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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Nov 20. 2016

끝까지 간다.

서른일곱 번째 지난주




광장에 서면


 광장에 서면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외치지만, 하나의 소리를 낸다. 각자의 마음으로 반(半) 족적만 더 들어가도 지닌 생각들과 대처라는 것이 다를 터인데, 당장 눈앞의 불 꺼진 청와대를 향한 구호는 일관되고, 또 단호하다. 그렇다. 질 것 같지 않다는 기운은 우주가 아닌 광장에서 온다. 그리고 광장의 밖에서는 하루하루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언제는 하루아침에 끝이 날 것 같다가도, 또 언제는 막연해진다. 이럴 때는 특검의 일수(日數) 같은 것을 세지 않더라도, 그저 길게 가겠거니 생각하면 편하다. 장기전이다. 겨울을 맞이하듯, 장기전을 대비한 채비를 해본다.









1. 추워질 날씨


 4·19, 5·18, 6·10


 이 익숙한 숫자들 간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이 땅에서 벌어진 민주화의 시간을 적시한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그 시기가 주로 봄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의 사항에 주목해본다. 항거의 공간으로서의 광장은 넓은 평지와 사방으로 이어진 연결망을 부여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늘과 대지 간에 그 어떠한 경계가 없는 탓으로, 날씨의 영향을 온전히 전달한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놀라우리만치 주말마다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어느덧 11월도 그 끝으로 행하고 있다. 그런데 춥다고 멈출 수 있는 싸움도 아니다. 그리고 물러설 수도 없다. 여기서 밀리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잘못을 해도 잘 버티면 된다고 알려줄 수는 없지 않겠나……. 어떤 날은 비가 오고, 또 어떤 날은 눈이 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모이면 분명히 더 따뜻하다.





2. 지치는 마음


 지난주, 어느 뉴스 꼭지에서는 TV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극 중 이름이 전파를 탔다. 사람들은 웃었다. 항간에는 나이 든 여성이 젊고 아리따운 여배우의 이름을 빌려 쓴 것에 대한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의 맥락에서 비롯된 비웃음이 아니냐는 지적을 했다. 지적 자체에는 동의하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온 발화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필자가 보기에 그 웃음은 ‘기가 차서’였다. 하다 하다 별짓도 다 하는구나 싶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안에 대한 우리 감정의 추이가 다 그렇다. 기가 차서 웃다 보면, 이 땅의 한 사람인 것조차 너무 속이 상하고, 부끄럽다가도 또 화가 나다가는 쓴웃음이 나는 나날이 룰렛 게임의 그것 마냥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장기전의 걸림돌이 있다.


 감정의 격변이 며칠이 아닌, 몇 주째 이어지고 있다. 이 또한 우리의 하나 됨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개개인이 느낄 심리적 피로가 너무 크다. 막장 드라마는 재미로만 본다지만, 이것은 곧 우리의 삶과 연결되는 사안이다. 뉴스가 눈과 귀가 아닌, 심장으로 울컥 쏟아지는 긴 시절을 버텨내야 하는 또 하나의 숙제가 던져진 셈이다. 사태의 엄중함을 떠나, 저마다의 심연에 가해질 외상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편을 마련할 필요가 있겠다. 이를테면, 남의 일이 아님에도 마치 남의 일인 양 객관화하여 사태를 바라본다든가 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런데 어디 그것이 말처럼 쉬우랴……. 치욕스러운 존재를 그 자리에 둘 수 없다는 절박함 아래, 쌓여만 가는 마음의 상흔이라는 이 시절의 미필적 고의는 어찌할 것인가? 대체, 이 시절이 우리를 황폐하게 한 대가는 어찌 물으면 좋단 말인가?


* 11월 19일 개재된 청와대의 입장





3. 무반응


 기운 빠질 때가 있다. 바로 벽을 보고 외치는 기분이 들 때이다. 4차를 넘어 5차로 예고된 우리의 외침에도 청와대와 대통령은 답이 없거나, 그때그때 빠져나갈 구실만 늘어놓는다. 이렇게 되면 공허함이 밀려온다. 상대가 다른 언어권의 존재도 아니고, 우리의 외침이 난해한 것도 아닌데, 반응은 참으로 허무하다. 이런 상황마저 장기전의 양상 속에 이어지면, 이는 자칫 우리의 분노를 자극할 수도 있다. 우리가 경찰 차 벽 너머에서 외치니까 들리지 않는가 싶어, 그것을 넘어 외치고도 싶어 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두 장의 사진만으로 극단적인 폭력성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흔히 그러하듯 북쪽의 존재가 소환되어 연결시키는 지경까지 이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는 ‘평화집회’를 하나의 전략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전체 판을 주도하는 것이 우리라는 생각이 공유되어야 한다. 이 흐름에서의 ‘평화집회’는 전략이기 이전에, 흥분하지 않고 의연하게 간다는 상호 조약이자, 궁지에 몰린 상대의 머리 위에 이미 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행보이다. 조급한 것은 저들이고 우리는 의연하다. 들뜨지 않아야 끝까지 갈 수 있다. 어차피 이길 것이기에 멋있게 이기자. 마침 잘 가고 있다.


** 좌_ 11월 4일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는 시민들의 모습  /   우_ 11월 20일 박 대통령 변호인의 검찰 조사 거부 기사 화면










끝까지 간다.


 이 글을 작성하는 와중에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거부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또 벽을 보고 외쳤나 싶어 마음이 지친다. 하지만 지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의 길은 더욱 춥고, 울퉁불퉁하며, 그 끝이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따로 앞장선 사람도 없다. 내 앞이 지치면 내가 앞에 서고, 내가 지치면 내 뒤가 앞에 선다. 그렇게 꾸준히 밀어내자.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통령을 압박하는 수밖에는 없다. 우리가 모여 외치는 중에도 야당과 언론 또한 제 길을 가 줄 것으로 믿는다. 설령 누군가의 조처가 우리의 기대에 미흡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간다. 끝까지 간다.


*** 2016년 11월 19일 제4차 대국민 촛불집회 중 광화문 방향에서 행진하는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및 ***

 - 2016년 11월 19일 제4차 대국민 촛불집회 중 직접 촬영


*

 - 청와대 화면 캡처

 - president.go.kr


** 중 좌측

 - 노컷뉴스, 최인수 기자, 2016년 11월 5일 자, “인사권은 칼·최재경은 방패…朴대통령 앞 檢 휠까”

 - nocutnews.co.kr/news/4680045


** 중 우측

 -  머니투데이, 이태성, 양성희, 한정수 기자, 2016년 11월 20일 자, “박 대통령 변호인 "검찰 조사 거부… 특검 대비"(종합)”

 - naver.com/main/hotissue/read.nhn?mode=LSD&mid=hot&oid=008&aid=0003776545&sid1
=100&cid=1051768&iid=32495310&lfrom=ka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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