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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Nov 13. 2016

우리가 우리의 언덕이 되어

서른여섯 번째 지난주




거대한 언덕


 사람인(人)이라는 한자의 생김은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사는 존재’라는 유래를 지닌다고 배웠다. 물론 ‘설(說)’의 수준에 불과한 것이기는 하나, ‘사회’라는 차원까지 그 폭을 넓혀 생각해보면,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겠다 싶다. 더구나 이것은 기대지 않으면 살아가기 용이치 않으리라는, 확대해석의 여지도 남긴다. 그런데 이 확대된 해석을 조금만 비틀어보면, ‘의지’와 ‘의존’의 거리가 매우 가까움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의존’으로 가까워질수록 그 어떤 결정도 타인의 존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를 본다. 그것은 합리적이다. 모든 책임이 곧 나만의 몫은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립과 주체적 삶의 중요성은 일단 차치하고, 어떤 일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기대고, 또 누군가는 그 누군가의 기댈 언덕이 되면 훨씬 수월하겠다. 이제 일이 되려나 싶었다. 바로 어제 거대한 언덕을 본 탓이다.









낯선 자를 상대하기 위하여


 굉장히 낯선 상대다. 언제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이 자는 ‘이 정도 하면, 이렇게 반응하겠지’라는 통념의 바깥에 있다. 그러자 우리 진영에서 웅성거림이 들린다.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 “평화적인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와 같은 논쟁으로 불이 옮겨 붙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것은 괴이한 상대의 의도하지도 않았을 전략에 말려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으레 그러하듯이, 어떤 일을 도모하고자 할 때 더 적절한 방안을 찾고자 함일뿐인데 말이다.


* 현 시국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전하는 뉴스화면


 지금은 그저 꾸준히 한목소리를 내며 밀어붙여야 한다. 그리하여 그 누구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저자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언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기전이 아니다. 하지만 그 효과의 폭은 넓고, 지반은 단단할 것이다. 이제는 그자가 그토록 좋아하는 해외순방을 나가더라도, 그 어떠한 해외 주요 인사도 그자를 이전의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그자를 돕던 이들의 마음속에 번뇌의 파장을 크게 할 수도 있다. 진실을 입에 머금고 있던 사람들이 증언의 결정을 하는 일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작동이 무척 사소한 것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11월 12일의 외침 이후 정치권에서 ‘탄핵’의 목소리가 더 강해지는 것은 정치권에서도 ‘이 거대한 사람의 언덕에 기댈 수 있겠구나’라는 판단이 섰기에 가능한 일일 지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의 언덕이 되는 것이다.


 반복하여 주지하지만, 전에 없는 낯선 상대이다.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조차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테두리의 너머에 있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예정과 다른 공주놀이의 마감 시기를 받아들일 수 없어함이라든가……. 이 정도의 기이한 자를 상대함에 통상적인 전략이니 전술은 허망한 결말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저 이렇게 조금씩 압박하며, 그자와 주변의 무리가 설 자리를 좁혀나가는 수밖에 없다. 누구든 이 언덕에 기대어 저들에게 균열을 일으킬 수 있도록, 우리는 모이고 또 모여 더 큰 언덕을 쌓을 일이다. 우리는 광화문으로 간다.


** 2016년 민중총궐기 대규모 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







자부심이 자괴감을 이긴다.


 사람들이 모인 풍경은 무섭다. 행진으로는 처음 가는 길을 걸으며 더욱 그러하였다. 그리고 공고한 벽 앞에서 대답 없는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때는 분노가 일었다. 그러다가 웃음 짓게 하고, 눈물 나게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농민과 세월호 유가족과 장애인과 학생들……. 우리는 구획을 나눌 것도 없이 서로 뒤엉켜 한목소리를 내었다. ‘산 자여 따르라’고 외치지 않아도, 이 거대한 모순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촛불을 밝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에 함께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보아라! 그자가 자괴감을 느낄 때, 우리는 자부심을 느낀다. 하찮은 자괴감을 위대한 자부심이 이긴다. 이렇게 우리가 이긴다.


*** 고래의 형상을 한 정어리 떼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연합뉴스, 서울 사진 공동취재단, 2016년 11월 12일 자, “수십만 촛불들”

 - yonhapnews.co.kr/photos/1990000000.html?cid=PYH20161112065800013&from=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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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조선, 2016년 11월 12일 자, <정치 옥타곤> 화면 캡처

 - theqoo.net/index.php?mid=square&filter_mode=normal&document_srl=355530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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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뉴스, 서울 사진 공동취재단, 2016년 11월 12일 자, “수십만 촛불들”

 - yonhapnews.co.kr/photos/1990000000.html?cid=PYH20161112065800013&from=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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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의 형상을 한 정어리 떼

 -inspirefusion.com/sardines-form-giant-dolphin-sh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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