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개념어로 자리 잡았다. 이를테면 2007년 7월부로 새롭게 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 중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좋은 실체적 증거이다. 그런데 마침, 이 ‘자유’라는 표현은 「한국기자협회」의 성명에서도 등장한다.




우리의 언론에 자유를 묻다


"한국기자협회는 김영란법 시행 여부를 떠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의지에 따라 기자사회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취재윤리를 강화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할 것이다. 또한, 언론의 자유와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제약하고 언론인을 위축시키려는 권력의 검은 의도에 굴하지 않고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묵묵히 제 길을 갈 것이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언론인으로서, 밥값과 선물값을 제한하는 일이 언론의 자유에 심대한 침해를 가져오리라는 일관된 주장에 등장하는 ‘자유’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혹시 그간 누려온 ‘언론의 자유’가 얻어먹을 수 있는 자유, 무상으로 해외에 갈 수 있는 자유, 골프를 마음껏 칠 수 있는 자유의 바로 그 ‘자유’였나? 그렇다면 이는 개인의 사회적 권리(기본 인권)로서의 자유(Liberty)와는 명백히 거리가 있다. 그것은 그저 ‘행동이나 생각을 제약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의 자유(Freedom)’의 차원에 가깝지 않을까? 「한국기자협회」가 이야기하는 ‘언론의 자유’에서의 그 ‘자유’가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의미였던가? 맞거나, 괜찮은가?


20160725002822_0.jpg ** (해당 이미지는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진정한 자유


굳이 제약을 받지 않는 차원의 자유를 추구하겠다면, 더 본질적인 자유의 방식을 제안한다. 바로 직접 매식(買食)하여 의존을 탈피함으로써 얻게 되는 자유이다. 자신의 요식(料食)을 제힘으로 이룬다는 기쁨과 타인에게 전가될 부담을 같이 삼킴으로써, 애써 자유를 뱉어내야 했던 시간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다. 구속과 눈치라는 후식(後食)도 먹지 않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언론인이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 언론의 자유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 먹어도 괜찮다. 설령 그 시작은 어색할지라도 젖을 떼는 아기처럼, 자신의 성장을 발견하는 일일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김영란법은 우리의 삶 속에 남아 있는 어떤 전근대성이 제도화를 거치지 않고서는 개선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직이 못하는 것을 제도는 한다. 아니, 해야 한다. 이로써 지나친 상호의존이라는 병폐를 끊어내고, 진정한 자유가 우리의 언론에 뿌리내리기를 바라며, 또 지켜볼 것이다.


france-journalism-nieman-reports-tony-millionaire-credit.jpg ***



참고

¹

- 미국의 정치 문명, 권용립 지음, 삼인, 2003년 1월


²

- 프레시안, 이근식 명예교수, 2011년 4월 25일,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 <3> “자유란 무엇인가?” 中

- pressian.com/news/article.html?no=3858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및 ***

- Illustration by Tony Millionaire

- niemanlab.org/2014/09/from-nieman-reports-digital-is-bringing-un-grand-derangement-to -french-news-institutions/


*

- businessinsider, Matthew Daly Associated Press, 2016년 7월 28일 자, “Takeaways: Obama vouches for Clinton, Kaine steps up”
- businessinsider.com/ap-takeaways-obama-vouches-for-clinton-kaine-steps-up-2016-7


**

- 세계일보, 박현준 기자, 2016년 7월 25일 자, “'김영란법 위헌 여부' 헌재 판단 가를 4가지 쟁점은”

- segye.com/content/html/2016/07/25/201607250031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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